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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공간에 둘만이 남는 것은 당연하게도 좋지 않았다. 온갖 서류를 정리하기 위한 캐비넷들에 둘러쌓여 둘의 책상이 고작 8피트 정도의 간격만을 두고 마주 보게 놓였기 때문이다. 드렉슬러는 한없이 분주해보이다가도 무언가 생각에 빠지면 정오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책상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로, 상상은 달음박질친다.


 처음. 이가 닿았다. 턱은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 마치 기름칠이라도 한 듯이 미끄러졌고 이어 단단하고 섬세한 송곳니의 끝이 부드럽게 눌렸다. 커다란 소리 없이 단단한 마찰. 그 둔한 사각거림. 매끄러운 치아의 표면을 지나 치아 사이사이의 그 굴곡을 혀끝이 더듬었다.


 로라스는 이어 연필을 씹었다. 이제는 눈 끝에 그의 그림자라도 어른거릴라치면 목구멍 너머의 꺼멓고 끝을 모를 구덩이 속 허기가 주머니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목구멍을 태울 듯이 쓴 물이 오를 때면 관절에 쇠못이 박힌 꺼먼 쇠막대들이 물찬 주머니를 터뜨릴 듯이 제 위장을 들썩거리고 있는 위험한 기분 마저 들었다.


 시선을 내리고 눈을 잠시 감는 것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이미지는 뚜렷하고 생생하여 사실 그 존재가 무척 옅음에도 방 안을 한 가득 채운 그의 체취나 손가락들이 스치는 소리들을 더 예민하게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가 서류를 넘기며 책상을 부드럽게 오가는 손과 그 마디, 힘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제 혀는 그의 피부 위를 노니며 그 짠 맛과 피부의 굴곡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손등 대신 제 손등에 입술을 누르며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음미한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드렉슬러는 시선을 의식했다. 등골이 늘 스산했고 숨이 막혀오는 공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무언가 제 머리를 스치자 드렉슬러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로라스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날이 서 시퍼런 시선이 제게 따라붙고 있었고 이것으로 확인을 할 필요성은 충분했다. 자신은 노려지고 있었다. 테이블 위를 손으로 밀어 엉덩이를 걸쳐앉았다. 냉기로 쑤셔지는 듯한 눈맞춤에 드렉슬러는 빙글 웃고는 로라스의 뺨을 감싸 엄지손가락으로 눈 아래살을 끌어내렸다.


 "충혈은 아직인가?"


 

 끔찍한 스킨쉽이었다. 로라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뺨을 쥔 그의 손을 끌어내려 입 속에 쳐박고 싶었다. 손가락 끝부터 씹어삼킬 것이다. 충동이 들어 고개로 손을 뿌리쳤다.


 드렉슬러는 제 다리 사이에 그를 가두었다. 턱을 끌어올려 다시 제 눈을 맞추고 뺨을 눌러 억지로 입을 벌리게 했다.


 "하지만 입맛은 있는거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라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을 드렉슬러가 장난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제가 누르고 있는 충동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로라스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드렉슬러는 그의 멱살을 잡아채어 의자에 도로 앉혀놓았다.


 "네가 원한다면 내 가슴을 틀어쥐거나 엉덩이를 쥐어짜도 좋아."


 어리둥절한 얼굴에 드렉슬러는 키스했다. 깊고 들이마시는 키스에 로라스는 심장이 두근거려 위장이 다 끄집어내지고 있다고 느꼈다. 거센 파도같았던 충동이 가라앉고 몸은 의자 위로 녹아내린다.


 "그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드렉슬러는 다시 웃었다.


 내 연구를 도와줘. 그는 말했다. 신체의 반응, 병세의 기간, 임기응변, 끝내는 치료법까지 나는 모두 필요해.


 "내가 어떤 도움이 될지 나는 모르겠네."


 "내게 언제 반했지?"


 하얗고 네모지기만 한 종이에 드렉슬러는 무언가 사각사각 적어내렸다.

 환자, 병명, 상태, 대처 전, 후, 방법, 연관성.

 '환자 취급이군.' 로라스는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셨다.


 "처음의 식사 때일세."


 이 후로 드렉슬러는 이것저것을 물었다. 반했을 때의 심경, 신체 변화, 자신이 생각 나는 주기, 자신과 만나기 전에도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는지, 아니면 괜찮아졌는지. 로라스는 담담히 답을 읊어 나갔다. 수치스러움보다 의자에 잘못 앉아있는 듯한 낯설음이 더 컸다. 자세하고 정확한 답을 하려 집중해나갈수록 드렉슬러 역시 제게 더 집중해오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어찌되든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생각하면서 한 적은 있어?"


 이 전까지는. 무신경한 남자라고 로라스는 생각했다. 헛기침을 했고 이것을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지 잠시 머리를 굴리려하다 진중하고 집중하는 드렉슬러의 얼굴에 입술을 꾹 물었다.


 "있네."


 "언제?"


 "최근은 바로 어제 저녁일세."


 "횟수나 주기는 어떻게 변하고 있어? 혹시 날짜나 시간은 다 기억해?"


 "자네 생각이 나 잠들 수 없을 때쯤이나 퇴근하고 직후, 빈도는 짧아지고 유지기간은 길어지는 느낌이야. 상상 속의 자네가 더 열정적으로 변하거든. 이미지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붉어지네. 색이 짙어지면 소리가 들리고 촉감이 느껴지고 끝으로 후각까지 돌아오지. 자네는 늘 유혹적이고, 나는 시간이 갈 수록 자네에게 손을 댈 필요가 없어져. 자네가 날 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거든."


 드렉슬러는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렸다가 다시 생각에 잠기듯이 침음을 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도 증세가 심각해지면 결국 해야하잖아."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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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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