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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오래 된 친우의 위로 자꾸만 헛것이 보인다.

 

 그것은 처음엔 한두개씩 단추를 열었다.

 넥타이를 풀고 겉옷을 벗어낸다.

 벨트를 열고 지퍼를 내릴 때쯤 항상 나는 눈을 감는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좋았다.

 

 어느 날은 눈꺼풀 아래로 잔상이 남아 남은 옷가지를 끌러냈고

또 어느날은 흐트러진 차림새로 손을, 목을, 허리를 감아왔다.

 

 헛것이 보이는 것이 점점 눈에 띄게 심해졌다. 아니 헛것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나의 상상은 달음박질쳤다.

 

 그가 거는 조각웃음마저 요사스럽게 매달려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점점 늘어났다.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그를 멀리하고 보지 않자 헛것은 꿈 속까지 찾아들었다.

 

 드디어 나는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실오라기하나 없이 입을 맞추고 몸을 열었다.

 

 격정.

 

 마음이 쏟아져내렸다. 귀신 장난 따위로 무너진 자존심에 허파가 찢어질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억지로 눈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더듬어지는 곳의 뜨거움에 나는 몸서리쳤다.

 

 이윽고 그것은 드디어 속살거리기 시작했다.

 

 "이러지마, 차피 꿈인걸."

 

 의지와 이지를 이기고 온몸이 크게 떨렸다. 가위에 눌리듯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웅크린채로 떨림을 참는 것 뿐. 그것은 소리내어 웃으며 어깨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로라스 하아…, 로라스…"

 

 닮은 목소리로 뜨겁게 불리어지는 이름에 나는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저것은 드렉슬러가 아니다. 저것은 다리오 드렉슬러가 아니다.

 

 악물었던 이에서 피가 나는 듯 비린 향이 돌았다.

 

 그것은 끈질기게 옷 위로 자신의 맨 살갗을 비볐다. 뜨거운 입김과 질척한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십사하고 신을 찾았다. 기도가 이어질 수록 맑아지는 정신에 망할 것은 더욱 깔깔댔다. 주여. 이 음험한 것을 벌하소서.

 

 그러다 갑작스레 뚝, 움직임이 멎었다.

 

 식은 땀이 마를 때까지,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끝난건가…."

 

 쉰 듯이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일어났어?"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몸을 급히 일으켜 앉았다. 환청이 아닌듯 그곳엔 다리오가 앉아있었다.

 

 "연락 없이 이틀이나 회사도 안나오고해서 다들 걱정하고 있어. 대표로 병문안 온거야. 몸은 좀 어때?"

 

 달그락, 달그락

 

 식탁 위에 환자식이 하나, 둘 올라오자 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이건 대체…."

 

 "너희집 가정부 솜씨야. 데운 것 뿐이니까 안심하고 먹어."

 

 "아니, 그게 아니고…."

 

 드렉슬러는 맞은 편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의자 끌리는 소리, 음식 냄새.

 

 "뭐?"

 

 "아닐세…꿈이…아니군."

 

 음식을 떠 입에 넣었다.

 

 그래, 꿈이 아니야.

 

 미약하게 웃음이 올라왔다.

 

 마주보고 있는 드렉슬러는 꿈이 아니다. 헛것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내 상상 속의 남자도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행복했다.

 

 그릇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천장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물기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로라스…! 왜 그래! 너 임마 왜 울어!?"

 

 심통난 표정으로 앉아있던 건너편의 남자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얼굴을 쥐고 눈물을 닦아주며 어쩔 줄 몰라한다.

 

 와중에 닿은 손이 뜨겁다. 나를 걱정하는 듯이 일그러진 표정이 보기가 좋다.

 

 어쩌면.

 

 처음으로 떠오른, 그렇게나 버둥거렸던 단어가 수면 밖으로 나오자 나는 드디어 한계가 왔음을 직감했다.

 

 "드렉슬러, 날 좀 살려주게."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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