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드렉/G] Midnight blue 5
열두시 정각, 2시 48분
열두시 정각, 2시 54분
나흘째, 드렉슬러는 책상 위에 엎드려 십분 정도 쪽잠이 들었다. 프레파라트 위의 시료가 사라졌다. 커버글라스는 잘 덮여있었다. 갈라진 돌 틈새로 바람과 함께 비치는 빛에 눈이 부셨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로라스는 그 날 이후로 항상 10시쯤이면 구불구불한 지하미로를 지나 드렉슬러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돌이끼, 마른 돌 냄새.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명랑했다. 똑똑.
대답은 없었지만 사람은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같이 오는군."
"물품 외에도 일이 많으니까요."
로라스는 말 없이 토마스가 앉아있는 제 침대-엄밀히 말하자면 드렉슬러의 것인-를 바라보았다. 토마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죠?"
인상은 드렉슬러 쪽에서 썼다.
"저 자식은 날 몰아세우지 않아."
"하지만 RX가 이렇게까지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늘 눈가는 붉고 코끝이 헐어있는 걸 제가 모를 줄 아셨어요?"
"그건 저 자식이 밤마다,"
드렉슬러는 버럭 소리를 내었다가 입을 한 번 다물었다.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는 입술이 우물거렸다.
"...밤마다 자꾸 개새끼처럼 구니까."
"그렇지, 자네는 나 때문에 밤새워 울고 말일세."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로라스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멀뚱히 서있는 토마스를 밀어내고 제자리를 찾았다.
"누, 누가…! 네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토마스의 뒤를 보고 로라스는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 그 뒤를 쫓아 나가는 드렉슬러에 기분이 상했다.
"이쪽은 환자인데 말이지…."
엿새째 열두 시 정각.
"칼 같군."
우선적으로 배양 배지에서의 형질 분획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몇 번의 임상실험을 거쳐 넉넉히 보름정도면 약은 갈래가 보일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운데. 그럼에도 드렉슬러는 초조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전중에 급히 넘어온 전서에는 익숙한 약어가 쓰여있었다. The present. WC CTD.-J
조셉. 보름. 보름. 손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검은 개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드렉슬러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드렉슬러를 보며 꼬리도 슬렁슬렁 흔들어댄다. 결 좋은 꼬리가 휙휙 바닥을 쓰는데도 바닥의 먼지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먼지. 먼지? 드렉슬러는 천천히 검은 개를 쓰다듬다 털을 한움큼 움켜쥐었다.
열두 시 정각, 3시 7분
빌어먹을. 옳다. 빌어먹게도 자신의 예상은 벗어난 적이 없다. 시간이 없었다.
핑핑 돌아가는 머리에 따라오지 못하는 손이 답답했다. 이미 머릿속 또렷하게 보이는 내용을 흰 종이 위에 써적어 내리면서도 급해지는 마음에 몇 번이고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젠장. 젠장.
바들거리는 오른쪽 팔에 결국엔 연필이 동강이 났다. 등을 끌어안겼다.
일어나는 시간을 알리라는 요구에 로라스는 그 때부터 항상 이렇게 눈을 뜨면 드렉슬러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말 없이 가만히 기대어있다가 경직됐던 어깨가 익숙해질 쯤이면 왔던대로 또 말 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 만으로도 괜찮잖아."
"자리가 너무 춥대도. 그렇다고 내가 춥다는 이유만으로 난방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며칠 전 스스로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드렉슬러는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았다. 변형, 변질, 변수의 위험이 있는 것은 금지. 이 방 외에 다른 곳의 출입도 금지. 외박도 금지. 금지. 금지. 모조리 금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말을 잘 듣느냐, 어떻게 생각해?"
"글쎄."
로라스는 가볍게 웃었다.
"아픈 아이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겠지."
"말은…"
제자리를 찾아 몸을 바로하는 드렉슬러는 또 등뿐이었다. 로라스는 턱을 쓸었다.
"일이 끝난 뒤에도 쭉 찾아와도 괜찮겠는가?"
"나는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거 안 좋아해."
일절 고민 없이 뱉은 말에 말문이 막힌 것은 로라스였다. 톡톡, 손 끝으로 뺨을 두드렸다.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데."
사각거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
"틀렸나?"
으음, 로라스는 곤란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예민하긴. 무릎 위 담요를 고쳐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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