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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불안한 정서로 감상이란 이름 아래, 나는 또 아름아름 걷는다. 적막한 심상은 헤아릴 길이 없어 비어버린 곳에 나는 그렇게 어거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 모두 다 잊어버리자.



 나는 이런 내가 물린다. 추억에 취해 단 것을 잔뜩 집어먹은 성인처럼, 일주일 내내 먹어치워야했던 첫 라자냐처럼, 그리고 끈질기게 뛰어대는 이 고동소리처럼 나는 내가 물린다. 그런데 너는 왜 이리 지겹지도 않은지.



 너는 참 음식을 정갈히 먹는다. 의자에 기대 묶여 자세교정을 받았던 꼬마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바른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스프에 빵을 찍어 입에 넣다가 힐끗 그 반듯한 얼굴을 훔쳐보았다. 손가락에 스프가 묻고 입가에도 묻었다. 스프가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너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더운 여름. 영국의 습기는 마르지 않는 땅 위에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꽁꽁 묶어놓으려들었다. 단추를 두세 개 풀고 손부채질에 늘어져있으려니 물 한 잔과 그늘막의 네가 보였다. 잘 여며진 옷, 긴 소매, 긴 바지. 그런데도 그곳에는 희미한 바람기가 느껴져 답답한 줄을 몰랐다.



 제일이였던 것은 언제나 비상 후의 먼 거리에서의 감상으로 네 뜀박질은 순간의 환상이자 열기이며 꿈결같아 더 그랬다. 볼 수 없는 표정의 너는 늘 부드럽고 강한 미소를 걸고 먹잇감을 찾아 눈을 빛냈다. 강하고 아름답다고.



 그래, 그 때 그랬다.



 감상은 끈질겼다.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익숙치않아 어지간해선 흩어지지 않았던 집중력이 별 다른 이유없이도 비명을 질렀다.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것은 네 손에 쥐어준 구리열쇠. 걸어다니는 것은 갑주의 신발 소리. 창이 공중을 가르며 웅웅 울고 너는 몇마디 말도 없이 내 공간을 지배하려 들었다.


 너는 이기적이다.


 연필 끝이 아작이 났다. 칠의 맛과 나무의 텁텁한 조각이 혀끝에 맴을 돌았다. 흑연, 그 매끄러운 맛.


 나는 글쓰기를 하듯 매끄럽게,



 "좋아해."



 라고 기어코 운을 뗐다.



 머릿속에서 돌려보았던 몇 번의 시뮬레이션보다 다정하게 말이 흐르자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져 슬며시 웃고야말았다. 단단히 굳은 네 눈의 각막에 여과없이 투과되고 있을 그 꼴사나울 얼굴이 네 푸른 바다에 가득 담기지 못하게. 깜박깜박. 눈꺼풀은 느리게 움직였다. 미끄러져 내린다.



 "그런가."



 오롯이 들은 대꾸에 나는 그만 미끄러져내린다.

이것으로 되었다. 나는 네게 이정도이면, 그리고 너도 내게 이정도이면 그만이다. 다행스럽게도.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그것이면 되었다. 어쭙잖은 미소로.



 매끄러운 것은 매끄럽게 길을 타고 나아갔다. 그런 것이 된 애정의 감상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잘된 일이라고 나는 여겼다.


 변화는 달갑지 않았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듯 생떼를 쓸 때면 더 그랬다. 덤덤했던 것들이 얼마지나지 않아 살갗이라도 찢어발겨놓은양 로라스는 어울리지 않는 짓들을 하기 시작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과 있는 주제에 대화의 흐름과 분위기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조금씩 바뀌었다. 멍청하게도 그는 이것이 나에게 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여자 이야기, 신과 술과 그리고 여자 이야기. 심장이 쿵쿵 뛰어 뒷덜미가 잡아채어지는 듯했다. 머저리 새끼.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너무 역해서 견딜 수가 없을 따름이었다. 목덜미를 물어뜯어 입을 닫아버리자. 몇 번이나 생각했다.



 결국 나는 축객령을 내렸다. 당황하지도 않고 너는 그 붉은 빛이 아름아름한 노란 열쇠를 늘 네가 앉아있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쇠가 나무를 때리는 달그닥소리에 손끝이 살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손은 다시금 열쇠를 쥐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그렇게 싫으냐."


 신소리를 했다. 내 모든 것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려 네가 '그래,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어.' 따위를 중얼거리거나, 소리치고 얼른 문을 쾅 닫아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그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소망이자 바람이었다. 주먹이 말렸다 펴졌다, 어설프게도 너는 어쩔줄 몰라했다. 그것을 그렇게 불러도 좋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바보같이 입술이 떨리지 않게 기를 썼다.


 "잠시만,"


 잠시만 널 사랑할게.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입술을 으깨어 물었다. 서툴러서는 모두가 다친다. 나는.


 성큼성큼 긴 다리가 내걸었다. 바짝 붙는 얼굴을 나는 붉어져있을 얼굴로 밀어내었다. 수치와 모멸. 가득 담긴 동정이 일렁거려 그 끝을 성둥 잘라내 뒤로 하고 나는 결국 자리를 뛰쳐나왔다.



 걷는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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