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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사랑이었다면 좋았을까.


 입버릇으로 말하던, 나의 사랑하는 별, 내 소중한 창.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애진즉 알고 있었다. 그 부드럽게 넘어가는 혀의 소리와 그 입술 끝에 남은 바람을 나 역시 간지러움에 파묻혀 가득 베어물고는 했으니, 모를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그 간지러움이 괴로워 별과 창이 모두 사라지고 어떤 단어가 그 빈자리를 가득 채웠으면 하는 충동에 사로잡혔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느냐면, 나는 그를 거절했을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별.

 나의 소중한 창.


 괴로웠어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소중한 것이 많았다. 움켜쥔 것이 많으니 더 쥘 수 없었다. 그것은 욕심이요, 죄악이니 필히 벌을 받으리라. 나를 바라보는 그의 파란 바다에 안겨 안락의자에 몸을 뉘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 폭풍과 불꽃과 파도들.


 나는 그의 집 벽난로의 나무 타는 냄새가 좋았다. 나무가 타들어가며 나는 묘하게 매캐하고 온기 어린 냄새는 그에게서 나는 종이와 쇠 냄새에 아주 근사하게 어울렸다. 그러다 어느순간 그가 치수를 재기 위해 내게 다가올 때면, 손끝에 묻은 잉크냄새가 그 따뜻한 것들에 섞여들 때면, 나는 시선을 부드럽게 내리기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했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 거품을 거둬내던 손길과 어깨 위에 얹어지던 내 손끝의 그 떨림. 그 놀라움. 그 고통스러운 얼굴. 명백하게 그는 나를 사랑했다.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의 괴로움이 녹아사라지게 해달라고. 그의 통증이 사라지는 동안, 가슴이 뻐근하여, 나는 엎드려 빌었다. 떨리는 손으로 묵주를 쥐고 엎드려 그의 고통이, 사랑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무아지경으로 몸부림이 나면 가끔씩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입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주여,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사랑이 없음으로 그가 괴로워하지 않게 하소서.


 역한, 고약한 불꽃의 냄새가 났다. 붉지도 못해 하얀 불이 다른 것을 껴안아 제 몸을 터뜨렸다. 폭발에 몸이 뜨고 돌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충격으로 잠시 뻗어 누워있으려니 하늘이 맑았다.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데도 눈이 부시게 맑았다. 몸이 멀쩡하구나. 역시 그는 대단해. 몸을 일으켰다.


 단순한 메뉴얼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을, 피해상황에 관한 메뉴얼. 폭탄인지 지뢰인지 능력자의 짓인지보다 먼저 파악해야할 현재의 메뉴얼.


 누가 현재로부터 낙오됐는가.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그도 사람이니 실수가 있겠지. 방금의 충격으로 내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거야.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투구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누군가 힘껏 누르고 있는 것처럼 벗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비척비척 뛰었다. 갑주에 물이라도 가득찬양 몸이 너무 무거워서 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창을 힘껏 움켜쥐고 나는 그래도 뛰었다. 그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연기가 나는 곳으로 나는 가야했다.


 사랑이었다면 좋았을까. 가만히 두었다면 그가 내게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말했을까. 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안 돼, 안 돼 하며 고개를 젓는 시늉을 했다. 뭐가 우스운지 입술끝까지 당겨올리며 안 돼, 안 돼. 없는 소리가 무겁게 투구를 눌러 이제는 정말 투구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


 눈은 깜박깜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닫히기만 했다. 충동이 밀려들었다. 거세고 고약한 감정이 겨우내 얼어붙었던 폭포가 녹아내리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뺨을 쓰다듬고 싶었다. 그와 눈을 맞추고 싶었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그로 인해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긴 시간을 건너 드디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이 감겼다.

 그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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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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