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umblr : http://bincannote.tumblr.com twitter : @bincannote Bincan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5)
Faith&Spear (65)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열두시 정각, 2시 48분

열두시 정각, 2시 54분

 

나흘째, 드렉슬러는 책상 위에 엎드려 십분 정도 쪽잠이 들었다. 프레파라트 위의 시료가 사라졌다. 커버글라스는 잘 덮여있었다. 갈라진 돌 틈새로 바람과 함께 비치는 빛에 눈이 부셨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로라스는 그 날 이후로 항상 10시쯤이면 구불구불한 지하미로를 지나 드렉슬러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돌이끼, 마른 돌 냄새.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명랑했다. 똑똑.

 

대답은 없었지만 사람은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같이 오는군."

 

"물품 외에도 일이 많으니까요."

 

로라스는 말 없이 토마스가 앉아있는 제 침대-엄밀히 말하자면 드렉슬러의 것인-를 바라보았다. 토마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죠?"

 

인상은 드렉슬러 쪽에서 썼다.

 

"저 자식은 날 몰아세우지 않아."

 

"하지만 RX가 이렇게까지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늘 눈가는 붉고 코끝이 헐어있는 걸 제가 모를 줄 아셨어요?"

 

"그건 저 자식이 밤마다,"

 

드렉슬러는 버럭 소리를 내었다가 입을 한 번 다물었다.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는 입술이 우물거렸다.

 

 "...밤마다 자꾸 개새끼처럼 구니까."

 

 "그렇지, 자네는 나 때문에 밤새워 울고 말일세."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로라스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멀뚱히 서있는 토마스를 밀어내고 제자리를 찾았다.

 

 "누, 누가…! 네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토마스의 뒤를 보고 로라스는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 그 뒤를 쫓아 나가는 드렉슬러에 기분이 상했다.

 

"이쪽은 환자인데 말이지…."

 

 

 

 

엿새째 열두 시 정각.

 

"칼 같군."

 

우선적으로 배양 배지에서의 형질 분획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몇 번의 임상실험을 거쳐 넉넉히 보름정도면 약은 갈래가 보일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운데. 그럼에도 드렉슬러는 초조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전중에 급히 넘어온 전서에는 익숙한 약어가 쓰여있었다. The present. WC CTD.-J

 

조셉. 보름. 보름. 손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검은 개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드렉슬러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드렉슬러를 보며 꼬리도 슬렁슬렁 흔들어댄다. 결 좋은 꼬리가 휙휙 바닥을 쓰는데도 바닥의 먼지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먼지. 먼지? 드렉슬러는 천천히 검은 개를 쓰다듬다 털을 한움큼 움켜쥐었다.

 

열두 시 정각, 3시 7분

 

빌어먹을. 옳다. 빌어먹게도 자신의 예상은 벗어난 적이 없다. 시간이 없었다.

 

핑핑 돌아가는 머리에 따라오지 못하는 손이 답답했다. 이미 머릿속 또렷하게 보이는 내용을 흰 종이 위에 써적어 내리면서도 급해지는 마음에 몇 번이고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젠장. 젠장.

 

바들거리는 오른쪽 팔에 결국엔 연필이 동강이 났다. 등을 끌어안겼다.

 

일어나는 시간을 알리라는 요구에 로라스는 그 때부터 항상 이렇게 눈을 뜨면 드렉슬러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말 없이 가만히 기대어있다가 경직됐던 어깨가 익숙해질 쯤이면 왔던대로 또 말 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 만으로도 괜찮잖아."

 

"자리가 너무 춥대도. 그렇다고 내가 춥다는 이유만으로 난방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며칠 전 스스로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드렉슬러는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았다. 변형, 변질, 변수의 위험이 있는 것은 금지. 이 방 외에 다른 곳의 출입도 금지. 외박도 금지. 금지. 금지. 모조리 금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말을 잘 듣느냐, 어떻게 생각해?"

 

"글쎄."

 

로라스는 가볍게 웃었다.

 

"아픈 아이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겠지."

 

"말은…"

 

제자리를 찾아 몸을 바로하는 드렉슬러는 또 등뿐이었다. 로라스는 턱을 쓸었다.

 

"일이 끝난 뒤에도 쭉 찾아와도 괜찮겠는가?"

 

"나는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거 안 좋아해."

 

일절 고민 없이 뱉은 말에 말문이 막힌 것은 로라스였다. 톡톡, 손 끝으로 뺨을 두드렸다.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데."

 

사각거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

 

"틀렸나?"

 

으음, 로라스는 곤란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예민하긴. 무릎 위 담요를 고쳐 덮었다.

 

'Faith&Spear > Midnight Bl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라드렉/G] Midnignt Blue 7  (0) 2015.05.29
[로라드렉/G] Midnight blue 6  (0) 2015.05.27
[로라드렉/G] Midnight blue 4  (0) 2015.05.27
[로라드렉/G] Midnight blue 3  (0) 2015.05.27
[로라드렉/G] Midnight blue 2  (0) 2015.05.27
Posted by Binc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