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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올라온 글



(쌍창 전력으로 썼던 건데 장마를 장미로 잘못보고 쓰는 바람에 마감을 못맞춘 글 ;~;)

집에는 늘 자네가 있었어. 내가 섬세한 편이 못되니 서툴게나마 집을 돌봐주곤 했지. 바다 건너 타지에서 서로 돕고 산다기에는 우리는 너무 친밀한 관계였네. 이건 자네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두 개였던 집이 비싼 물가로 하나가 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고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거나 커피테이블에 앉아 오후의 차를 마시고 부스럭대는 신문소리나 서류조각이 내는 조금은 날카로운 소리가 익숙해지고 나서는 머지 않아 우리는 침대마저 같이 쓰게 됐어.


오늘 같은 날이야 언제라도 계속 될 거라고 난 늘 생각했네. 하루하루 다행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런 거짓말을 했지. 사실 거짓말이라기엔 이상했어. 자네는 정말 늘 집에 있었고 늘 내 곁에 있으면서도 항상 비슷하고도 놀라운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거든.


다만 나는 종종 불안해지곤 했네. 가끔씩 자네는 지루함에 잠겨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곤 하니까. 사실은 최근에 들어서야 내가 불안해한다는 걸 알았어. 그전엔 그저…기분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런데 언젠가 자네가 또 지루함에 잠겨있다 나를 본 거야. 자네를 바라보고있던 날 말일세. 자네는 웃었어. 웃음은 굉장히 부드러웠고 햇살처럼 푸스스 공중에 바스라졌지. 나는 그제야 안심했어. 그래서 알았지.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 말일세.


동시에 알았어. 빛이란 거 말일세. 잡아둘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전구라던지 빛나는 도구들이 있지만 막을 수는 있어도 가둬놓지는 못해. 그것들은 언제나 뻗어나가고야 마니까. 그것들이야 원체가 그런 것들 아닌가.


나도 그저 웃고 말았어. 낮이 오고, 밤이 오고, 등 뒤의 바스락 소리나 시트를 타고 오르는 온도라던지 자네의 손끝이나 샤워 후의 부드러운 입술 같은 것들에 말일세. 나는 그것들에 그저 웃고 말았어. 그리고 오늘이 되었네.


저녁식사 후에, 원래대로라면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하지만 나는 오늘이 되었네. 늘 그렇듯이 말이야.


오늘 아침에 말일세. 눈을 떴는데 자네가 눈 앞에 있는 거야. 매일 기껏해야 뒷통수나 아니면 벽이나 마주보고 일어나곤 했거든. 그런데 그 얼굴이 묘하게 또 정면이 아닌걸세. 나는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고 있었어. 그런데도 순간 시트가 끌리고 스프링이 삐걱거린거야. 매트리스를 바꿔버리겠다고 순간 결심까지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자네는 일어나질 않더군. 세상모르고 곤히 잠든 얼굴에는 그 어떤 지루함도 불안도 느껴지질 않았어. 그때 나는 조금 행복한 기분이었네.


하루종일 기분이 좋더군 출근길의 미적지근하고 습한 바람이나 흐린 하늘이나 그 아래 빛바랜 회색빛의 건물이나 질기고 식어빠진 베이글도 너무 볶아 쓰기만한 커피도 아무것도 나를 흔들어 놓을 수 없었어. 다만 지금 이시간까지 하루를 보내면서 몇 번이고 나를 괴롭혔던 것은 아주 사소할 지도 모르는 문장과 단어들이었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기로 방금 이 식탁에서 결정한 거야.


자네는 어때? 나와 결혼해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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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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