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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렉슬러에게 떠밀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땐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발을 디디는 순간 그가 머무르는 공간에 갇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닫히는 문과 함께 어스름에 잠겨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폐부 가득 숨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특유의 잉크와 종이 냄새로 공기가 가득 찼다. 달큰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바람 냄새가 기분 좋게 뇌 구석구석을 내달렸다. 정말로 그다.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었어.”

 

 “난…아니야. 저리 비켜.”

 

 믿기지 않아 얼굴을 다시 보려던 그 순간 거리가 벌어졌다. 다급히 그의 손을 잡아챘다. 어째서 자네는 항상.

 

 “제발 날 밀어내지 말아.”

 

 쥐어낸 손 위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뜨거운 손으로, 미련이 떨어지는 그 두 눈으로.

 

 “돌아가.”

 

 “어디로?”

 

 “어디로든지.”

 

 “갈 곳이 없어.”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날 기다려줬으면 하는 이는 있지. 울컥거리는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저 입가에 미미하게 걸린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우리를 위한. 그가 사라지고 수많은 가설과 이유와 방법들을 고민했지만 이미 꼬일 대로 꼬인 문제는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를 지켜주기는커녕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서툴렀다. 나는, 무력했다.

 

 “그녀와는 헤어진 지 이미 오래야…. 그녀가 통보했고 나는 받아들였네. 우리의 헤어짐이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곳이 네게 어울려.”

 

 “편지, 하나도 읽지 않았지?”

 

 “당연하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고통이었다. 제대로 쉬지 못한 머리는 몽롱했고 담담히 대답하는 드렉슬러에게선 더 이상의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이, 이것이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나를 외롭게 했다. 그를 움켜쥔 채로 한 손만을 들어 얼굴을 쓸어 내렸다.

 

 “나는 그녀 때문에 자넬 만난 게 아니야. 그런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난 전혀 몰랐네. 우리가 헤어진 것 역시 자네 탓이 아니라는 얘기도 해야겠어. 자네는 항상 자책을 하곤 해. 좋지 않은 버릇이고, 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자네 앞에만 서면 바보 같이 다 잊어버리고 말아. 두서가 없어 미안하네….”

 

 말이 길어질수록 이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에도 몇 번씩이나 적었던. 그는 읽으려 하지 않았던 것들. 그에게 해야 할 말, 그가 들어야

할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드렉슬러가 입술을 가볍게 물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버릇을 나는 안다. 그는 영민하고 또 예민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래서는 달아난다. 또 달아나고 만다.

 

 “나야말로 그간 우유부단했어. 미안하다. 확실히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네가 날 정말 사랑한다 하더라도 난 아니야. 이마저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는 거니까 그만둬줬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고. 우린 여기까지다, 로라스.”

 

 “자네는…정말 예전과 변한 게 없군. 항상 밀어내기만 해.”

 

 나는 쫓기고 있었다.

 

 “그러냐.”

 

 “그런데도, 나는. 자네를 놓을 수가 없어.”

 

 밀어닥치는 감정에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군.”

 

 저 굳게 닫아버린 눈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드렉슬러를 쫓아 그의 얼굴을 살폈다. 날 봐줘. 드렉슬러. 눈을 뜨고 날 좀 봐주게.

 

 “난 항상 그랬네. 말없이 자네가 사라진 뒤에 여기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 이제야 품 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시끄러워, 조용히 해.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신경질적인 대답과 찌푸린 얼굴. 그런데 나는 어째서 항상 그로부터 미련을 읽게 되는지.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금 입술을

댔다. 예전처럼. 항상 그렇게. 부드럽게 열리는 입술과 감겨 드는 혀를 엮고 그를 깊이 끌어당겼다.

 

 “왜 자꾸 날 헷갈리게 하는 거지, 드렉슬러. 왜 그저 놓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냔 말일세.”

 

 그 다정함에 서러워져 미처 입술을 다 떼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잠깐의 혼란, 그리고 체념. 체념이라니.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잠시의 시선을 조용히 닫고 그는 다시금 입을 맞췄다. 숨이 멎었다.

 

 아아. 드렉슬러.

 

 그는 한껏 농익은 손길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부드러운 움직임에 애정이 어려 나는 또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가 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갈증이 길어질수록 신기루가 뚜렷해지듯이 잿빛을 잔뜩 머금은 저 하늘에서도 언젠간 비가 오리라- 갈증. 온 몸이 사시나무마냥 떨려

단추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는 내 손을 그는 다시 단단히 감아 쥐었다.

 

 그의 체취가 가득한 보드란 침대보 위에 그를 누이고 다시 마주 쥔 손가락 마디마디 키스를 했다. 가늘게 떨리는 손, 붉게 익은 입술, 일렁이는 잿빛 하늘. 견디고 견디면 결국 비가, 비가 오리라. 등 뒤로 날이 밝고 있었다.

 

 “이렇게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별이라고 자네가 그랬지. 그 때부터 나에게 있어 별은 자네 하나뿐일세. 사랑하네, 사랑하고 있어, 드렉슬러.”

 

 “그렇게 보지마.”

 

 “사랑스런 나의 novio.”

 

 도망치는 그를 부여잡고.

 

 “듣고 싶지 않아.”

 

 “빛나는 나의 별.”

 

 나는.

 

 “로라스, 제발.”

 

 나는, 다시금.

 

 “나야말로…! 나야말로 부탁일세… 제발…. 제발 나를 들어줘, 드렉슬러…”

 

 쥐어짜이는 심장의 고통에 몸을 웅크려 그의 가슴에 이마를 괴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땀에 달라붙고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를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선연했다. 이후에 모든 것이 끝날 것임을 알리는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재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 헤맸다. 혼란 속에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손안에 쥔 절박함만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네가 없으면 나 역시 빛을 잃고 말아, 렉시. 차라리 그것이 나아. 나는…그대 없인 더는 살 이유가 없어.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가 본 그대의 찰나는 정말 내가 너무 바란 나머지 만들어낸 환상인가? 응?”

 

 “나는…난…”

 

 그는 손끝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들어올렸다. 그렇게 괴로운 얼굴로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당장이라도 시트를 쥔 손을 펴서 자네를 달래주고 싶은데. 눈을 감았다.

 

 “대체 너,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그는 울먹였다. 자신의 감정과 밀어붙여지는 현실. 모든 것에 유감을 표하며 나는 조금 웃었다.

 

 “내가 자네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달싹이는 입술이 잠시간 머뭇거렸다. 비록 이것이 내 착각일지라도, 그래서 모든 것을 잃게 될지라도.

 

 “자네가 날 사랑하니까.”

 

 그렇게 얼굴 윤곽을 따라 한참을 쓰다듬던 손이 무엇인가 결심한 듯 단단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널 사랑하는 것 같아.”

 

 짙은 키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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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지도 않는군.”


 가느다랗게 뜬 눈과 두터운 팔뚝, 그리고 큰 손. 하얗게 샌 머리가 단정하게 정돈되어 가닥가닥 조명에 물들지 못하고 흰 빛을 내었다. 잔잔히 띠운 미소는 속내를 감추는 것이 익숙한 자의 것이었고 어두운 조명에서조차 두 눈을 번득이는, 전형적인 야심가의 얼굴.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 남자였다.

 

  집은 금세 복구되었다. 아드리네와의 대화도 생각보단 잘 풀렸다. 당일은 둘 다 경황이 없었지만 그 이후 그녀는 차분하게 앞으로 자신이 취할 태도와 대처들을 차례대로 늘어놓았다. 하지만 잘 들리진 않았다. 시원찮은 내 반응에도 그녀는 귀찮아하거나 짜증내는 기색 없이 내 상태를 살펴가면서 했던 얘기를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난 그저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드렉슬러와 장난을 치거나 그를 품에 가두고 깊은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뿐이었다.

 

 그녀는 설명을 마치고-대부분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생각한다- 문고리를 돌리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금 나를 바라보며 내 뺨을 쓸어 내렸다.

 

 “지쳐 보이네.”

 

 “그런 가.”

 

 “잠은 좀 자?”

 

 대꾸 없이 그저 아드리네를 바라보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웃었다.

 

 “좀 쉬어.”

 

 “그러지.”

 

 그녀를 보내고 침대에 걸쳐 앉았다. 그간 시끄러웠던 머리가 드디어 과부하가 걸린 모양으로 모든 것은 고요하고 그저 멍했다. 곧 또 나가보아야 했다. 그가 읽지 않을 편지를 나는 어제도 밤을 세워 적어 내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몸을 일으켜 전화기를 향해 비척비척 걸었다. 수화기에 손을 올려놓고 전화를 받을지 말지 망설였다. 나는 피곤했다.


 "알베르토 입니다."


 결국 들어올린 수화기 너머에선 고저 없이 나직하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토 로라스경 되십니까?”

 

 “예. 누구시죠?”

 

 “저는 영국의 헬리오스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윌라드 크루그먼이라고 합니다.”

 

 헬리오스? 회사측 이사?

 

 “헬리오스의 이사께서 저에겐 어쩐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고 도움을 조금 받고 싶은 일이 있어 연락 드렸습니다.”

 

 도움이라는 단어에 지끈거리는 두통이 몰려왔다. 언제부터 헬리오스의 이사가 이렇게 직접 접선을 하고 다니게 됐나.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틀란티코 드라군 쪽으로 연락을 하는 게 나으실 겁니다.”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데 건너편의 상대는 내 의사는 개의치 않은 듯 담담히 용건을 읊었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이번 일은 드라군과는 별개로 알베르토 경과 다리오 경의 힘을 빌리고자 하여 이렇게 따로 연락 드리게 된 겁니다.”

 

 “다리오…? 다리오 드렉슬러?”

 

 “친구분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자세한 얘기는 술이라도 한 잔하며 나누시는 것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 작전에는 드렉슬러만. 중요 자원. 당신과 드렉슬러만 도와준다면. 그는 이미.

 

 “…승낙, 했단 말인가.”

 

 전화보다도 깊고 어두운 목소리였다. 가게 안 높은 목소리의 여가수는 반주마저 집어삼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먹혀 들지 않았다. 그저 드문드문 술집의 노래에 섞여 들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잠시지만 다음 달이면 그는 영국으로 가게 되죠. 비록 헬리오스로의 입사 제안은 거절 당했습니다만, 저는 그가 도착하게 되면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른 부분으로 드라군과의 이야기 역시 고위관료들과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단계입니다. 실상 결정이 됐다고 확언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번 일은 임시 작전으로 처리될 것이고 원하신다면 공문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얼음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조금 놀라신 모양이군요. 저는 알베르토 경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내 반응을 살피는지 그는 그 뱀 같은 시선으로 나를 곁눈질했다. 밑도 끝도 없이 기분이 불쾌해지고 있었다.

 

 “그와는…어떻게 아는 사이지?”

 

 “술친구죠, 얘기가 잘 맞는. 일 문제로 스페인에 온 건 두 달 정도고 실제로 그와 본 것은 한 달 보름쯤 되겠군요.”

 

술친구. 한 달 보름. 나와 만나면서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내가 아는 그는 낯을 꽤나 가린다. 그렇지 않았나? 아니.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그러고 보니 이 크루그먼이란 남자,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 어쩌면 나보다 더. 눈 앞의 남자에게 어째서인지 패배감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갔다. 그는 나를 보고 야차 같다고 말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생각보다 감정을 숨기는 게 서투신 모양입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죠.”

 

 몸이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대꾸는 들려오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켜고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드렉슬러.”

 

 작게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윌라드 크루그먼이라는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어. 자네, 영국으로 떠난다며.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네. 왜 나에겐 미리 말하지 않았지? 내가 알아선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따지러 온 것이 아닌데도 한자, 한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할 수록 치미는 분에 입술을 깨물고 다시금 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유라면 이미 알고 있네. 다만 다른 이가 아니라 자네 입으로 들었으면 좋았겠다-그런 욕심이지. 자네가 날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 내게서 멀어지려 하는 것도, 왜 그렇게 애를 쓰는지도. 다만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 크루그먼의 이야기는 승낙했네. 영국에는 나도 가겠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길 네가 왜 와!”

 

 편한 옷에 슬러퍼 차림인 드렉슬러가 뛰쳐나왔다. 반사적으로 그를 밀면서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체온이 손에 감기자 심장 부근이 저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많이 여위었군.

 

 “말랐어.”

 

둘이 한데 엉겨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손 끝으로 밀어낸 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해 어두운 실내에 그의 얼굴 위로 얇은 실처럼 하얀 선이 그어졌다.

 

 “여전히 막무가내네. 무거워, 비켜.”

 

시선을 맞추지 않는 그의 고개를 돌려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는 여전히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끙끙대며 내 옷깃을 양 손으로 그러잡을 뿐. 오랜만의 입맞춤은 나를 몰아세웠다. 나와 닿아있는 그의 입술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혀 끝으로 그가 약한 부분을 훑고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코앞에서 느끼면서도 나는 불안해 어쩔 줄 몰랐다.

 

 “으…하아…비켜…어!”

 

 그는 마침내 힘껏 고개를 돌렸다. 매섭게 나를 노려보더니 발로 내 배를 걷어찼다.

 

 다시금 껴안으려다 제지 당하고 제대로 쫓겨났다. 눈 앞에서 쾅-하고 문이 닫혔다.

 

 “어쨌든 오지마! 알았어?!”

 

 문 안쪽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시 올 걸세!”

 

 마주 소리를 질렀다.

 

 방금 까지 맞닿아있던 입술이 저렸다. 촉감이 남아 있는 위에 손을 더듬는다. 닿을수록 부족하다. 더, 더 많이. 이어지는 갈증에 목이 타 죽는 환상이 이어졌다. 굳게 닫힌 문에 이마를 기대고 분을 못 이겨 문짝을 긁는다. 나무 살이 벗겨져 손톱을 파고 들자 모자라는 감각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다시…. 드렉슬러…제발.”

 

 고함을 치고 싶은 기분에도 입에서는 가냘픈 애원 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다. 답지 않게 조르게 된다. 그만큼 그는 사랑스럽다.

 

 빠듯하게 힘이 들어 간 아래에 문에 바짝 붙어 숨을 골랐다. 긴 상의와 입구의 기둥들에 흉한 모습이 가려지길 바랄 뿐이다.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전하지 못한 편지를 신문통로로 집어 넣고 발을 돌렸다. 다시는 놓치지 않아.

 

 그 이후론 매일 하던 방문에 아예 그의 집 맞은 편 가게의 방을 빌려서 조는 정도의 쪽잠을 자는 시간 외엔 항상 그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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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렉슬러를 처음 만난 날, 염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절박했던 나는 내 마음을 그녀에게 모두 고백했다. 어린 시절의 망설임과 감각이 무뎌져가던 과거를 거치자 오히려 내가 외면해왔던 모든 감정은 명백해졌고 그로인해 해야만 하는 일은 뚜렷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그렇기에 이미 나와 함께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그녀에게 이 고백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과가 되었다.


 망설임은 없었지만 무거운 죄책감에 어깨가 짓눌렸다. 대가는 어떤 것이든지 좋았다. 아드리네를 상처입히지 않는 방법도, 말을 꾸밀줄도 몰랐던 나는 그저 담담히 그녀에게 모든 걸 설명해나갔다. 하지만 아드리네는 모든 것을 다 듣고도 나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호박색의 그 커다란 두 눈을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그를 만나고 싶다고 끊임없이 나를 졸라댔다. 나에게 화가 나지 않았냐고 묻는 조심스런 물음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서.


 결국 어린아이 같은 투정과 협박이 섞인 아드리네의 부탁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우리 셋은 가끔 만나 티타임을 갖게 됐으며 걱정과는 달리 교양 있는 그녀와의 대화를 드렉슬러는 제법 즐기는 듯 보였다.

 

 새벽.


 드렉슬러는 처음부터 언제라도 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어쩌면 그 전부터. 끔찍하게도 그것이 사실이었다. 단지 그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 나는 그 이후로 그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가 가장 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담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그는 멍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했다. 매캐한 연기를 피해 그를 더욱 깊이 끌어안으며 아랫배 속에서부터 자르르 떨리는 여운을 즐겼다. 끊임없이 엉켜들어간 기분이 거슬려왔지만 당장은 그의 뜨거운 체온이 더 중요했다. 다시금 허리를 끌어안고 다리에 다리를 얽으며 나는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

 

 “좋았어?”

 

 거친 목소리가 열기를 삽시간에 가라앉혔다. 싸한 기류가 돌았다. 웃는 얼굴로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를 그는 잘도 냈다.

 

 “종종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말꼬리가 희미했다. 흘려 넣는 말과 함께 드렉슬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은 나를 향해있었다. 넓고 단단해 보이는 등으로 그는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어기적거리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퍼뜩 든 정신에 다급히 상체를 일으켜 그의 손목을 붙잡아 당겼다.


 “드렉슬러…?”

 

 침묵.

 

 대꾸 없이 그의 어깨너머로 마주친 시선에 나는 바보처럼 잡은 손목을 놓아주고 말았다.

 

 

 

 “굉장히 차가웠어. 방금 까지 내 품 안에 있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드리네에게 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게 된 것은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최대한 미루고자 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아드리네를 속일 수는 없었다. 잤지? 그 날 이후로 몇 번의 티타임이 지나고 어느 순간 그녀는 돌연 나에게 그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물었다. 대답대신 바짝 얼어붙은 나를 보고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상황을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사실대로 고해바쳤다. 저녁식사와 포도주, 커피, 별과 덧창, 강압과 체념, 엉킬대로 엉켜버린 실타래. 모두 그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그녀에게 설명하면서 문득, 어쩌면 나에겐 그저 하소연할 상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몰려오는 두통에 느릿하니 마른 세수를 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 상황이 즐거워 보였다.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드디어 갈 데까지 간 거냐고 음흉한 얼굴을 지었다가 이제 자신과 헤어질 수 있겠다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으며 잘됐다는 축하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가 길어질수록 그녀의 얼굴은 굳어만 갔고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잿빛이 되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드렉슬러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내몰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와의 관계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다 결국 또 사라지고 말 테지. 가라앉는 기분과 함께 서서히 고개가 떨어졌다.

 

 “내-에 생각엔 말이지…오히려 잘 될 수도 있겠어.”

 

 “어떤…?”

 

 기대도 못한 희망적인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눈이 번쩍 뜨였다. 얘기를 잠시간 정리하는 지 심각한 얼굴이던 아드리네는 곧 턱을 쓸며 시선을 멀리 두었다.

 

 “아드리네…!”

 

 재촉에 깜짝 놀란 듯 동그랗게 눈을 뜬 그녀는 조그맣게 숨을 터트리며 작게 웃었다.

 

 “그는 서툴러. 오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자리만 만들어지면 나는 다리오경이 제자리를 찾아올 거라고 봐. 물론 시간이나 공은 좀 들겠지만.”

 

 우리들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면 그쯤이야. 그녀는 개구지게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자신만만한 태도에 비해 계획은 말도 안되게 유치한 것이었다. 자세한 갈래를 생략하면 아드리네가 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렉슬러에게 함구하고 서로 사이가 식어가던 중 옆을 지켜주던 드렉슬러가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내용의. 것보기엔 제법 그럴싸해 보였지만-

 

 “요새 이런 내용은 마담들을 위한 주간 소설에도 쓰지 않을걸.”

 

 “더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그런 게 있을 리 없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드리네는 그것 보란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해봐. 우리가 갑자기 헤어져? 뒷감당은? 그런다고 다리오경이 오빠를 받아줄까? 아니잖아. 이거야말로 그가 책임을 느끼지 않고, 주변의

눈총을 피할 수도 있으면서 결국 셋 다 행복한 결말인걸. 우리가 필요한 건 약간의 시간과 연기 정도라고.”



 나에게서 더이상의 반박이 나오지 않자 그녀는 장미꽃같이 흥분으로 발그레해진 얼굴을 하곤 몇 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하나, 그의 앞에서 조급해하지 말 것. 또 하나, 그를 몰아세우지 말 것. 그 밖의 다른 일은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한동안은 예전처럼 지내기로 했다. 갑자기 상황이 변하면 아무리 그라도 눈치챌지 몰랐다.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우리는 그의 앞에서 정도를 달리해가며 가볍게 싸웠다. 당연하게도 드렉슬러는 이젠 모임을 불편해했다.


 어쩔 수가 없어 나오긴 하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드렉슬러는 항상 언짢아 있었다. 그런 그를 알기에 기분전환 삼아 교외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하려던 찰나,

 

 “우리 그만하지, 이제.”

 

 붙잡힌 손을 거두며 드렉슬러가 입을 열었다.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또 뒷모습. 그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뒷목이 싸늘하게 식었다. 순식간에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온 몸의 피가 빨려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드렉슬러….”

 

 말을 하는 동안에도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얼굴 근육이 굳고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할지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떨려오는 손에 주먹을 힘껏 쥐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내 물음에 주저하는 기색없이 소리를 내었다. 입으로 뱉는 것인지 가슴으로 뱉는 것인지 얼굴을 볼 수 없어 알 수가 없었지만, 그는 똑똑하고 분명하게 소리를 내었다.


 “아드리네 말이야. 너희 곧 결혼도 해야 할 테고. 그럼 지금부터라도….”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기어이 그의 양 손을 거칠게 낚아채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녀와 헤어질 참이야. 내가 사랑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건 바로.

 

 아차.

 

 드렉슬러는 한숨을 내쉬고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예상한 반응인양 담담하게 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웃는다. 언제나 내가 그를 사랑

한다고 말하면, 그는 웃는다.

 

 “아니지, 로라스. 너랑 나는, 이건 아니지.”

 

 “자네 대체….”

 

 “나한테 너는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정도야. 같이 자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 난 그만하고 싶…”

 

 그를 품 안 깊이 가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날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 드렉슬러. 이가 악물렸다. 제발.

 

 “방금 것은 못들은 것으로 하지….”

 



 나는 그 이외의 것들을 하나하나 떠나 보낼 준비에 서둘렀다. 아드리네와의 관계, 아버지, 가문, 주위 사람의 눈. 지금 나에게 드렉슬러보다 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와 새롭게 시작할 생각에 빠져들면 나머지는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틈만 나면 이별을 이야기했다. 그가 내가 매여있는 모든 것들을 화제 거리로 만들면 나는 항상 관계없는 일들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끊어놓는 식의, 그런 괴상한 대화가 계속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그가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사납게 날 몰아세웠고 그럴 때마다 계속되는 두려움과 불안에 나는 깊은 밤 목초지에 홀로 남겨진 양마냥 시퍼렇게 질려 그를 달랬다.

 

 불안할수록 난 더 그의 입술을 찾고 더욱 힘껏 끌어안으며 손에 닿는 대로 끊임없이 더듬거렸다. 키스해줘. 제발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그는 이런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야릇한 미소를 남기면서 다시금 몸을 열고 키스를 받을 뿐이었다.


 식은 땀에 흠뻑 절어 이렇게 불안하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 후 시간이 조금 지났다. 자신에게 맡기라며 호언장담을 하던 그녀는 몇 개의 사교모임을 잡고 둘이서 참석해야 하는 행사 중 몇몇을 취소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은근히 암시하는 구설수를 띠우고 아랫사람을 시켜 능숙하게 소문을 퍼뜨리면서 계속해서 계획을 진행시켰다. 두말할 것 없이 그녀는 내 든든한 아군이었으며 일은 순조로웠고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문제는 그 망할 놈의 사진 때문에 드렉슬러가 나와의 연락을 모조리 끊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파파라치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을리 없는데. 아무리 다른 이에게 화살을 돌려도 이번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내 부주의였다. 그래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빌어먹을…!”

 

 물건이 부딛히고 박살날 때 나는 괴팍하고 요란스런 소리들이 한껏 날카롭게 공간을 때렸다. 장식장을 발로 차고 식탁 다리를 부쉈다. 현관에서 복도로 응접실에서 식당으로. 발길이 닿은 곳의 가구는 이젠 더이상 멀쩡한 것이 없었다. 눈에 걸린 마지막 의자를 박살내고 문짝마저 날려버리자 그제야 벌벌 떠는 고용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지만…지금 바로 아드리네를 불러다 줘.”


 숨쉬는 것마저 거슬리고 답답해져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발에 종이 다발이 채였다. 헛웃었으나 속은 응어리져 묵직하게 내리눌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신문을 힘이 가득 들어간 구둣발로 짓이겨 밟았다. 사진 속에는 현관등 아래, 욕망에 눈이 멀어 그의 입술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자신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머지 않아 아드리네가 도착했다.


 


 드렉슬러는 날 만나주지 않았다. 수 없이 많은 메세지를 남기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집에 발걸음을 했지만 그를 만나기는커녕 머리카락 한 올 구경할 수 없었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모래알 같은 음식을 씹고 그것을 넘기기 위해 억지로 물을 삼켰다. 잠을 못자 뻑뻑한 눈과 쉬지못해 비명을 지르던 몸은 차츰차츰 마취가 덜 깼을 때 처럼 몽롱하고 둔해져갔다.


 일상생활이 될 리가 없었다. 해가 뜨는 것도, 새벽이 오는 것도 그 무엇도 나에겐 새로울 것이 없었다. 분노가 사그라들자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은 그저 고통스럽기만 했다. 오직 멍한 와중에도 발작처럼 떠오르는 그에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럽기만 한 그것들을 억지로 견뎌내며 하루를 보냈다. 날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나는 관심도 없었다. 드렉슬러. 드렉슬러. 렉스. 내 소중한 별.


 익숙해진 온기, 그의 체취, 목소리, 내가 그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히며 그가 그리워 미치게 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직접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도 괜찮았다. 이 괴로움보다 그 고통이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았다.


 크루그먼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기사가 난 뒤 2주가 지난 날이었다.

 

 


 “얼굴이 마치 야차 같습니다, 알베르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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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너무 흔하고 당연해 새삼 낯설어지는 것들이 있다. 밤이 오면 별은 언제고 뜬다는 사실이나 실은 그것들이 낮에도 항상 빛나고 있다는 그런.

 

 오싹했다. 온 몸의 털 하나하나가 쭈뼛 곤두섰다. 살을 익히는 뜨거운 뙤약볕, 언제나 연병장을 갑작스레 휩쓸던 황금빛 모래바람, 입 안에 씹히는 모래알, 귓전을 날카롭게 때리는 쇠 부딪히는 소리, 그렇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과 그리고. 그리고.

 

 “아…!”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두 눈에 가득 담긴 그의 모습 역시.

 

 “…드렉슬러.” 그의 이름을 조그맣게 부르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차오르는 생명력과 온 몸을 두드리는 심장의 고동,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자 따스함이 손끝을 감싸고 머지 않아 가슴이 울렁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 잊고 있던 나의 별.

 

 마침내 그에게 달려나가려는 순간. 그것은 아주 잠시간의 일이었다.

 

 내 주변에는 짙푸른 어둠이 깔리고 오색의 별이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살피는 사이, 그렇게 그는 점점 더 멀어져 별빛처럼 희미하게 빛나며 태양이 뜨면 곧 사라질 별처럼 눈 앞에 어룽거리기 시작했다.

 

 “안, 안 돼…! 드렉…!”

 

 나는 양 손을 올려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하는 입을 힘껏 틀어막았다. 그에게 달려 나가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단단히 굳히고 뻣뻣해진 가슴을 억지로 웅숭그렸다.

 

 갑작스러운 환영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연병장의 끝에 서있었으며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하던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드렉슬러가 보였다. 거칠어진 숨과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심장. 스쳐 지나가듯 잠시간에 나를 사로잡은 이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분명 몇 번이고 되새겼던 과거가 망령이 된 것이다. 아찔하게 도는 현기증에 한 순간의 파노라마처럼 곧이어 벌어질 일이 눈 앞에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드렉슬러에게 나는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대로 그에게 뛰어나간다면 그를 붙잡고 키스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불타오르는 듯한 머리로 그를 끌어안고 그는 절대 원치 않을 사랑을 퍼부을 것이었다. 그럼 드렉슬러는 다시 도망가버리겠지. 주먹을 단단히 쥐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를 갖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그가 있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손을 흔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었다. 드렉슬러는 부지불식간에도 계속 나를 괴롭히던 걱정과는 다르게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더구나 그 밤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녹아 들었다. 그만큼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으나, 동시에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그를 내 시선 안에 놓고 일정 선을 지키는 지옥 같은 일 역시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연병장, 처음 드렉슬러를 봤던 그 곳에서 그는 자주 창을 손질했다. 찌는 더위에 흘러내리는 땀이 눈썹을 지나 속눈썹에 맺힐 때마다 나는 그의 땀방울을 핥고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그가 친근함을 가지고 부딪혀 오는 그 온기와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다정함과 무심하게 잡아오는 어깨의 간질거림에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행복으로 일그러지는 표정마저 나는 그로부터 숨겨야 했다. 부풀어오르는 감정에 목이 졸리고 손 끝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이 모든 수고와 고통들은 내가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감내할 만한 것들이었다.

 

 모든 일들이 익숙해지기까지 몇 년이 지났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나에게는 항상, 그리고 갈 수록 어려워졌다. 하지만 덕에 나는 그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그 후년, 내가 생활관을 나설 때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바라고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렇게 그의 곁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목구멍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것을 참아내었다.

 

 

 

 

 우리는 자주 같이 별을 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야외로 나가거나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부 천장에 유리를 덧댄 그의 다락방에 나란히 앉아 그 창들을 열고 하늘을 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그의 집에서 저녁식사 후 가볍게 포도주를 마시고 커피를 끓여 다락에 올랐다. 그러다 계단을 다 오르지 못하고 우뚝 걸음이 멈췄다. 시선의 끝에는 옛날처럼 노을을 마주하고 내게 등을 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드렉슬러가 있었다. 커피를 든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밤이 찾아왔다. 어릴 적의 그가 다시금 얼굴을 감싸 쥘 것만 같아 나는 그와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되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하게도 드렉슬러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피곤하면 먼저 자. 불편하면 집에 가도 좋고.”

 

 무릎을 감싸 쥔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몸을 더 가까이 붙여 어깨를 마주 대었다.

 

 “아니야. 미안하네.”

 

 다시 올 리 없는 시간에 메여 멍청하게 군 것에 사과했다. 이렇게 닿아 있는 그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별빛이 어스름해지자 그는 슬슬 피곤한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어떤?”

 

 “너 옛날엔 나 싫어했잖아.”

 

 “그건…!”

 

 당황한 나머지 숨을 급히 들이켰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다시 숨을 내뱉지도 못하는 나를 보더니 그가 웃는다.

 

 “괜찮아, 나도 너 별로였어.”

 

 “그랬…는가.”

 

 분명 그랬겠지. 당연한 일인데도 괜히 서운해져 입이 비죽댔다.

 

 “그냥, 있잖냐….”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결국 반대편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저 모양새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입가가 나도 모르게 실룩거렸다. 그는 정말이지 귀여운 사람이다.

 

 주저하다 마음이 섰는지 움직임이 멈췄다. 움직이느라 나던 소리가 멎자 고요가 나지막이 깔렸다.

 

 “그냥, 그 때. 네가 날 찾으러 왔을 때 있지. 좀…기뻤다고. 솔직히 누가 올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 그래서 네가 와줬을 때, 겁이 날 정도로 기뻤어. 그냥…그냥, 고마웠다고.”

 

 메마른 음성의 끝은 불안하게 마무리되었다.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이 떨리는 말 끝에 맺혀 뱃속부터 간질거리며 팔을 타고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붉어져있을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를 껴안고 사랑한다 입맞추고 싶었다. 격양된 감정에 숨이 거칠어지자 몸이 떨렸다. 그를, 그가 너무 소중해서, 엉망으로 헤집어놓고 싶었다.

 

 서툰 그를 사랑한다. 사랑스런 나의 친우. 그가 나만을 바라보고, 나에게만 웃고, 나에게만 화를 내주었으면. 저 사랑스러움을 나만 갖고 싶다. 오직 나만. 설기게 얽어 놓은 제방이 터지듯 충동에 눈 앞이 붉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뒤에서 껴안고 목 뒤를 입술로 물어 핥았다. 그 매끄러운 감촉에 뇌가 마비되어 저리는 것 같았다. 나에게 다음이란 것은 없었다. 그렇게 친우라는 말이 더는 싫었다.

 

 “아! 너…!”

 

 뿌리치려 힘을 주는 그를 더 꽉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용서하게 드렉슬러.”

 

 나는 온전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삐걱대는 낡은 매트리스 조차 없는 맨 마룻바닥에서 나에게서 달아나려는 그의 허리를 붙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정도일까.

 

 그는 생각보다 더 심하게 발버둥쳤다. 쉬, 착하지 드렉슬러. 가만…가만히. 아이를 대하는 듯한 속삭임에 그는 바닥을 기며 이러지 말라 애원했다. 드렉슬러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에겐 그를 설득할 정신이 없었다. 욕망에 흐려진 이성의 끝을 겨우 붙들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속삭였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네겐 아드리네가 있잖아.

 

 결국 절규하듯 내뱉어진 말에 나는 그를 뒤집어 양손을 죄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정강이로 허벅지를 단단히 내리눌렀다.

 

 숨을 고르고 마주한 시선에서 어렴풋이 욕정을 읽자 단숨에 성욕이 밀어닥쳤다. 아직. 아직이다. 좀 더 견딜 수 있어. 아랫입술을 아득 깨물었다. 아드리네. 아드리네라고?
 
 "…그녀와는 이런 짓은 하지 않아."
 
 아드리네와의 관계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드렉슬러가 들어찬 이후로는 나에겐 언제나 그뿐이었다. 불쾌한 얘기를 들은 듯 찌푸려진 미간에 그는 김이 샌 마냥 헛웃었다.
 
 "그래. 그렇군."
 
 나까지도 헛헛해지는 날 숨에 손에 힘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는 느슨해진 손에도 더 이상 날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허망한 얼굴마저 금세 지우고 양팔로 목을 감은 채 허리까지 은근히 비벼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거지?"
 
 그는 유혹적이었다. 농염하게 지어진 미소 뒤에 입술을 뒤틀며 나를 끌어내렸다.
 
 "하자, 로라스. 나 지금 완전히 흥분했어."
 
 머리 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끊임없이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도저히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왜 가만히 있어. 하고 싶다고, 섹스 말이야. 귓가에 젖은 숨을 함께 속삭이며 그는 멍청히 굳어있는 내 어깨를 주무르고 등허리를 쓸어 내리는 손으로 피부를 뜨겁게 덥혔다. 바지 단추가 열리고 지퍼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나는 의식적으로 경고등의 불을 내렸다.
 
 그렇게 이성조차 감성에 동조하는 몽롱한 정신으로 드렉슬러의 신음에 더운 숨을 섞어 그를 가졌다.
 
 하지만 그를 파고들 수록 그는 내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유리감에 나는 더욱 몰두하여 허리를 놀렸다. 그저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갈망하던 먹잇감을 손에 넣은 기쁨에 도취되어선 정말 그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굶주림의 끝에 갈증이 일자 그 끝의 끝에서 결국엔 알게 되었다. 이젠 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을.
 
 수 번의 섹스와 수십 번의 키스와 수백 번의 포옹. 그리고 그 보다 더 나의 마음은 커져만 갔다. 눈덩이 불어나듯 점점 커지는 마음이 불안할 때면 그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쥐어주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졸랐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그 말 만큼은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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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리네와의 약혼식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그가 나오는 꿈을 꿨다. 뇌마저 녹아 내리는, 뜨겁게 질척거리는 꿈.

 

 

 나를 들여다보던 그의 시선 속 기쁨.

 나로 인해 짙게 물들던 상기된 뺨.

 그의 달아오른 피부 위에 남긴 내 손자국.

 

 

 폐부까지 가득 채운 만족스러운 포만감의 끝에서 눈을 뜨면 현실에서 맞는 순간의 쾌락에 모든 빛이 명멸하고 세상이 일렁였다.

어지러운 시야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움이 가라앉자 나는 문득 그가 그리워졌다. 눈물이 났고 주인 없는 다락방에서의 서러움이 북받치기를 수 번. 머지않아 가슴이 뜨거운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는 나를 지나쳐간 사람이었다. 또 그녀를 사랑하지 않느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들어차있다고 해서 그녀를 내칠 수는 없었다. 열렬하고 뜨겁진 않았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녀를 좋아했으며 이미 내 어깨에 짊어진 것은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를 그와 저울질 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다행히도 내가 그와 헤어졌을 때의 그의 나이가 되자 꿈은 점점 빈도수가 줄어들었고 통증은 둔해져 갔다. 한동안은 시간과 함께 그렇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아드리네와는 썩 괜찮았다. 연인으로서도 배우자로서도 아드리네는 좋은 여자였다. 나 역시 그녀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고 양가의 부모님 역시 원래부터 교류가 있던 가문끼리의 결합이라 기꺼운 기색이 역력했다.

 

 문제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이성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 포옹과 가벼운 키스로 마음을 전했지만 키스마저 서로의 입술이 닿는 것이 어색해 볼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소문에는 내가 그녀를 귀애하여 섬세한 조각품처럼 그녀를 대한다느니 그녀의 애칭이 데이지라는 점에 엮어 내가 그녀의 순수를 지켜주느니 했지만 남들이 상상과는 달리 실상은 이러했다.

 

 그녀가 학업을 마치고 사교계에 정식으로 발걸음을 하자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정원에서의 티타임 중 입을 먼저 연 것은 그녀였다.

 

 

 “어떻게 할거야?”

 

 “무엇을?”

 

 “우리 말이야. 나는 이런 관계 좀 아니라고 봐. 가끔씩은 죄책감까지 느껴져. 우리를 잉꼬나 늑대같은 것에 비유할 때 말이야.”

 

 “로제.”

 

 “맞아! 또 걔야. 알베르토 경은 어쩜 그렇게 신사적이시고~드라군에서 훈련하는 모습은 어쩜 또 그렇게 멋지시고~”

 

 몸을 배배꼬며 콧소리를 내는 아드리네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골이 났는지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키기에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신경 쓸 것 없어.”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 너도 고자가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서로가 서로한테 아무 감정도 안 들잖아?”

 

 “아드리네……말이 거칠군.”

 

 “네 앞에서만이야. 중요한 건 이거야.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정말 연애가 맞느냔 말이야.”

 

 

 잠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를 가만히 보았다.

 

 “내 데이지, 약혼자 앞에서 너무 말이 심한 것 아닌가?”

 

 오랜만의 단어에 멈칫한 그녀는 기가 막힌 듯 허-하고 코웃음을 웃더니 다소 거칠게 팔을 들어 테이블에 턱을 기댔다.

 

 “이것 봐. 네가 그렇게 촉촉한 목소리로 애칭을 불러주는데 심장이 조용하다니 이건 말도 안 돼.”

 

 그녀는 뚱한 얼굴로 찻잔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었다.

 

 “웃어? 지금 웃었어? 너 데이지 꽃말이 뭔지 나 알아? 관심도 없지? 그냥 내가 좀 귀엽고 하니까 데이지 데이지 하는 거 다 알아.”

 

 “그럴지도 모르지.””

 

 웃음이 더 나는 것을 막으려 찻잔에 입을 댔다.

 

 “넌 날 고작해야 여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분명해.”

 

 “너 역시 날 바보나 고지식한 애늙은이 정도로 생각하니 내가 더 손해인 것 같은데?”

 

 “정말 한마디도 안지는 군요, 알베르토 로라스. 응?”

 

 아드리네는 다시금 한 모금 차를 머금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 가슴이 뛰고 내 모든 걸 걸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야.”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실소가 나왔다.

 

“넌 날 너무 외롭게 해.”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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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 1. 신랑, 신부 2. 연인, 약혼자 3. 신참, 신출내기

 

 

 다리오 드렉슬러. 나에게 있어 이 이름은 언젠가는 물리쳐야 할 절대 악 같은 것이었다.

 

 

 

 학부를 통틀어, 심지어 교외(校外)에서 조차 드렉슬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내로라하는 명분가의 자제였고 믿지 못할 정도의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그와 동시에 모든 사건과 사고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내 속을 메스껍게 했다.

 

 누가 보든지 간에 그는 대단했다. 머리가 좋은 만큼 벌이는 일은 대담했고 철저했으며 결정적으로 반사회적이었다. 신분에 상관없이 입학이 가능한 드라군 부속의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에게 그 당시 교사들의 권위라고 하면 신과 비견될 정도라 처음에는 나 역시 드렉슬러가 나쁘지 않았다. 모두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일에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조금 과격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는 교사를 골탕먹이고 학교의 몇몇 기물-새롭게 세운 이사장의 동상, 학생들에게 추가의 요금을 걷어 별관에 마련한 교사용 휴게실 같은 것들-을 망가뜨리거나 때때로 폭파시켰다. 일련의 일들에 불만을 품었던 많은 학생들이 드렉슬러에게 환호했다. 다만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추종자라 일컫는 이들은 10대의 혈기로 그의 흔적을 쫓아 사건을 더욱 난잡하게 헤집어놓았다. 흥에 취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본능을 따라서. 그는 정도를 벗어난 소란을 나서서 잠재우지도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중을 선동하면서 정작 자신은 물과 기름마냥 그렇게 사건에서 떨어져 나왔다. 결국 관계없는 이들이 벌을 받을 때도 그는 이 역시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오히려 종종 발을 빼기위해 그들을 이용하곤 했다. 그럴 때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예전 우연히 스치듯 본 자신만만하게 웃던 얼굴, 정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눈동자, 그 기가 질릴 정도로 모든 이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 같은 것들이. 그것에 학교 안을 메운 예의 소문들-안 좋은 패거리와 어울려 술이나 담배를 한다, 수업을 자주 나오지 않는다 같은-까지 오버랩 되자 나에게 있어 드렉슬러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최악이 되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따지게 된다면 꼬박 밤을 새울 정도의 무질서에 한창 비위가 상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추종자들-역겹다-이 결국은 피해자를 냈다. 무너진 돌담의 외벽에 깔려 같은 반의 학우가 입원을 하자 나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어떻게 보면 드렉슬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음에도 나는 이 모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소란을 원치 않는 만큼 누군가가 그를 막아야만 했다. 나는 도저히 그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나를 부추겼다. 불의를 보고 참아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란다.

 

 상급생의 건물에 하급생의 방문은 불문율처럼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는 괘념치 않아 보였다. 심지어 그의 제안을 따라 말하기 편한 곳으로 장소까지 이동하자 예상보다 협조적인 태도에 나 역시 격식을 갖춰 그를 대했다. 그가 일으킨 굵직한 사건 몇 가지와 내가 왜 그를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경위를 설명하자 그는 웃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이 되었다.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군? 피곤한 스타일이야."

 

 

 이것이 상황설명 후 들은 첫말이었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아래턱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그는 그것을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요약하면 그거잖아. 질서를 어지럽혀서 용서할 수가 없다? 와-이런, 세상에나 유치하긴. 난 바빠서 너랑 놀아줄 시간 없으니까 영웅놀이는 딴 데 가서 알아봐."

 

 

 뒷말을 듣지도 않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등 뒤를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훈계하며 바짝 쫓았다. 두 살 차이라는 것 외에도 그는 고등부였고 나는 중등부였다. 특히나 드라군의 부속 중, 고등학교인 우리는 선배의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그런 것을 따지다 보면 내가 그 때 얼마나 정신이 나가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존대도, 경어도 쓰지 않으면서 당신-이란 호칭까지 썼던 것 같다. 감히. 하지만 그 정도로 어린 마음에 조롱거리가 되어버려 치솟는 분노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분노로 눈앞이 시뻘개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부끄러울 일이다. 드렉슬러 역시 어지간히 열이 받았는지 결국엔 골목 쪽으로 나를 몰아넣고 몸을 밀어붙였다.

그 때 처음으로 희미하게 바람 냄새가 났다.

 

 

 "이름이 뭐냐, 꼬마."

 

 

 "무례하군."

 

 

 얼떨떨한 기분을 내색 치 않으려 뱉은 말은 과하다 싶게 딱딱했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는지 그는 더욱 가까이 얼굴을 밀어붙이며 빙그레 웃었다. 순간 나는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이전엔 느낀 적이 없는 무언가가 순식간에 치고 올라왔다. 숨쉬기가 불편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흠, 그래. 내 이름은 다리오 드렉슬러다. 자, 이름이 어떻게 되지?"

 

 

 "알베르토 로라스, 라고 한다."

 

 

 "아, 네가 알베르토 가(家) 도련님이었군. 그래? 그럼 로라스라고 불러도 되겠지? 응?"

 

 

 그는 나를 때리거나 협박하지 않았다. 다만 제안을 했다. 어디 한 번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네가 얼마나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하나 막지 못하면 다른 거라고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열이 받아 마른 입술을 핥고 그는 제법 비열하게 웃었다. 그렇게 독기 서린 눈을 마주하자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드렉슬러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사라지자 잠시간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풀썩-하고 모래먼지가 날렸다.

 

 

 그 이후의 행보는 단순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나는 항상 그를 쫓아다녔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 그렇게 몇 주간의 신경전이 이어지며 그는 금세 자신의 패턴을 되찾았다. 귀찮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을 갔고 그렇지 않은 날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젠 근처에 내가 있는 게 익숙해졌는지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을 이따금씩 권하기도 했으나 나는 그가 떼를 쓰거나 내킬 때만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보니 그것은 몹시 기괴하고 이상했다. 지금껏 제멋대로 행동한다 싶었던 것들이 그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인데, 내 눈에는 마치 그것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는 고뇌했고 괴로워했으며 무언가에 쫓겨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욱 필사적으로 하늘에 매달렸다. 마치 저 먼 하늘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처럼. 그 모든 것이 병약한 어머니와 자신을 얽어매는 가문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 후로도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숲길로 발을 돌렸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묘한 발걸음이었으나 괘념치 않고 뒤를 쫓았다. 그는 언덕 위 무너질 듯 위태로운 헛간으로 발을 옮겼다. 허락 받지 않은 공간에 들어선 불청객이 된 기분에 헛간 아래에 멀거니 서서 서쪽으로 난 외 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드렉슬러가 먼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위로 올라오라 손짓했다. 부실한 판자를 대어 걸을 때마다 괴상한 소리가 나는 계단과 태양이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빛을 산란시키며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마른 냄새를 지나고 나니 그 계단의 끝에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는 드렉슬러가 서있었다.

 

 

 "너만 알고 있어. 내 비밀아지트야."

 

 

 마지막 보루가 되곤 한다는 다락방에 발을 들여놓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째서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나무판자에 발을 올려놓자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갑작스레 겁이나 다시금 허락을 구하듯 드렉슬러를 쳐다보았을 때 하늘이 아닌 나를 보며 웃던 그 말간 얼굴에,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한 감촉이 심장을 헤집었다. 그것은 가슴 한켠 아릿한 것으로 남아 집에 와서까지 도통 가시질 않았다. 그 후엔 상스럽게도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몸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몇 달 뒤, 며칠간 드렉슬러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소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렸다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가 사라진 지 사흘째, 나는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 등을 챙겨 예전 그를 쫓다 다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노을이 지는 하늘을 등 뒤로 하고 뻐꾸기 우는 숲길을 지나 신 안에서 바작바작 밟히는 모래를 털어내며 비포장 찻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야트막한 언덕 위 이미 절반은 무너진 작은 주택과 무너질 듯한 2층짜리 헛간이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은 걸음과 함께 점점 빨라졌다.

 

 

 그는 인기척에도 뒤를 돌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는지, 아니면 주변의 변화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말라붙은 고목. 아니, 말라가는 고목처럼 그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몰골로 목숨 줄 마냥 창가를 쥐고 매달려 있었다.

 

 

 "실례하지."

 

 

 

 공중에 부유하는 어색한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배경에 녹아 들어가는 그를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침묵을 깨야만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차마 그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제 3자로서 그의 고요를 깨트리는 것은 내게 마치 불경한 일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건 말에 대꾸는 없었다. 그의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 끝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옆얼굴을 살피는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그로부터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는 없었지만 그가 나를 내쫓지 않고 내가 옆에 있음을 꺼려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밤이 되고 별이 뜨자 그는 숨을 터트리듯 내뱉었다. 그림 속에서 빠져 나온 인물처럼 그는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벽에 등을 기댔고 고개를 젖혔다.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몸을 살짝 들어 움직이자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물 좀 줄래."

 

 

 나는 별 말 없이 가방에서 물병과 건과일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됐어."

 

 

 물병만 받아 든 그는 그것을 꿀꺽꿀꺽 단숨에 마셔버리곤 다시금 숨을 몰아쉬었다.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말꼬리에 묻어나는 웃음에 나는 조금 얼이 빠졌다. 웃는 소리와 함께 달빛이 닿은 복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는 곧 몸을 일으켜 무릎을 세워 앉고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곤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며 눈동자를 좌우로 서서히 굴렸다.

 

 

 "가득 들어있네."

 

 

 숨이 멎어 드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며칠간 먹지도 씻지도 못했을 그에게서 익숙한 바람 향이 훅 끼쳤다. 이 무더운 여름에 그럴 리 없는데도.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익숙해지며 옅어지자 사라지는 꼬리가 아쉬워 숨을 잔뜩 들이켰다.

 

 

 "별 말이야."

 

 

 또다시 웃음기를 달고 멀어지는 그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기색 없이 그는 이번에야 말로 어둠 속에서 활짝 웃었다.

 

 

 "이렇게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너무 멀다는 걸 깨달아버리거든."

 

 

 그는 붙잡힌 손을 털어내고 다시금 손을 뻗어 얼굴을 감싸 쥐고서 내 두 눈을 살피며 말했다. 속삭여 오는 소리가 머릿속을 간질일수록 별들에게 질투가 났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는 그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겠지. 날카롭게 떠오른 사실이 이미 내 것 같지 않은 심장을 옥죄었다.

 

 그러다 찰나. 아주 찰나의 순간.

 

 그가 마주 댄 입맞춤이 술김이었는지, 입을 맞출 때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닿아오는 뜨거움이 멀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벼운 부딪힘을 깊이 이끌었다. 부드럽게 헤집고 깊이, 더 깊이. 곧 어깨를 밀리고, 밭은 숨을 뱉으며 줄곧 그림자가 덮여있던 얼굴에 붉은 기가 서리자 그는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졌다.

맞붙은 시선을 끊어내듯이 눈을 감고 이마를 짚은 채 야속하게 드러눕는 그를 따라가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조금 상한 몸을 즈려눌렀다.

 

 

 "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미안."

 

 

 사과. 잠깐의 스침과 달큼해진 사과에 나는 조금 버둥거리는 그를 내리누르고 다시금 입을 맞췄다.

 

 

 

 

 그 후에는 우리 사이에 묘한 장벽이 생겼다. 어색한 공기와 죄책감으로 지난 일에 관해 사과를 하려 해도 드렉슬러가 먼저 눈치를 채고 꼬리를 끊는 일이 잦아져 나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관계 회복을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갈수록 얼굴을 마주하는 빈도마저 줄어들어 나는 결국 방과 후 드렉슬러가 자주 다니던 곳을 찾아다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드렉슬러는 그의 흔적마저 지우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드렉슬러가 졸업을 해버리자 이젠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중등부와 고등부가 동시에 식을 올리다 보니 졸업식 당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이 끝남과 동시에 교문 앞에 멍하니 서서 그간 그와 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새겨보는 것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질문에 희끄무레한 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목이 메여 자유를 쫓던 그가 드라군과 자유를 저울에 놓고 무엇을 택했을 지는 불 보듯 뻔한 것. 이어지는 낯선 감정에 뜨거운 것이 울렁거렸고 멀미가 나는 듯 속이 메스껍게 뒤집혔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초조하게 그가 있던 곳을 더듬었다. 조급한 발걸음은 나답지 않은 것이었고 밤이 깊어 그의 헛간에 다다르자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너무 가까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다. 별도 빛을 잃고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바람을 타고 그가 사라졌듯이 내가 디디고 있는 땅마저 푹 꺼질 듯한 암담한 기분과 심장을 태우는 뜨거운 고통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해는 언제고 다시 뜬다. 어린 치기였는지 이 원인 모를 불꽃은 얼마 안가 가라앉았으며 나는 곧 정해진 수순인양 아드리네와 약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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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꽃다발을 만들어 발치에 얹어놓고 나는. 사랑스러운 나의 Novio.

무릎을 꿇고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어쩌면 당신에게는 저주가 될지도 모르지, 언제나 아름다울 나의 데이지.

 

 

 

-솔직히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 아마 대부분이 동화 속 얘기 같이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우리에대한 환상 때문인 것 같지만요. 인터뷰는 안하고 싶었지만 할 얘기가 조금 있어서요. 당신네들 가쉽거리에서 흔히 얘기하고 있는 도둑고양이 말이죠.

 

아드리네. 그윽하게 불러주는 걸 난 참 좋아했어요.

알고는 있었어요. 그가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던 때부터인가, 여자의 촉은 원래가 굉장히 무서운 거라서요. 하지만 아직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나는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는 서로 익숙해져버린 것 뿐이에요. 사교계에서 데뷔하기 전부터 아버님들끼리 알던 사이라서 우리는 함께 놀고 얘기하고 웃곤했어요. 그 때 만큼은 정말 행복했죠. 내가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모든 건 변해버렸지만. 변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어요. 그는 그것을 몹시 힘들어하곤 했고요. 드라군에서 다시금...그... 다시 만난 건 필연이었을 거에요.

 

그는 그 사람 얘기를 자주하곤 했어요. 아니, 그 얘기만 했죠.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뭐가 잘 어울리고 뭘 잘먹고, 아마 내가 그 사람의 어머니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정말 이상한 것은 그걸 듣고 있는 나도 행복했다는 거예요. 질투가 나지 않았다는 게 우리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겠죠.

 

그래요 어쩌면 이건 슬픔을 감추기위한 변명정도로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는 결국 자신의 짝을 찾아 날아가버렸는 걸요. 내가 바라는 건 하나 뿐이에요. 그도 나도 행복해지는 것. 사실, 그 전의 우리,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는 저에게 거짓말을 할 정도로 모질진 못했어요. 아니,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죠. 전 그게 좋기도 했고 싫기도 했어요. 그는 정말이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가 만약 거짓말을 잘했더라면-이란 생각을 하면 솔직히 좀 끔찍해요. 그 사람의 삶도 제 삶도 분명 죄다 망가졌겠죠. 스캔들…. 글쎄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더라도 그는 그 시간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요. 그래서 우린 헤어졌고 전 그게 슬프지 않아요. 그는 정말 좋은 친구였는걸요.

 

-리마르노 파센 아드리네, 알베르토 로라스와의 이별에관해

 

다리오 드렉슬러, 괴짜, 성격이 나쁘다, 친해지기 어렵다.

 

수식어가 참 개판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방금 전 알베르토 로라스 역시 쫓아냈다.

 

지겨운 세레나데, 고백, 선물. 죄다 피곤하다.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편지와 선물들은 더욱이. 손가락을 베인 이후로 수취인을 알수 없는 편지는 보지 않고 버린다. 소포 역시 머리 잘린 고양이를 본 이후엔 열지 않고 버린다. 조용히 지하실에 처박혀서 연구나 하는 게 내 삶의 조그만 낙이었는데 얼마 안되는 친구라는 녀석이 내 고요를 파탄냈다. 내가 지금 화가 난 이유는 명확하다. 전부 저 잘난 알베르토경 때문이다. 티파티에 싫증이 난 귀부인들이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내 얼굴이 가쉽지에 실리고 도둑고양이 따위로 불리는 날이 올줄이야. 세상에.

 

집 앞에서 키스당하는 사진을 찍혔다. 재수 없게도 '내 집' 앞에서, 그 유명하고 고매하신 알베르토경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게끔. 이건 진짜 재수 없는 일이다. 침대 위의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빌어먹을. 솔직히 사교계 스캔들은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난 내놓은 자식이고 이번 일만해도 본가에서는 연락이 없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도 문 밖에서 열심히 노크 중인 저 녀석이다. 끔찍하게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얼굴로 선물 따위를 챙겨 방문하고 있다. 지금은 평소보다 조금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지만. 방금은 실수였다. 문 틈으로 오지 말라고 말하려는 사이, 젠장, 그, 밀어붙여져 또 키스 당했는데 바닥에 주저 앉아서 받는 키스가 나쁘지 않은 바람에 또 슬쩍 그냥 해버렸다.

 

다리오 드렉슬러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쓰레기도 아니었는데 이젠 쓰레기다.

 

매일 한아름 안아오는 꽃은 나는 이름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애기를 나누게 해달라는 애원도 전혀. 달콤한 입맞춤에 지겨워져서 아드리네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녀를 위한다면 이젠 그만 두어야 한다는 소리를 한 직후 모든 것이 변했다. 냉전 중이던 둘의 헤어짐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가쉽지에 대서특필 되었다. 오늘자 신문을 펼쳐들었다가 구석지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제목에 기함했다.

 

'부서진 동화! 도둑은 누구인가? ' (Broken fairy tale! Who is the burglar?)

 

 이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는 도대체 어떤 놈이 쓰는 건지. 몰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나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냐. 아니야."

 

 한숨을 쉬었다. 학부에 있을 때부터 난 좀처럼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나는 별종이었다. 매주 받는 상담과 집안 어른들의 감시 속에서 선을 벗어나지 않게끔 조율하며 사고를 치고 다녔으니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을리 없었다. 같이 다니는 놈들은 한정되어있었고 깊이 사귀는 녀석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부에 막 들어갔을 무렵인가 쬐끄만 꼬맹이 하나가, 물론 덩치고 뭐고 이미 어린애라고 보기엔 좀 그랬지만, 여하튼 덜 익은 과일 같은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어울리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날이 서있고 맑고 도도한 눈매가 눈에 꽤나 거슬렸던 것 같다. 같이 있는 주제에 날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서 당시 나는 녀석에게 술을 나누고 담배를 물려주며 심술을 부렸다. 이래도 안 떨어져?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잤다. 술을 왕창 마신 것도, 담배를 엄청나게 피워댄 것도 아닌데, 아지트 삼던 내 다락방에서, 별을 가득 담은 그 푸른 눈에 견딜 수 없어져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누가 먼저 달려들었지? 그리고 내가 그날 뭐라고 했더라.

 

 그 후로는 내가 녀석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나니 만날 길이 없어진 것이었지만 비슷한 뒷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숨거나 도망쳤다. 그것은 죄책감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는데,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담겨지지 않은 행위에 조금 신물이 났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난 날 다 줘버린 것이었는데. 어쩌면 배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고 그저 어쩌다보니 나라는 자연재해에 휘말린 건 아닌가하는 그런 의문이 문득 들자 나는 더 이상 녀석의 얼굴을 볼 힘이 없었다.

 

 미처 생각도 못했던 드라군에서 다시 만났을 때, 뼈가 굵어진 녀석은 완전히 남자가 되어있었고 별 감정은 없어보였다. 나 역시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유성우가 떨어지던 날 밤.

 

 항상 녀석은 별과 함께 왔다. 별이 지고 동이 틀무렵 갑작스레 뜨거운 입술이 뒷목을 삼켰다. 달큰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커피향, 그리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푸른 별빛이 다시금 쏟아지자 나는 병신 같이 또.

 

 "아, 등신. 진짜."

 

 결이 거친 머리를 한껏 헝클었다. 손을 세워 벅벅 긁어내리니 온 몸이 가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정하다. 필요 없이. 감정 없는 상대를 뒤흔들 정도로.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지 못할 감정 때문에 아드리네의 얼굴을 못 보게 되었고 이젠 감질나게 나누던 온기조차 모조리 빼앗겼다. 연인, 우스운 얘기다. 적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사람의 감정은 우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변할 것으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사절이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바쁜 사람이니까.

 

 크루그먼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제 곧 집 역시 옮길 생각이다. 말없이 떠나면 서운해 하겠지만 적어도 한 명은 제자리를 찾게 될 테니까. 입이 쓴 느낌이라 몇 번 입맛을 다셨다.

 

 꽃병에 물을 간다. 자꾸 귀찮은 것을 가지고 오니까 이쪽은 일이 늘어난다. 현관의 선반에는 정갈한 글씨로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가 쌓여만 가고 몇 주간의 실랑이 끝에 드디어 식재료도 바닥이 났다.

 

 새벽같이 모자에 썬글라스까지 끼고 집 밖을 나섰다.

 

"잡았다."

 

"미친…!"

 

 -가 그만 붙잡혔다. 시바아알. 깜짝 놀랐잖아. 해도 안 떴다고 이 미친놈아. 너무 놀라서 심장부근을 움켜쥐었다. 진짜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상식인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주위를 살피고 녀석을 문 안으로 떠밀어 넣었다.

 

 덜컥. 문이 닫히자 어스름 속에서 온 몸을 끌어 안겼다.

 

 미친 사람은 힘이 세다. 끌어안은 손을 풀어낼 수도, 목덜미에 파묻혀 숨을 들이켜는 얼굴도 밀어낼 수가 없다. 코끝에 큼큼한 땀냄새가 머물었다.

 

 "보고 싶었어, 드렉슬러."

 

 "난…아니야. 저리 비켜."

 

 억지로 떼어 놓자 제 손 만한 선 굵은 손을 쥐고 입을 맞춘다. 간지럽다. 뜨겁고. 조금은 부끄럽다.

 

 "제발 날 밀어내지 말아."

 

 "돌아가."

 

 "어디로?"

 

 "어디로든지."

 

 "갈 곳이 없어"

 

 담담히 반짝이는 눈이 부담스럽다. 저 눈만 마주하면 혼란스러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키스하고 싶지만.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입매가 단단히 굳는다. 녀석은 나와 아드리네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다르다. 녀석의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을 때마다 남모를 희열마저 느낀다. 이별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고 그건 알베르토 로라스이기 때문에 더욱 불가능하단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정도로, 조금은 즐거워진다.

 

 "그녀와는 헤어진 지 이미 오래야…. 그녀가 통보했고 나는 받아들였네. 우리의 헤어짐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곳이 네게 어울려."

 

 "편지, 하나도 읽지 않았지?"

 

 "당연하지."

 

 녀석은 내 한쪽 손목을 쥐고 남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깊게 내쉬는 한숨에 피로가 묻어났다. 공기가 가라앉고 어깨가 무거워졌다. 다시금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몰려와서 이젠 질식할 것 같다.

 

 "나는 그녀 때문에 자넬 만난 게 아니야. 그런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난 전혀 몰랐네. 우리가 헤어진 것 역시 자네 탓이 아니라는 얘기도 해야겠어. 자네는 항상 자책을 하곤 해. 좋지 않은 버릇이고, 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자네 앞에만 서면 바보 같이 다 잊어버리고 말아. 두서가 없어 미안하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아드리네를 끌어들인 건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였는데 굳이 친절하게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절박한 얼굴을 한 네 녀석은 별로야. 마음이 안 좋아지거든. 넌 좋은 녀석이야. 난 아니고. 그뿐인데. 이것도 끝내 말 못하겠지만.

 

 "나야말로 그간 우유부단했어. 미안하다. 확실히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네가 날 정말 사랑한다 하더라도 난 아니야. 이마저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는 거니까 그만둬줬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고. 우린 여기까지다, 로라스."

 

 "자네는…정말 예전과 변한 게 없군. 항상 밀어내기만 해."

 

 "그러냐."

 

 "그런데도, 나는. 자네를 놓을 수가 없어."

 

 운다. 그 알베르토 로라스가 눈물을 참기 위해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고 울고 있다. 꽤 굵은 눈물방울들이 흐를 새도 없이 뚝뚝 떨어졌다. 멀미하듯 속이 울렁거려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군."

 

 손이 더욱 바투 잡혔다.

 

 "난 항상 그랬네. 말없이 자네가 사라진 뒤에 여기에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 이제야 품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러운 떨림에 머리가 어지럽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눈물로 젖은 얼굴이 더욱 깊숙하게 파고든다. 그러다 허리를 끌어안고 깊게 입 맞춘다. 키스 진짜 끝장나게 한다.

 

 "왜 자꾸 날 헷갈리게 하는 거지, 드렉슬러. 왜 그저 놓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냔 말일세."

 

 입술을 마주대고 말을 하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입술이 간지러웠다. 잠시 맞붙은 시선에 눈을 감고 다시금 입을 맞췄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눈을 감아도 일렁이는 푸른 별빛이 잔상을 남기며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소름이 내달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어.

 

 끌어안고 능숙하게 등허리를 훑었다. 가볍게 벨트를 풀자 성급한 손이 서투르게 옷을 벗겨냈다. 정신없이 몇 걸음 걷다보니 침대 가에 닿았고 무의식중에 이미 닫혀있는 커튼을 다시금 확인했다. 동이 텄는지 천을 뚫고 빛이 새어들었다.

 

 나는 쓰레기다.

 

 뜨거운 열기, 방안 가득 찬 신음소리, 그것을 덮는 그간 들을 수 없었던 고백과 미처 전하지 못한 끈적한 감정들로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하얀 커튼은 노을에 물들어 있었고 평소보다 훨씬 허리가 아팠으며 뼈마디가 삐걱거리고 음식냄새가 났다.

 

 삐그덕 거리는 걸음을 옮겨 부엌으로 향했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집에서 뻔뻔하게 콧노래나 불러대는 남자가 보였다.

 

 "뭐해?"

 

 "일어났는가? 꽤 달게 자기에 장도 조금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네. 거의 다 끝났어."

 

 저렇게 맑은 얼굴을 보면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 수척하고 안 좋아보이던 안색이 하룻밤사이에 혈색이 돌고 반짝거린다. 사기 당했다. 이건 사기인 것 같다.

 

 "느그 집에 가."

 

 의자를 잡아 빼어 늘어지게 앉으며 중얼거렸다.

 

 "거절하지."

 

기억에도 없는 앞 접시와 찻잔 세트 등을 꺼내는 로라스는 즐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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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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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닿는 곳에 되는대로 입을 맞췄다. 오랜만의 드렉슬러는 조금 마른 것 외엔 변한 곳이 없었다.

 

 쇄골에 닿은 짧은 입맞춤에 그는 가늘게 떨었다. 셔츠 안을 더듬고 가슴을 쓸어 쥐며 나는 좀 더 그의 냄새를 채웠다. 목 줄기를 타고 귀 뒤까지 깊이 들이켜자 목 바로 뒤에서 참지 못하고 앓는 한숨이 흘렀다.

 

 “으-하아…로라스….”

 

 바지 위에 손을 얹어 더듬다 가볍게 그러쥐자 시트가 밀리며 나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점점 솟아올랐다. 뜨거운 체온, 열기가 담긴 목소리. 허리를 받쳐들고 들어올려진 하체를 따라 바지를 단숨에 끌어내리자 순간에 움켜쥐어진 팔뚝이 집혀 아렸다. 이렇게 날 원하면서. 아래를 밀어붙이며 이젠 브리프 뿐인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얇은 천 아래로 힘이 잔뜩 들어간 살덩이가 손 안에 가득 차자 포만감에 거친 숨이 터졌다.

 

 다시금 키스하자 그는 벌어진 입 사이로 맹렬하게 파고 들었다. 노골적으로 질척이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우위를 점하듯 서로를 탐하다 숨이 막혀 거리를 벌렸다. 뇌가 흔들리는 듯한 키스였다. 차마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목에다 팔을 걸어 놓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고르지 못한 숨을 헉헉대며 드렉슬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혀를 내밀어 축축히 젖은 입술을 다시 한 번 핥아냈다.

 

 칭얼거리며 거리를 좁히려 드는 그를 침대에 바로 눕히며 걸리 적 거리던 속옷을 마저 벗겨내었다. 조금 젖어 든 몸으로 끈적거리는 것이 떨어졌다. 이미 몸이 노곤히 풀린 듯, 바로 누운 채 힘 없이 뜨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무릎을 세워 그를 다리 사이에 가뒀다. 반쯤 일어선 것을 손바닥으로 슬쩍 쓸자 다시금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인다. 절경이었다.

 

 “예쁘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해가 뜬 것 같아.”

 

 자네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드렉슬러는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맙소사.”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려 하니 손길을 교묘히 피해 손을 뻗어 이번엔 시야를 방해했다. 약간의 땀에 절은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혀를 내밀어 맛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거둬지는 손을 붙잡고 이를 세워 잘근 거리자 간지러운지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이 꽤 귀여웠다. 사실, 조금 많이.

 

 단지 이렇게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 만으로도 잔뜩 들떠서 애원하기 직전까지 몰리는 주제에 드렉슬러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흥분을 감추려 애쓰는 드렉슬러에게서는 항상 맹수가 경고하는 듯한 낮고 거친 소리가 났다. 그렇게 짐승이 숨을 죽이면서 내쉰 공기는 피부를 울리고 고스란히 맞붙은 가슴을 파고들어 속을 간질였다.

 

 “으, 흐! 읏…큿! 으-, 하아…”

 

 답답하게 뭉개진 소리가 혈관 하나하나를 죄는 것만 같아 나는 그의 목덜미에 이를 세웠다. 도드라진 목을 따라 이를 갈다가 낙인을 찍듯 서서히 입술을 눌렀다. 그의 피부를 빨아들인다는 행위만으로도 기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더 이상 했다간 아픔만 남을 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손 끝부터 저려오는 감각이 미묘하게 나를 잠식하는 기분을 즐기며 나는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머지않아 드렉슬러는 날이 선 목소리로 내 성을 부르며 날 밀어냈다. 붉은 꽃이 예쁘게 폈군. 손 끝으로 울혈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분명 보라 빛으로 멍이 들겠지. 기분이 점점 들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숨을 고르는 그에게 다시금 키스했다. 가슴 옆을 두드리듯 허리까지 쓸어내자 참지 못하고 숨이 바로 귓전에서 터졌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것, 그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다 아는 것 같은데.

 

 그가 갖고 싶어.

 

 속삭여오는 목소리는 달콤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그를 가둬 넣고 다른 이들 모르게 둘만. 갑작스런 욕망과 동시에 죄악감이 차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멈춰진 행위로 당황하여 날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지. 몰아 닥치는 흉포한 기분에 시트를 움켜쥐었다.

 

 “내가 얼마나 자네를 원하는지 알면 놀랄 걸…”

 

 벅찬 가슴에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허리를 세워 품 안에 가둬진 드렉슬러를 내려다보았다.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씁쓸하게 내뱉은 말에 드렉슬러는 끝내 가늘게 떨리는 눈가를 숨기지 못했다. 그래, 자네는 아마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미움을 받으면, 다신 날 용서하지 않겠지.

 

 드렉슬러는 눈을 잠시간 감더니 다시금 시선을 맞추진 못하고 팩-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아했다.

 

 “별로, 사실…희박하지.”

 

 발그레 불든 그의 귀가 이제야 보인다. 어쩌면 그를 잘 아는 척 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따끈해 보이는 귓볼을 주물렀다.

 

 “상관없어.”

 

 아. 헤매는 시선에 웃음보가 터졌다. 폐에 바람이 찬 듯, 실성한 사람처럼 그렇게 킬킬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자네를 너무 좋아해…”

 

 그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눈을 슬쩍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실은 나도 그래.”

 

그렇게 개구지게 웃는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아니, 아냐아냐. 거짓말했어. 실은 아직도 너 별로야.”

 

 눈두덩에 팔뚝을 얹고 그는 배우가 빈 방에서 홀로 독백을 읊듯이 한 자, 한 자, 모든 말을 흘려 보냈다.

 

 “아직도 널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난 여전히 그래. 난 아무것도 책임져줄 수 없고, 넌 거의 모든 걸 잃어버리겠지. 그런데도.”

 

 축축하게 베개맡이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미안.”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그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내가 미안하네.”

 

 “사과하지마.”

 

 “어째서?”

 

 “사과하고 떠날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마.”

 

 아려오는 가슴에 그가 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했던 별이 쏟아지던 날 밤. 이 후로도 나는 그를 잊으려고만 했다. 도대체 나는 자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건지.

 

 “나는 몰랐어. 전혀 몰랐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위로 몸을 기댔다. 그로 인해 가려진 두 눈을 마치 직접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달래듯이 속삭였다.

 

 “아무데도 가지 않을 걸세, 드렉슬러. 자네 없이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

 

 그간의 상처를 위로하듯 조심스레 고개만을 틀어 입술을 포갰다.

 

 

-

 

 

 울렁거림이 가라앉자 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늘적 거리며 배 위에서 입술을 놀리다가 우거진 풀숲에 코를 문질렀다.

 

 “그런대서 킁킁대지마.”

 

 “부끄러워하긴.”

 

 대꾸 때문인 척 입술을 오물거리자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기쁘지만 너무 적극적인걸.”

 

 “미치겠네, 진짜.”

 

 조금 더 놀렸다간 정말 화를 낼 것만 같아 입을 벌려 그의 것을 물었다. 묘한 비린내와 비누 향이 났다. 비누?

 

 “자애 이어응아?”

 

 “입에 그런 것 넣고 말하지마! 이거 순 또라이 아냐?”

 

 벌게 진 얼굴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지금 상황을 멈추려고 그가 상체를 들어올리는 바람에 다시 하던 것이나 하기로 했다. 힘껏 빨아들였다.

 

 “읏-아, 젠장.”

 

 침대 위로 상체가 떨어지자 충격에 매트리스가 요동쳐 목을 찔렸다. 나는 사레 들린 듯이 컥컥 거렸고 그는 박장대소했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까 그렇지. 이거나 끼고 아래나 녹여줘.”

 

그는 머리맡 서랍장을 뒤지더니 콘돔과 젤을 꺼내 던지며 농을 쳤다. 부끄럼 없이 아래를 벌려내는 그는 신화 속 헤르메스처럼 어딘지 모르게 소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도발에 당황하여 첫 경험을 하는 어린 어른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콘돔의 포장을 뜯고 내 것 위에 그것을 씌웠다. 손에 묻은 미끈거리는 젤을 그의 뒤에 문지르자 이상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삽입부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설마. 당혹으로 물든 붉은 얼굴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쩐지 너무 적극적이더라니.

 

 “입 열지마, 경고했어.”

 

 “음, 음, 아무래도 집에 있는 동안 심심했던 모양이군. 내가 많이 그립던가? 응? 드렉슬러.”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조금 더 깊게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귓전에 조근조근 속삭였다.

 

 “…짜증나려고 해.”

 

 “내가 너무 핵심을 짚었나?”

 

 그는 씩씩대더니 엄청나게 화가 난 얼굴로 베개를 집어 들어 나를 내리치려 했다. 아차 싶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예상외로 날 공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와 엄청난 갈등을 하는 듯 하더니 얌전히 베개를 내려놓았다.

 

 “…그래.”

 

 베개는 제자리를 찾았고 나는 넋이 나갔다.

 

 “뒷구멍에 손가락 처박고 자꾸 그렇게 멍청이처럼 굴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실실대며 그의 다리를 잡고 어깨까지 밀어 올렸다. 풀어놓은 곳에 다시 젤을 짜 넣자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찌꺽대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딸려오는 살을 손 끝으로 꾹꾹 누르다가 완전히 기립한 것을 입구에 맞추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꿈틀대는 근육에 허리가 저릿했다.

 

 “녹아 내리는 것 같아….”

 

길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었다. 늘러 붙는 감촉과 열기로 끝에는 어질어질하니 정신이 몽롱했다.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느낌 정말 이상해.”

 

오랜만의 삽입에 정신이 없는 와중 한참 숨을 고르던 그가 입술을 내민 채 툴툴거렸다. 이물감 때문인지 아랫배를 꾹꾹 눌러대기에 쭉 내민 입술을 집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가.”

 

 이렇게 투덜거려봤자 나중엔 제일 즐기는 주제에 무얼.

 

 “이런 거 말일세.”

 

 크게 허릿짓을 해 한 번에 쳐올렸다.

 

 “아-”

 

 짧은 새된 소리와 함께 잠시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랫배에서 들끓어 올랐던 무언가도.

 

 “너…이 자식…이렇게 갑자기…”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여유가 없었다. 드렉슬러를 조금 골려 주기 위해 했던 행동이 커다란 파도처럼 다시금 덮쳐 들었다. 화끈거리는 뱃속과 하얗게 변한 머리 속이 원하는 것은 결국엔 같아서 나는 도저히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다시 채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피가 몰려 한껏 예민해진 곳으로 그의 안을 짓뭉개듯 치댔다.

 

 “아- 으- 빨라…로라..아! 아아- 빠릇, 아, 빠르다고-! 읏!”

 

 “한 번만, 다음은, 좀 더 상냥하게, 흣, 할 테니-, 부디 용서하게.”

 

 허릿짓에 맞춰 글자 사이사이에 숨소리가 섞였다. 숨이 턱까지 밀어 닥쳤다. 드렉슬러의 다물어질 줄 모르는 입에선 신음과 타액이 흘러 넘쳤다. 들락거릴 때마다 찔꺽이며 젤이 흘러나오는 게 얇은 막 건너로 여실히 느껴졌다. 거친 몸짓으로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입을 맞출 수가 없었다. 턱 끝을 살짝 물고 가볍게 핥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간 것 같다. 그의 안에 가득 들어찬 채로 사정 후 열기에 취해 어리광 부리듯 그의 가슴에 이마를 비볐다. 드렉슬러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머리카락 위에 키스해주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입술은 점점 더 가까워져 결국 혀를 얽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 번 더 할까?”

 

 하얀 커튼으로 빛이 스며들어 그의 눈 속 잿빛 하늘이 맑은 바다처럼 일렁였다. 비가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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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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