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umblr : http://bincannote.tumblr.com twitter : @bincannote Bincan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5)
Faith&Spear (65)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짐승은 아무나 키우는 것이 아니다. 근처 숲에서 조그마한 새를 주워왔을 때 아버지는 그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남자는 어딘가 고장나 바닥에서 버둥거리기만 했던 새를 닮았다. 절박하고, 절실하지만 남의 손이 두려운 운명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작은 새.

“웃긴다.”

나는 그것이 정말 우스워서 입가를 매만지며 웃음을 갈무리했다. 새라니. 그를 표현할 땐 네 다리로 땅을 박차는 무쇠소나 돌사자 같은 것이 어울린다. 전쟁마나 버팔로 같은 것도 괜찮겠다. 모두들 그가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다고 멋대로 착각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야생의 본능이 잘 갈무리 되었을 뿐인 위험천만한 짐승이다.

이제 나는 사역동물이 쓸모를 잃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는 땅을 갈거나 씨를 뿌리지않았을 뿐 전쟁을 위해 길러졌다. 전쟁이 끝나버리면 그는 어떻게 될까.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퇴역하는 군인과는 다르다. 목적이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떠맡아버린 자유의 무게. 그것은 행복할까.

“무엇이, 다리오?”

“전쟁이 끝나잖아.”

다정한 말에 나는 짐짓 모른척 시침을 뗐다. 복구 작업, 개발과 이익의 배분으로 다들 몹시 바쁠 와중의 전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남자는 또 차분하고 단정한 표정으로 창 건너를 넘겨보았다. 인부들이 반쯤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그 앞에서는 허름한 모자에 배바지를 입은 어린 소년이 과일을 갈아 주스를 팔았다.

“뭘 할거야?”

그 모습에 괜시리 약이 올라서 나는 스푼을 들어 차를 저었다.

“돌아가겠지.”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간 창 밖을 보다가 내게 말했다.

“자네는 남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나는 소속이 어정쩡했다. 드라군의 이름으로 파병되었음에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가문에 묶인 것도, 나라에 묶인 것도 아니라면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 훨씬 많았다. 운이 좋게도 차고 넘쳤다.

“당연하지.”

그게 내 대답이었다. 당연하게도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했다. 마치 그가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과 같이. 전쟁이 끝나버렸으니까 같이 전장에 서는 일은 없다. 전쟁이 없으면 군인도 없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난 이곳에는 그는 더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 모든 생물이 자신만의 삶의 터전이 있듯이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받으며 평생을 전쟁터만을 위해 살아온 그는 이곳이 맞지 않는다.

“고국 생각은 나지않는가?”

“글쎄.”

우리는 눈조차 마주치지않았다. 꼬마가 팔리지 않는 주스를 팔기 위해 손나팔을 만들어 아마도 고래고래 외치고 있을 장면을 바라보았다. 뒤의 건물이 바스라지고 서까래가 떨어져도 잠시 놀랄 뿐 아이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장사판을 재정비했다.

“두고 온 것은 없고?”

“그러게.”

어린 시절 새가 다시 생각났다. 새는 회색 깃에 하얀배를 가진 붉은 부리의 문조였는데 나는 아버지의 말에 달음박질쳐 집으로 새를 들여왔다. 집 서고에서 새와 관련된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었다. 생쌀을 씹어서 먹이고 방에서 가장 채광 좋은 곳에 헌 옷으로 둥지를 만들었다. 새는 크게 움직이거나 소리내지않아서 나는 가끔 가만히 귀를 대고 그 작은 고동을 들었다.

“돌아오겠나?”

남자는 가만히 말했다. 그 소리에 나는 새로부터 이 남자로 돌아와 그의 눈을 마주했다.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이렇게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럼 내가 남지.”

남자는 다시 창밖을 본다. 나는 그 옆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내가 가진 생태학론과 상식과 포기를 위해 되뇌인 그 당연함들을 그는 단순하고 섬세하지 못한 길로 고스란히 걷는다.

“...집에 방이 남아있어.”

다 나아 놓아준 새는 훌쩍 날아갔다가 이따금 내 창가에서 짹짹이곤 했다.

'Faith&Spear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라드렉] 차가운 물, 모자 그리고 깃털달린 펜  (0) 2020.10.08
[로라드렉/G] 쪽지  (0) 2018.06.05
[로라드렉/G] 허상  (0) 2018.04.30
[로라드렉] 펜2  (0) 2018.02.28
[로라드렉/G] 펜  (0) 2018.02.22
Posted by Binc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