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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닿는 곳에 되는대로 입을 맞췄다. 오랜만의 드렉슬러는 조금 마른 것 외엔 변한 곳이 없었다.

 

 쇄골에 닿은 짧은 입맞춤에 그는 가늘게 떨었다. 셔츠 안을 더듬고 가슴을 쓸어 쥐며 나는 좀 더 그의 냄새를 채웠다. 목 줄기를 타고 귀 뒤까지 깊이 들이켜자 목 바로 뒤에서 참지 못하고 앓는 한숨이 흘렀다.

 

 “으-하아…로라스….”

 

 바지 위에 손을 얹어 더듬다 가볍게 그러쥐자 시트가 밀리며 나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점점 솟아올랐다. 뜨거운 체온, 열기가 담긴 목소리. 허리를 받쳐들고 들어올려진 하체를 따라 바지를 단숨에 끌어내리자 순간에 움켜쥐어진 팔뚝이 집혀 아렸다. 이렇게 날 원하면서. 아래를 밀어붙이며 이젠 브리프 뿐인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얇은 천 아래로 힘이 잔뜩 들어간 살덩이가 손 안에 가득 차자 포만감에 거친 숨이 터졌다.

 

 다시금 키스하자 그는 벌어진 입 사이로 맹렬하게 파고 들었다. 노골적으로 질척이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우위를 점하듯 서로를 탐하다 숨이 막혀 거리를 벌렸다. 뇌가 흔들리는 듯한 키스였다. 차마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목에다 팔을 걸어 놓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고르지 못한 숨을 헉헉대며 드렉슬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혀를 내밀어 축축히 젖은 입술을 다시 한 번 핥아냈다.

 

 칭얼거리며 거리를 좁히려 드는 그를 침대에 바로 눕히며 걸리 적 거리던 속옷을 마저 벗겨내었다. 조금 젖어 든 몸으로 끈적거리는 것이 떨어졌다. 이미 몸이 노곤히 풀린 듯, 바로 누운 채 힘 없이 뜨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무릎을 세워 그를 다리 사이에 가뒀다. 반쯤 일어선 것을 손바닥으로 슬쩍 쓸자 다시금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인다. 절경이었다.

 

 “예쁘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해가 뜬 것 같아.”

 

 자네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드렉슬러는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맙소사.”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려 하니 손길을 교묘히 피해 손을 뻗어 이번엔 시야를 방해했다. 약간의 땀에 절은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혀를 내밀어 맛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거둬지는 손을 붙잡고 이를 세워 잘근 거리자 간지러운지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이 꽤 귀여웠다. 사실, 조금 많이.

 

 단지 이렇게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 만으로도 잔뜩 들떠서 애원하기 직전까지 몰리는 주제에 드렉슬러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흥분을 감추려 애쓰는 드렉슬러에게서는 항상 맹수가 경고하는 듯한 낮고 거친 소리가 났다. 그렇게 짐승이 숨을 죽이면서 내쉰 공기는 피부를 울리고 고스란히 맞붙은 가슴을 파고들어 속을 간질였다.

 

 “으, 흐! 읏…큿! 으-, 하아…”

 

 답답하게 뭉개진 소리가 혈관 하나하나를 죄는 것만 같아 나는 그의 목덜미에 이를 세웠다. 도드라진 목을 따라 이를 갈다가 낙인을 찍듯 서서히 입술을 눌렀다. 그의 피부를 빨아들인다는 행위만으로도 기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더 이상 했다간 아픔만 남을 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손 끝부터 저려오는 감각이 미묘하게 나를 잠식하는 기분을 즐기며 나는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머지않아 드렉슬러는 날이 선 목소리로 내 성을 부르며 날 밀어냈다. 붉은 꽃이 예쁘게 폈군. 손 끝으로 울혈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분명 보라 빛으로 멍이 들겠지. 기분이 점점 들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숨을 고르는 그에게 다시금 키스했다. 가슴 옆을 두드리듯 허리까지 쓸어내자 참지 못하고 숨이 바로 귓전에서 터졌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것, 그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다 아는 것 같은데.

 

 그가 갖고 싶어.

 

 속삭여오는 목소리는 달콤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그를 가둬 넣고 다른 이들 모르게 둘만. 갑작스런 욕망과 동시에 죄악감이 차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멈춰진 행위로 당황하여 날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지. 몰아 닥치는 흉포한 기분에 시트를 움켜쥐었다.

 

 “내가 얼마나 자네를 원하는지 알면 놀랄 걸…”

 

 벅찬 가슴에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허리를 세워 품 안에 가둬진 드렉슬러를 내려다보았다.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씁쓸하게 내뱉은 말에 드렉슬러는 끝내 가늘게 떨리는 눈가를 숨기지 못했다. 그래, 자네는 아마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미움을 받으면, 다신 날 용서하지 않겠지.

 

 드렉슬러는 눈을 잠시간 감더니 다시금 시선을 맞추진 못하고 팩-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아했다.

 

 “별로, 사실…희박하지.”

 

 발그레 불든 그의 귀가 이제야 보인다. 어쩌면 그를 잘 아는 척 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따끈해 보이는 귓볼을 주물렀다.

 

 “상관없어.”

 

 아. 헤매는 시선에 웃음보가 터졌다. 폐에 바람이 찬 듯, 실성한 사람처럼 그렇게 킬킬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자네를 너무 좋아해…”

 

 그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눈을 슬쩍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실은 나도 그래.”

 

그렇게 개구지게 웃는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아니, 아냐아냐. 거짓말했어. 실은 아직도 너 별로야.”

 

 눈두덩에 팔뚝을 얹고 그는 배우가 빈 방에서 홀로 독백을 읊듯이 한 자, 한 자, 모든 말을 흘려 보냈다.

 

 “아직도 널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난 여전히 그래. 난 아무것도 책임져줄 수 없고, 넌 거의 모든 걸 잃어버리겠지. 그런데도.”

 

 축축하게 베개맡이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미안.”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그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내가 미안하네.”

 

 “사과하지마.”

 

 “어째서?”

 

 “사과하고 떠날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마.”

 

 아려오는 가슴에 그가 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했던 별이 쏟아지던 날 밤. 이 후로도 나는 그를 잊으려고만 했다. 도대체 나는 자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건지.

 

 “나는 몰랐어. 전혀 몰랐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위로 몸을 기댔다. 그로 인해 가려진 두 눈을 마치 직접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달래듯이 속삭였다.

 

 “아무데도 가지 않을 걸세, 드렉슬러. 자네 없이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

 

 그간의 상처를 위로하듯 조심스레 고개만을 틀어 입술을 포갰다.

 

 

-

 

 

 울렁거림이 가라앉자 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늘적 거리며 배 위에서 입술을 놀리다가 우거진 풀숲에 코를 문질렀다.

 

 “그런대서 킁킁대지마.”

 

 “부끄러워하긴.”

 

 대꾸 때문인 척 입술을 오물거리자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기쁘지만 너무 적극적인걸.”

 

 “미치겠네, 진짜.”

 

 조금 더 놀렸다간 정말 화를 낼 것만 같아 입을 벌려 그의 것을 물었다. 묘한 비린내와 비누 향이 났다. 비누?

 

 “자애 이어응아?”

 

 “입에 그런 것 넣고 말하지마! 이거 순 또라이 아냐?”

 

 벌게 진 얼굴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지금 상황을 멈추려고 그가 상체를 들어올리는 바람에 다시 하던 것이나 하기로 했다. 힘껏 빨아들였다.

 

 “읏-아, 젠장.”

 

 침대 위로 상체가 떨어지자 충격에 매트리스가 요동쳐 목을 찔렸다. 나는 사레 들린 듯이 컥컥 거렸고 그는 박장대소했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까 그렇지. 이거나 끼고 아래나 녹여줘.”

 

그는 머리맡 서랍장을 뒤지더니 콘돔과 젤을 꺼내 던지며 농을 쳤다. 부끄럼 없이 아래를 벌려내는 그는 신화 속 헤르메스처럼 어딘지 모르게 소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도발에 당황하여 첫 경험을 하는 어린 어른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콘돔의 포장을 뜯고 내 것 위에 그것을 씌웠다. 손에 묻은 미끈거리는 젤을 그의 뒤에 문지르자 이상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삽입부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설마. 당혹으로 물든 붉은 얼굴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쩐지 너무 적극적이더라니.

 

 “입 열지마, 경고했어.”

 

 “음, 음, 아무래도 집에 있는 동안 심심했던 모양이군. 내가 많이 그립던가? 응? 드렉슬러.”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조금 더 깊게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귓전에 조근조근 속삭였다.

 

 “…짜증나려고 해.”

 

 “내가 너무 핵심을 짚었나?”

 

 그는 씩씩대더니 엄청나게 화가 난 얼굴로 베개를 집어 들어 나를 내리치려 했다. 아차 싶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예상외로 날 공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와 엄청난 갈등을 하는 듯 하더니 얌전히 베개를 내려놓았다.

 

 “…그래.”

 

 베개는 제자리를 찾았고 나는 넋이 나갔다.

 

 “뒷구멍에 손가락 처박고 자꾸 그렇게 멍청이처럼 굴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실실대며 그의 다리를 잡고 어깨까지 밀어 올렸다. 풀어놓은 곳에 다시 젤을 짜 넣자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찌꺽대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딸려오는 살을 손 끝으로 꾹꾹 누르다가 완전히 기립한 것을 입구에 맞추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꿈틀대는 근육에 허리가 저릿했다.

 

 “녹아 내리는 것 같아….”

 

길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었다. 늘러 붙는 감촉과 열기로 끝에는 어질어질하니 정신이 몽롱했다.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느낌 정말 이상해.”

 

오랜만의 삽입에 정신이 없는 와중 한참 숨을 고르던 그가 입술을 내민 채 툴툴거렸다. 이물감 때문인지 아랫배를 꾹꾹 눌러대기에 쭉 내민 입술을 집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가.”

 

 이렇게 투덜거려봤자 나중엔 제일 즐기는 주제에 무얼.

 

 “이런 거 말일세.”

 

 크게 허릿짓을 해 한 번에 쳐올렸다.

 

 “아-”

 

 짧은 새된 소리와 함께 잠시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랫배에서 들끓어 올랐던 무언가도.

 

 “너…이 자식…이렇게 갑자기…”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여유가 없었다. 드렉슬러를 조금 골려 주기 위해 했던 행동이 커다란 파도처럼 다시금 덮쳐 들었다. 화끈거리는 뱃속과 하얗게 변한 머리 속이 원하는 것은 결국엔 같아서 나는 도저히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다시 채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피가 몰려 한껏 예민해진 곳으로 그의 안을 짓뭉개듯 치댔다.

 

 “아- 으- 빨라…로라..아! 아아- 빠릇, 아, 빠르다고-! 읏!”

 

 “한 번만, 다음은, 좀 더 상냥하게, 흣, 할 테니-, 부디 용서하게.”

 

 허릿짓에 맞춰 글자 사이사이에 숨소리가 섞였다. 숨이 턱까지 밀어 닥쳤다. 드렉슬러의 다물어질 줄 모르는 입에선 신음과 타액이 흘러 넘쳤다. 들락거릴 때마다 찔꺽이며 젤이 흘러나오는 게 얇은 막 건너로 여실히 느껴졌다. 거친 몸짓으로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입을 맞출 수가 없었다. 턱 끝을 살짝 물고 가볍게 핥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간 것 같다. 그의 안에 가득 들어찬 채로 사정 후 열기에 취해 어리광 부리듯 그의 가슴에 이마를 비볐다. 드렉슬러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머리카락 위에 키스해주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입술은 점점 더 가까워져 결국 혀를 얽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 번 더 할까?”

 

 하얀 커튼으로 빛이 스며들어 그의 눈 속 잿빛 하늘이 맑은 바다처럼 일렁였다. 비가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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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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