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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지도 않는군.”


 가느다랗게 뜬 눈과 두터운 팔뚝, 그리고 큰 손. 하얗게 샌 머리가 단정하게 정돈되어 가닥가닥 조명에 물들지 못하고 흰 빛을 내었다. 잔잔히 띠운 미소는 속내를 감추는 것이 익숙한 자의 것이었고 어두운 조명에서조차 두 눈을 번득이는, 전형적인 야심가의 얼굴.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 남자였다.

 

  집은 금세 복구되었다. 아드리네와의 대화도 생각보단 잘 풀렸다. 당일은 둘 다 경황이 없었지만 그 이후 그녀는 차분하게 앞으로 자신이 취할 태도와 대처들을 차례대로 늘어놓았다. 하지만 잘 들리진 않았다. 시원찮은 내 반응에도 그녀는 귀찮아하거나 짜증내는 기색 없이 내 상태를 살펴가면서 했던 얘기를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난 그저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드렉슬러와 장난을 치거나 그를 품에 가두고 깊은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뿐이었다.

 

 그녀는 설명을 마치고-대부분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생각한다- 문고리를 돌리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금 나를 바라보며 내 뺨을 쓸어 내렸다.

 

 “지쳐 보이네.”

 

 “그런 가.”

 

 “잠은 좀 자?”

 

 대꾸 없이 그저 아드리네를 바라보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웃었다.

 

 “좀 쉬어.”

 

 “그러지.”

 

 그녀를 보내고 침대에 걸쳐 앉았다. 그간 시끄러웠던 머리가 드디어 과부하가 걸린 모양으로 모든 것은 고요하고 그저 멍했다. 곧 또 나가보아야 했다. 그가 읽지 않을 편지를 나는 어제도 밤을 세워 적어 내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몸을 일으켜 전화기를 향해 비척비척 걸었다. 수화기에 손을 올려놓고 전화를 받을지 말지 망설였다. 나는 피곤했다.


 "알베르토 입니다."


 결국 들어올린 수화기 너머에선 고저 없이 나직하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토 로라스경 되십니까?”

 

 “예. 누구시죠?”

 

 “저는 영국의 헬리오스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윌라드 크루그먼이라고 합니다.”

 

 헬리오스? 회사측 이사?

 

 “헬리오스의 이사께서 저에겐 어쩐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고 도움을 조금 받고 싶은 일이 있어 연락 드렸습니다.”

 

 도움이라는 단어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몰려왔다. 언제부터 헬리오스의 이사가 이렇게 직접 접선을 하고 다니게 됐나.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틀란티코 드라군 쪽으로 연락을 하는 게 나으실 겁니다.”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데 건너편의 상대는 내 의사는 개의치 않은 듯 담담히 용건을 읊었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이번 일은 드라군과는 별개로 알베르토 경과 다리오 경의 힘을 빌리고자 하여 이렇게 따로 연락 드리게 된 겁니다.”

 

 “다리오…? 다리오 드렉슬러?”

 

 “친구분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자세한 얘기는 술이라도 한 잔하며 나누시는 것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 작전에는 드렉슬러만. 중요 자원. 당신과 드렉슬러만 도와준다면. 그는 이미.

 

 “…승낙, 했단 말인가.”

 

 전화보다도 깊고 어두운 목소리였다. 가게 안 높은 목소리의 여가수는 반주마저 집어삼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먹혀 들지 않았다. 그저 드문드문 술집의 노래에 섞여 들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잠시지만 다음 달이면 그는 영국으로 가게 되죠. 비록 헬리오스로의 입사 제안은 거절 당했습니다만, 저는 그가 도착하게 되면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른 부분으로 드라군과의 이야기 역시 고위관료들과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단계입니다. 실상 결정이 됐다고 확언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번 일은 임시 작전으로 처리될 것이고 원하신다면 공문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얼음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조금 놀라신 모양이군요. 저는 알베르토 경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내 반응을 살피는지 그는 그 뱀 같은 시선으로 나를 곁눈질했다. 밑도 끝도 없이 기분이 불쾌해지고 있었다.

 

 “그와는…어떻게 아는 사이지?”

 

 “술친구죠, 얘기가 잘 맞는. 일 문제로 스페인에 온 건 두 달 정도고 실제로 그와 본 것은 한 달 보름쯤 되겠군요.”

 

술친구. 한 달 보름. 나와 만나면서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내가 아는 그는 낯을 꽤나 가린다. 그렇지 않았나? 아니.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그러고 보니 이 크루그먼이란 남자,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 어쩌면 나보다 더. 눈 앞의 남자에게 어째서인지 패배감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갔다. 그는 나를 보고 야차 같다고 말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생각보다 감정을 숨기는 게 서투신 모양입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죠.”

 

 몸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대꾸는 들려오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켜고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드렉슬러.”

 

 작게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윌라드 크루그먼이라는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어. 자네, 영국으로 떠난다며.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네. 왜 나에겐 미리 말하지 않았지? 내가 알아선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따지러 온 것이 아닌데도 한자, 한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할 수록 치미는 분에 입술을 깨물고 다시금 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유라면 이미 알고 있네. 다만 다른 이가 아니라 자네 입으로 들었으면 좋았겠다-그런 욕심이지. 자네가 날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 내게서 멀어지려 하는 것도, 왜 그렇게 애를 쓰는지도. 다만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 크루그먼의 이야기는 승낙했네. 영국에는 나도 가겠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길 네가 왜 와!”

 

 편한 옷에 슬러퍼 차림인 드렉슬러가 뛰쳐나왔다. 반사적으로 그를 밀면서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체온이 손에 감기자 심장 부근이 저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많이 여위었군.

 

 “말랐어.”

 

둘이 한데 엉겨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손 끝으로 밀어낸 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해 어두운 실내에 그의 얼굴 위로 얇은 실처럼 하얀 선이 그어졌다.

 

 “여전히 막무가내네. 무거워, 비켜.”

 

시선을 맞추지 않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는 여전히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끙끙대며 내 옷깃을 양 손으로 그러잡을 뿐. 오랜만의 입맞춤은 나를 몰아세웠다. 나와 닿아있는 그의 입술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혀 끝으로 그가 약한 부분을 훑고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코앞에서 느끼면서도 나는 불안해 어쩔 줄 몰랐다.

 

 “으…하아…비켜…어!”

 

 그는 마침내 힘껏 고개를 돌렸다. 매섭게 나를 노려보더니 발로 내 배를 걷어찼다.

 

 다시금 껴안으려다 제지 당하고 제대로 쫓겨났다. 눈 앞에서 쾅-하고 문이 닫혔다.

 

 “어쨌든 오지마! 알았어?!”

 

 문 안쪽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시 올 걸세!”

 

 마주 소리를 질렀다.

 

 방금 까지 맞닿아있던 입술이 저렸다. 촉감이 남아 있는 위에 손을 더듬는다. 닿을수록 부족하다. 더, 더 많이. 이어지는 갈증에 목이 타 죽는 환상이 이어졌다. 굳게 닫힌 문에 이마를 기대고 분을 못 이겨 문짝을 긁는다. 나무 살이 벗겨져 손톱을 파고 들자 모자라는 감각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다시…. 드렉슬러…제발.”

 

 고함을 치고 싶은 기분에도 입에서는 가냘픈 애원 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다. 답지 않게 조르게 된다. 그만큼 그는 사랑스럽다.

 

 빠듯하게 힘이 들어 간 아래에 문에 바짝 붙어 숨을 골랐다. 긴 상의와 입구의 기둥들에 흉한 모습이 가려지길 바랄 뿐이다.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전하지 못한 편지를 신문통로로 집어 넣고 발을 돌렸다. 다시는 놓치지 않아.

 

 그 이후론 매일 하던 방문에 아예 그의 집 맞은 편 가게의 방을 빌려서 조는 정도의 쪽잠을 자는 시간 외엔 항상 그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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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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