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umblr : http://bincannote.tumblr.com twitter : @bincannote Bincan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5)
Faith&Spear (65)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할 수 있었다면, 그 때 박살내는 쪽이 좋았다.

알베르토 로라스가 드렉슬러가의 차남을 만난 것은 그가 겨우 제복을 혼자서 단정히 입을 수 있게 되어 나라의 부름을 듣고 한창 목에 힘이 들어갔던 꽤 어린 시절의 일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져 특별히 차출되어 특별한 취급을 받는 어린 아이들이 매일 같이 특별한 훈련을 받으며 특별하지 않은 사상을 주입받는 비밀스럽고 특별한 대대.

처음 만난 드렉슬러가의 차남은 드라군 중에서도 갓 입소한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소속된 소대에 있었는데 멘토제로 인해 재수없게 그의 멘티가 된 병아리는 이 때부터 이미 반쯤 울고 있었다.

“특별은 얼어죽을. 그 뿌듯해서 죽을 것 같다는 재수 없는 면상이 날 열받게 하는 거라고. 신병? 지랄이 났지. 니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여기 있는 놈들은 다 병신들이야. 나라를 위해, 왕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은혜로운 병신들. 그게 뭐 자랑이라고 네, 선배님! 저는 국왕폐하를 위해 어쩌고저쩌고. 안물어봤어. 네 새끼가 전장에서 누굴 위해 뒤지고 싶은지 안궁금하다고. 가르쳐주는 것만 들어. 그외엔 입 열지마, 알았어?”

말이 너무 많아. 천박한 녀석이다. 로라스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 아무도 목소리를 높여 모두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소년을 저지하지않았다.로라스 그 역시 갓 들어온 신병에 불과했으므로 어디서 시작된 규칙인지 알기 전엔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이것이 이곳의 룰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않았다.

시간이 지났고 드렉슬러는 신발 속의 가시같은 사내가 되었다. 첫인상이 그대로 이어져 그는 늘 어디선가 거슬리고 따끔거렸다. 뛰어나고, 뛰어나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람은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 뿐인,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그는 잘도 만들어냈다.

그는 성실했다. 투덜거리면서도 맡은 일이나 주어진 일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고 그가 맡았던 멘티들 역시 그가 괴팍하다는데에는 동의할 지언정 그의 능력에대해선 의심하지않았다. 오히려 근처에 있고 싶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그를 돕겠다는 기묘한 충성심을 보였는데 로라스는 그부분에 있어 늘 의문을 가졌다. 생각해보면 자존심이 상했던 그 날부터 자신 역시 알게 모르게 드렉슬러를 지켜봐왔던 것이다.

소수 정예인 드라군은 그 훈련 상대가 여의치 않아 연무장에서의 대련은 아는 얼굴의 아는 얼굴로 돌아가며 하게 되었는데 로라스와의 대련을 마치고 나서 그는 유난히 뚱하고 탐탁찮은 표정을 지었다.

너는 왜 나한테 진심으로 창을 내려치지않냐, 봐주는 거냐, 엘리트다 이거냐, 내가 우습냐.

되지않는 시비에 로라스는 웃지도 못했다.

너랑 하는 대련은 너무 모욕적이야.

그렇게 드렉슬러가 빈정거릴 때면 로라스는 자신이 입소했던 그 날을 떠올리며 괜히 고수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욕적이라. 만족스러운 기분이 이상하게도 들었다.

드렉슬러의 파문은 놀랍지않으면서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로라스는 제 안에서 근원을 알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전에 자신은 이 일에 말을 얹어도 되는 입장이 아니었다. 평소 그와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이는 사이라도 됐다면 이렇게 분하진 않았을텐데.

하지만 귀족이 아니더라도 그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가뿐하고 유쾌한 얼굴에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별 달리 바뀐 것이 없자 로라스는 이 모든 것이 은근히 안심이 되었다. 보라지, 그는 이렇게 강해.

위로의 말 대신 창을 부딪힌다. 대련 후 그는 제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툭 쳐주었다. 오늘은 좋았어.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쑥스러울 수가 없었다. 돌아서는 드렉슬러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 저녁 술한잔 어떤가? 그는 씩 웃고는 저녁 6시, La vie. 하고는 사라졌다. 마시기도 전에 열이 올랐다.

그랬었던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그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사도 없이 영국 파병을 떠나버리다니. 그 답고도 서운한 일이었다. 아니면 그의 뜻이 아닐 것이다.

로라스는 속이 부글거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지만 견딜 수 없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숨이 막히고 졸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턱대고 드렉슬러의 이름 앞으로 전보를 쳤다.

긍지고 명예고 뒤지면 다 개소리야. 그는 자신이 조금 무리하는 기색이 보이면 슬쩍 다가와 속닥거렸다. 아마 그는 이번 일에 눈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기에 그와 더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의 욕지거리조차 그리울 지경이군. 로라스는 저도 모르게 이가 악물렸다.

영국 행의 이유. 짧은 전보의 답 역시 짧기는 마찬가지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불이 붙기에는 충분한 불꽃이었다. 우연하게도 이듬해 로라스는 영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Faith&Spear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라드렉] 차가운 물, 모자 그리고 깃털달린 펜  (0) 2020.10.08
[로라드렉/G] 짐승  (0) 2019.05.18
[로라드렉/G] 허상  (0) 2018.04.30
[로라드렉] 펜2  (0) 2018.02.28
[로라드렉/G] 펜  (0) 2018.02.22
Posted by Binc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