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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쉬태그/원작자 아수삐(@asbbi_ss_)]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 몸을 태워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에, 홀리는 듯 마음이 어지러워 자꾸만 피아노 위에서 손가락이 늘어졌다. 로라스는 결국 중반까지도 연주하지 못한 채 손을 내렸다. 반주 없이도 극은 계속 되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카르멘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반한 나는 호세인가.

 

해가 붉었다. 어두운 밤이 되기 전 마지막 불꽃이 꼬리를 남기며 사라질 때, 드렉슬러는 절정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다. 빛무리 속에서 기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쥐었고 땋아내린 머리카락이 춤을 췄다. 즐거운 듯 미소를 걸어 놓은 입가와 하얀 치아가 유난히 눈에 들었다. 그녀는 분명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수 없이 불렀던 노래들을 로라스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피아노 한 대와 낡은 소파, 보면대 하나 겨우 서는 이 곳에서 처음 들은 그녀의 노래는 야생화의 강한 향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길들여지지 않은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 들었고 이것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든 순간 로라스는 드렉슬러에게 청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므로.

 

절정에 달아 젖혀진 아름다운 목선. 자유로운 집시여인은 그녀를 위한 배역이었다.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는 밑단이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그녀는 가슴을 부풀려 제 소리를 낼 것이다. 귀가 있다면 누구나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지. 그 때가 되면 저는 그 중 하나가 될 것이고.

 

빛나는 사람. 빛나는 내 사랑. 때가 되면 더 큰 무대를 위해 그녀는 날아가버릴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자네에겐 이런 비좁은 방보단 많은 이가 우러러보는 무대가 어울려. 그녀를 꾄 것도, 길을 열어준 것도 자신이었다. 그녀는 재능이 있었고 이것은 그것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다.

 

보석을 다듬듯이 드렉슬러가 자신의 재능을 닦아 낼 수 있도록 그녀와 함께 로라스는 쉴 새 없이 피아노 위에서 손을 놀렸다. 점점 더 깊고 풍부해지는 소리에 모든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애써 웃음지어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쓸쓸한 기분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외마디 비명이 들리자 정신이 들었다. 로라스는 품안에 온기가 들어찰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드렉슬러를 껴안았다는 것을 알았다.

 

"너 지금 뭐하냐!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당황은 잠시, 서글퍼지는 기분에 감싸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지말아, 렉스."

 

"이게 밥을 잘못 먹었나...가긴 어딜 가!"

 

단단히 끌어안겨 몸을 뒤트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목을 뒤로 주욱 빼자 그제야 팔에 힘이 풀린 것이 느껴진다. 흥이 끊긴 것을 따지려 고개를 들어올리니 힘 없이 내려다보는 것에 맥이 풀렸다.

 

"왜. 또 뭐."

 

퉁명스런 목소리에 로라스는 서글프게 웃었다.

 

"...옳지 못한 생각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자네를 보면, 두려워. 자네가 날 버리고 한줄기 노래가 되어버릴까봐. 자네가 그리도 노래하던 그 별이 될까봐.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갈무리하여 터뜨리듯 뱉으려던 것이 입술에 막혔다. 첫 입맞춤. 다급히 뺨을 감싸쥐어 입을 맞춘 것은 드렉슬러였다. 가볍게 맞닿는 키스. 처음으로 제 사랑을 확인 받은 입맞춤으로 뺨에 열이 올랐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라고 여겼는데. 청혼을 받아들이던 때조차 제 길을 방해말라던 이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뭐야. 싫어?"

 

파혼할래?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두 귀를 하고 뻔뻔하게 파혼을 입에 올리는 드렉슬러 때문에 로라스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말도 안 돼.

 

"표정이 마음에 안들어."

 

"나는, 나는 그저 자네가..."

 

의무감 때문에 내 청혼을 받아들인줄 알았어.

 

"야, 이 병신아!"

 

쨍쨍하니 큰 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날 그런 이유로 약혼 하는 그렇고 그런 여자로 봤단 말이야? 등신 새끼! 등신 새끼! 길길이 날뛰는 드렉슬러로인해 로라스는 주춤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당연히...!"

 

드렉슬러는 주저로 시선을 피하다 결국엔 입술을 우물거렸다. 좋아하니까 했지. 당황이 가득 찼던 얼굴이 헤벌죽 풀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누굴 누구 마음대로 보내. 이 머저리 같은 놈."

 

눈썹이 잔뜩 성이나 치켜올라간다.

 

"보내도 안 가! 반주나 마저 넣어."

 

로라스는 피아노 위에 다시금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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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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