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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말도 안 되긴 하네.”

 

 로라스의 말처럼 그는 정말 12시가 되자마자 개로 변했다. 신체의 변화가 있거나 빛이 번쩍한다거나 하는 별다른 징후 없이 그는 입고 있던 옷과 함께 고스란히 사라졌다가 그림자처럼 짙은 검은 색의 커다란 개가 되었다. 중간길이의 털과 북슬 거리는 꼬리,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날렵해 보이는 실루엣.

 

 “로라스?”

 

 개는 짖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드렉슬러를 응시했다. 개의 눈은 새까만 털과는 다르게 푸른빛이 쨍하니 도는 맑은 하늘색으로 흐릿한 불빛 아래서조차 그 묘한 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긴 제 얼굴을 보며 드렉슬러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엣취!! 에취!! 에취!!!”

 

 동물 알러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연거푸 재채기를 해대며 약을 찾아내 삼켰다. 재채기는 멎었지만 눈물이 줄줄 흘렀다.

 

 “, 진짜 짜증난다.”

 

 훌쩍.

 

 “다 때려 치우고 싶다.”

 

 훌쩍. 훌쩍.

 

 눈물을 흘리며 드렉슬러는 로라스로 추정되는 개에게 손을 뻗었다. 개는 꼬리도 살랑거리지 않고 으르렁거리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에도 번쩍이는 주사기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개를 조심히 눕힌 후 결을 따라 털을 쓰다듬었다. 털은 매끈하고 아주 부드러웠다.

 

 “조금 따끔할 거야.”

 

털을 조금 깎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 후 주사기까지 꽂아 넣었지만 차가운 은빛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조차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반응이 없을 뿐인데 덤덤한 얼굴이 사람일 때와 겹쳐 보여 순간 열이 받았다.

 

 훌쩍.

 

 “건강진단을 좀 해야겠는데.”

 

 훌쩍.

 

 2 32.

 

 개가 됐을 때처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시간을 기록했다. 개는 때가 되자 그곳이 제자리인 듯 침대 위로 올라가 처음처럼 자리를 잡았다. 로라스 역시 처음과 똑같은 방법으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재미있긴 하군.”

 

 드렉슬러는 턱을 쓰다듬곤 로라스의 위로 담요를 덮어주었다. 처리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흥분으로 머리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5시경 잠에서 깨어난 로라스는 눈을 끔벅이며 몸을 일으켜 앉은 후 한참 동안이나 드렉슬러의 뒤통수를 응시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좀 잤는가? 아니.

 

 “실제로 늑대인간을 치료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 사실인가?”

 

 “사실이야. 인어도 본 적 있고 설인도 만났지. 내가 드라큘라 얘기도 했던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며 드렉슬러는 현미경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것 참 믿기 힘든걸.”

 

 “그러시던가. 가끔씩 어떤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되곤 해. 자기 상식이 아니라거나 뭐 그런. 그래도 그게 사실이란 건 바뀌지 않고 어쨌건 난 천재거든. 그래도 어떤 사실이든 부정하는 건 개인 자유니까. 믿건 말건 그건 네 맘이지.”

 

 “화났나?”

 

 “조금.”

 

 “솔직하군.”

 

 “…”

 

 말꼬리가 늘어졌다. 뒷 말을 위한 침묵이라기에는 꽤 긴 것이 지나가며 눈에 들어온 것들이 잊혀지지 않을 때 즈음에서야 드렉슬러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는 한 손으로 양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야 대체로 그런 편이지. 이리 좀 와봐.”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일으키자 오래 된 매트리스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로라스는 뒤에서부터 드렉슬러를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젖은 나무와 가죽냄새가 났다.

 

 “뭘 보면 되지?”

 

 덜컹. 들려진 무릎에 벽에 붙은 나무 탁자가 조금 들썩였다. 왼뺨과 어깨, 양 팔뚝에 닿은 온기가 어색해서 드렉슬러는 그로부터 고개를 최대한 떼어내고 로라스 쪽으로 살짝 얼굴을 돌렸다.

 

 “너무 가까운 거 아냐?”

 

 “잠자리가 나빴어. 딱딱하고 추웠거든.”

 

 “추위를 많이 타나 보지?”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이지.”

 

 “그런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그런 가.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따끈따끈한 뺨에 얼굴을 기대어 웃었다.

 

 “이거나 봐. 동그란 원형질 근처에 보랏빛이 나는 검은 색 알갱이 같은 거 보여?”

 

 “.”

 

 “이 현미경은 일식 이후에 생긴 능력자들의 능력이나 정제된 안개를 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개조한 거야.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시는 게 바로 둘 중 무언가 되시겠습니다.”

 

 “대단하군.”

 

 보고 있던 것에서 눈을 떼고 나서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향해 진심으로 감탄했다. 드렉슬러는 조금 멈칫하는가 싶더니 파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누구 작품인데.”

 

 “그래서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로라스는 얼떨떨할 정도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었다. 냉냉한 교섭꾼의 얼굴과 벌어진 거리에 순간 입이 꾹 다물렸다. 더듬더듬. 드렉슬러는 말을 이었다. 어…음….


 “그게좀 걸릴 것 같은데. 기억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으니 종류를 확인하는 데만 3. 네 원래 형질이랑 분획하고 실험하고. 재료가 까다로워서 활동비도 좀 받아야 될 것 같고 해독제 제조에 안정성 테스트까지 하면한 달 정도? 아마도?”

 

 “보름.”

 

 싸한 침묵이 흘렀다.

 

 협상과정에서 처음 기한을 정할 땐 예상치보다 좀 더 넉넉히 불러야 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대 또한 알 것이란 것 역시. 하지만 로라스는 이미 기한을 정해두기라도 한 것 마냥 단호하게 절반씩이나 날짜를 깎아 내렸다.


 ‘? 이것 봐라?’

 

 “이십일.”

 

 드렉슬러는 이마를 문지르며 이 고지식한 남자에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기한을 다시 정정했다.

 

 “보름.”

 

로라스는 단호했다. 싸늘한 기운이 서서히 바닥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너무 촉박해.”

 

 “보름. 지원은 아끼지 않도록 하지.”

 

 “다른 게 아니라 위험해서 그래. 나도 이십일 이상은 못 봐줘.”

 

 드렉슬러는 로라스와 괜한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물러섬에도 상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숙적인 맹수를 눈 앞에 둔 듯 험악한 분위기로 둘은 곧 서로를 물어뜯을 것처럼 시선을 맞췄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오를 듯한 긴장으로 제 온몸의 근육이 팽창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분위기가 이보다 조금 더 험상궂어진다면 언제든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고 어쩌면 예상 밖의 피가 여기저기 튈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드렉슬러는 그 장면들을 상상하며 가장 먼저 로라스의 어디를 날려보낼지 순서를 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돌벽의 피청소는 귀찮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며 로라스는 앉아있는 드렉슬러를 조금 더 내려다 보았다. 짙어진 음영 속에서 파란 눈은 마치 인형의 유리눈알처럼 서늘하고 생기가 없었다. 그는 이런 협상에 능했고 상대에게 수를 내어주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상대를 잘 모를 때는 적정선까지 약간의 열을 가하는 공정이 필요했으며 만족스럽게도 그것은 지금까진 언제나 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는 정말로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거 아는가? 정말 위험한 건 시간이 지체되는 거야. 이쪽은 정말 녹록치 않거든.”

 

눈동자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 태도만큼은 소름이 끼치게 매서웠다. 고고하고 도도해서 마치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웃기고 있네. 드렉슬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로라스의 앞에 정면으로 마주섰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너 진짜 처음부터 계속 재수없게 구는데,”

 

 드렉슬러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콧잔등이 맞닿을 정도로 오히려 거리를 바짝 붙이며 시비라도 거는 모양새로 손 끝을 이용해 로라스의 가슴팍을 푹푹 찔러댔다.

 

꼬박 밤을 새워 일해도 보름은 말이 안되거든. 약이 잘못 돼서, 그런 일은 애초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가능성을 심어야 한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단 말이다. 배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내 알 바 아니지만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이 땅덩이 내에서 나보다 빨리 약을 만들 수 있는 놈은 없어. 아니, 이건 나밖에 못해. 그건 장담하지.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혼자 뒤져. 이런 일에 나 끼워 넣지 말고.”

 

 거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섹시하군.”

 

 “어쩌라고 이 게이새끼야.”

 

 이글거리며 쏘아보는 눈이 무색할 만큼 로라스는 여유롭게 웃었다. 드렉슬러는 그 얼굴이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한 달 주지. 대신 잠은 약이 완성될 때까지 이곳에서 자겠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좋아.”

 

 “좋아.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마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로라스는 손을 내밀었다.

 

 “…그래.”

 

 드렉슬러는 깊게 한숨을 내쉬곤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책상 앞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오늘 저녁 11시쯤 오겠네.”

 

 “그래라.”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볼 수록 재미있을 작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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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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