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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터였는지 정확한 것은 기억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눈에 뜨일 정도로 언젠가부터 그 녀석이 눈을 자주 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항상 그랬다. 나는 나의 친구라 불리는 이들에게 제대로된 애정을 나누어준 적이 없었다. 천성이 쌀쌀맞다기보단 무언가 주려는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기에 그 과정이 나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이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그것은 가족이라해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나는 나에게 사람을 사귀는 재능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편한 일이었다.

 

 쓰지 않던 감정은 무디어져서 어느 순간부터 면역력까지 떨어지고 말았는지 모른다. 로라스. 입 밖으로나오려는 이름을 다시금 가두었다.

 

 살가운 녀석은 아니었다. 크루그먼처럼 술 한 잔 나누며 얘기하기 좋은 상대도 아니었고, 감정을 강요하는 여타 피곤한 놈들과도 달랐다. 원하는 것 없이 그저 곁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게 웃어주는. 아. 나는 꽤 많은 자리를 그에게 내주었나보다.

 

 무딘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차려보니 녀석은 나를 멀리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노려보는가 싶다가도 눈을 꾹 감고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또 무슨 잘못을 했는가. 나는 항상 밉살맞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유없이 미움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틈틈히 내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입이 열리고 튀어나올 단어가 그냥. 일까봐, 나는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그러던 오늘. 녀석은 갑작스레 비틀거리더니 의자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정신을 못차리는 놈의 팔뚝을 붙잡자. 탁. 우당탕.

닿았던 손은 뿌리쳐지고 앉아있던 의자와 함께 녀석이 나동그라졌다.

 

 "미안…하네. 그…손대지 말아주겠나."

 

 넘어진 의자를 내팽개쳐두고 녀석은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갑작스레 났던 큰소리가 계속해서 고막을 때리고 살짝 주먹을 쥐어보니 뿌리쳐진 왼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아쥐었다. 나는 그것으로 괜찮았다.

 

 그 이후로도 계속 같은 임무중에 있을 때조차 녀석은 눈을 감았다. 이를 악물고 인상을 쓰며 답지 않게 파괴적이고 과할 정도로 일했다. 주변인들의 염려에 부서질 듯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종종 날이 벼려져 있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고개를 돌렸지만 매몰찰 정도로 녀석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안좋아지는 얼굴색과 말라보이는 모습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도 그래서 묻지 않았다. 돌아올 대답을 견딜 자신이, 나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이틀째 녀석은 결근을 했다. 가정부의 말로는 이틀내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엌에서나는 고소한 냄새에 의아한듯 가정부를 보니 '늘 준비는 해놓고 있어요. 갑자기 음식을 드시면 탈이 나실까 환자식이지만요.'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에 꽤나 사랑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 후론 응접실 소파에 앉아 녀석의 방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밤이 되어 가정부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쭉. 눈이 뻑뻑해질 때마다 가끔 눈도 감아주면서. 도대체 나는 여기 앉아 뭘하고 있는건지.

 

 "제가 있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는 있을 것 같으니까. 하루이틀도 아니고."

 

 손님방과 내 가방을 번갈아 가르키고 소파 등받이를 툭툭 쳤다. 손을 들어 흔들어주자 마리는 고개를 살짝 굽히더니 나가버렸다.

 

 적막 속에서 이명이 날 때즈음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할까 손을 들어올렸다가 두드리지 않고 방문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커튼마저 닫혀있어 빛이 닿을 여력 없이 깜깜했을 방안으로 등뒤의 불빛이 새어들어갔다. 하얀 침구에 휘감겨 웅크리고 있는 녀석은 착각인지 온몸을 굳히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침대 맡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딱딱한 원목이 오히려 편안했다.

 

 순간 녀석은 숨을 몰아쉬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나는 놀라 움찔거렸다. 잔뜩 말고 있던 등이 미세하게 펴지고 거칠어진 숨이 잠잠해질 때쯤 거칠고 쉬어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끝난건가…."

 

 도대체 무엇이. 꿈틀거리는 입가를 갈무리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일어났어?"

 

-

 

 갑작스레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온 몸의 피가 식고 심장이 떨어진 듯한 기분이 되었다. 빌어먹을. 씹할. 왜 우는 거야. 왜. 비이성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나를 공격하려 들었다. 아니, 이미 이 상황자체가 비상식적이다. 다리오 드렉슬러의 병문안이라니. 내가 미쳤지.

 

 습관처럼 볼살을 자근대며 씹었다. 헐어버린 살에서 피가 베어나오는데도 잘근잘근 씹어댔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하면. 로라스.

 

 "드렉슬러, 날 좀 살려주게."

 

 눈물이 멈추질 않는지 녀석은 말갛게 웃으면서도 계속 울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이해할 수없는 단어들의 조합에 결국에 나는 어버버거렸다.

 

 "그게…무슨 소리야."

 

 "나는…나는 아니야. 나는 실은 그러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용서를… 드렉슬러, 부디 날 용서하게.

 

 커다란 손에 얼굴을 감추고 녀석은 덜덜 떨었다. 녀석은 나에게 목숨을 구하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떨리는 등 뒤로 다가가 그 커다란 것을 가슴 깊숙히 끌어안았다. 나는 네가 용서를 빌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널 힘들게 했다면,

 오히려 용서를 빌어야할 건 나겠지.

 

 "괜찮아. 뭐든지 다 용서해주지. 내가 아는 로라스는 말 못할 이유로 용서를 비는 녀석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발 너만은.

 

 어수룩한 위로와 더불어 꼴불견으로 눈물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너만은…"

 

 참지 못하고 울먹임이 샜다. 순간 가슴팍 가득 찼던 것의 떨림이 잠시 멎고 뜨끈한 손이 팔뚝에 얹어졌다. 강해지는 움켜쥠에 팔을 떼어내려는게 싫어 목덜미에 눈물을 부비자 로라스는 내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그러지마. 제발.

 

 필사적인 조근거림과 동시에 모든걸 잃어버린 남자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드렉슬러, 젠장. 빌어먹을. 이런… 이런건…"

 

 떠나지 말아달라는 말과 감정이 너무 유치해서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엉망으로 울었다. 눈물로는 부족해서 콧물까지 훌쩍이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망쳤으면하고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비겁한 자의 말로로, 알량한 자존심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것이야말로 훌륭하지 않은가해서.

 

 따스한 손가락이 깍지끼듯 얼굴을 가리던 손을 걷어냈다.

 

 운 것의 여파로 피로한 얼굴에 발갛게 눈가를 물들이고 로라스는 다시금 웃고 있었다.

 

 "나는 자네가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건"

 

 얼굴이 다가오더니 부드러운 것이 눈가를 훑고 떨어졌다.

 

 "추악하고 더러운 마음이라,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네."

 

 "비겁한 자식이."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난 날 용서할 수가 없어서…."

 

 한껏 처진 눈꼬리로 시선을 회피한다. 멍청이가.

 

 "틀렸어."

 

 키스했다.

 

 "알겠냐. 완전히 틀려먹었다고."

 

 어울리지 않게 딸꾹질 소리가 울렸다.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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