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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 앞의 인물에게 쏟아부었던 수없이 많은 저주의 말들이 입을 여는 순간 그를 생각하며 보냈던 나날들로 변해 자신에게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증명할 뿐일테다. 긴 세월이 지났고 드렉슬러는 돌아왔으며 여전히 빛이 났다. 흉물스럽고 처연한 감정이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그는 여전히 제게 아름다운 괴물이었다. 그것의 죽음 없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공포스럽고 경이로운 괴물.

“맥그리거씨의 명령이다. 투항하고 귀환하도록 해.”

“여전히 너는 내게 인사조차 안하는구나, 니노 보. 이름을 바꿨다지? 그래서 너는 애새끼라는 거야.”

드렉슬러는 일렁이는 불꽃 아래에서 제임스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잔악하고 교활한 얼굴. 지저분한 금발을 어울리지않는 헌팅캡 아래 숨겼지만 비정한 파란 눈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여전히 저를 신경쓰면서 의미없는 견제를 하고 긴장하여 단단히 굳은 턱을 보았다. 선이 엷다, 꼭 그의 목숨줄처럼.

바람 한 점 없는 돔은 소리가 웅웅 울렸다. 횃불이 타오르는 소리, 핏방울이 웅덩이로 떨어지는 소리가 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얇은 긴장. 맥그리거는 능력자들을 구역질나 했다.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앉았음에도, 또는 그렇기 때문에 제 아래에 능력있는 것들을 두지 않았다. 이미 그 둘이 쇠꼬챙이에 꿰여 벽의 장식물이 되었다. 기세 좋게 들어가긴 글렀군. 제임스는 입을 뾰족하게 모았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인가?”

“물론.”

“이래봤자 바뀌는 건 없어, 드렉슬러. 맥그리거씨는 생포를 원하셨지만 우리 둘 다 결말을 알고 있지. 너는 운좋게 이번을 이기더라도 결국 네 무덤으로 걸어들어온거야. 끝은 뻔하지않나?”

말을 이어붙일 때마다 불덩어리를 삼킨 듯이 위가 일렁였다. 토하고 싶다. 끊임없이 다 쏟아내고 싶다. 욕구는 제 가장 깊은 곳에서 끓었다. 끝나지 않는 공포로 사지가 떨렸다. 달려들어서 죽이고 싶다. 제임스는 제 마른 입술을 핥고 싶었다. 드렉슬러가 제 앞에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입술의 움직임에 맞춰 갈라지고 거칠어진 제 살갗이 느껴졌다. 잠시만이라도 모두 적셔서 잊을 수 있다면.

"끝까지 멍청해."

실망을 지나쳐 낙담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넌 그래서 죽는다."

깡-!

쇳덩이가 돌을 내리치는 소리가 살갗을 할퀴었다. 드렉슬러는 창의 끝을 세워 돌바닥에 불꽃을 일으켰다. 사납고 날카로운 소리.

“이곳에서 말이야.”

제임스는 조직원을 뒤로 물려 다시금 문을 닫았다. 쾅. 쾅. 쾅. 문을 향한 거센 발길질에 경첩이 부숴지고 문짝이 뜯겨져 나갔다. 둘이 문을 들고 정면으로 돌진한다.

“죽음을 두려워말라!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은 몸, 승리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 화이트 칙스에 영광을!”

선창이 있었다. 드렉슬러를 향한 총알이 빗발쳤다. 거리는 고작 40피트. 돌기둥 뒤로 몸을 숨기며 드렉슬러는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다. 몇 번이고 그려왔던 그림들이다.

“느려!”

기둥 뒤에서 튀어나온 드렉슬러는 순식간에 창을 던졌다. 총알이 갑옷을 때리며 소란이 일었다. 순수한 물리적 에너지가 쏟아진다. 하나의 의도로 수많은 것들이 밀어닥친다. 몸은 휘청이고 살갗이 떨어져나간다. 그 사이로 바람을 가른 창은 성공적으로 문을 쪼개어 폭발시켰다. 섬세한 끝은 부드럽게 문 위에 그려진 하얀 과녁을 파고들어 정중앙을 후빈다. 그것이 뭉그러지면서 철컥 소리가 났다. 하나 였던 것이 틈이 생겨 갈라진다. 폭발. 서늘하게 날이 선 날카로운 조각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생살을 찢어놓았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죽고 또 쓰러진다. 조금 더 안으로. 드렉슬러는 진영이 다시 갖춰지기 전 홀의 사 분의 삼을 가로 질러 다음의 돌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마지막 한자루의 창을 고쳐쥐었다. 온 몸에 멍이 들겠군.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살아나간다. 쌓아올린 죽음들 위에서 희열로 고동치는 머리에, 가슴에선 피가 끓었다. 빠르게 도는 혈액으로 온몸은 단단해져 이미 가벼웠다. 나아갈 것이다. 죽어서도 움직일 것들은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마주하는 것들은 늘상 그런 끔찍한 것들이어서 드렉슬러는 날개라도 돋을 것 같은 양 어깨를 으쓱하지않을 수 없었다. 저는 그것들과 다를테니까. 앞으로 두발자국. 하나.

핏대가 오른 목을 하늘을 향해 끝까지 뻗어 들었다. 반동으로 몸을 돌려 한 발을 힘차게 굴러 단단히 딛고 쭉 뻗은 팔은 홀의 천장인 돔의 중앙으로 창을 쏘아보냈다.

“수 많은 별을 봐라!”

우르릉. 하늘에 구멍이 났다. 달빛. 흐리고 무수한 별빛들. 자정의 블루가 쏟아져 내렸다. 비, 돌과 철의 비가. 아직 오지 않은 거대한 하늘을 기다리며 드렉슬러는 미리 웃었다. 바로 그 때였다. 제임스가 칼을 빼어들어 드렉슬러의 품으로 뛰어든 것은.

정적.

문 속에는 날이 밝기 전의 가장 어두운 곳과 그 어둠의 끝과 탄생의 순간을 위한 끔찍한 정적이 있었다. 이곳과 저곳을 갈라놓은 의식의 경계를 로라스는 그렇게 개를 따라 넘었다.

새가 지저귀었다. 낡은 방갈로에 딸린 야트막한 부엌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한 작은 티 테이블과 작은 편지, 낡은 커버의 책이 있었다. 선반에는 조악한 오르골, 금빛의 훈장, 작은 곰인형, 찻잔이 올려져있고, 전등 대신 입구 벽의 모서리에는 가스등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던 그리운 것들. 로라스는 손을 뻗어 그것들을 하나씩 어루만졌다. 모두 잃었다. 개는 끝도 없이 먹어치웠다. 쉬지못한 두뇌가 피로를 호소해도, 채워지지 않을 배를 개는 모든 기억으로 채우려들었다. "메리제인을 만났어?" 의자에 앉은 드렉슬러가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가죽책 위에 손을 얹고 다시 나를 끌어 안겠지.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맞은 편에 앉아 드렉슬러를 마주보았다.

자신은 제 앞의 이것처럼 사랑을 흉내내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내야하는 것을 드렉슬러에게서 얻어내기 위해서. 달콤한 것들을 미끼로 던졌다. 드렉슬러의 외로움을 알기에 그랬다. 완벽하게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서, 자신은 그저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니 죄책감은 없었다. 그도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그는 쫓기고 있었고 자신은 힘이 있었다. 수문장의 영감마저 자신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을 로라스는 알고 있었다. 필요로 엮인 관계들에 드렉슬러는 자존심을 지키는 대신 순순히 반지를 건네받아 자신을 지켰어야 한다. 그것이 옳다. 죽음 후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신을 믿는 로라스는 알았다. 그는 무언가 숨기고 있었다. 이겨내야하는 것을 품고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웃고 화내며 자신을 잔뜩 드러내다가 정작 중요한 것은 감추어두고 내어놓지 않았다.

로라스는 손을 뻗어 책 위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나는 당신을 지킬 힘이 있어. 왜 반지를 건네 받지 않았나. 그것으로 당신이 내 것이 되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나는 당신을 지켜줄 수 있었을텐데. 당신은 사랑없이 나를 시험했어. 내게 정말 당신을 지킬 힘이 있는지. 기억 속의 드렉슬러는 전처럼 슬며시 웃는 대신 시선을 낮추었다. 그제야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이 일었다.

아니다. 감춘 것은 자신이다. 중요한 것을 내놓지않고 사랑받기 원했다. 그는 사랑받아야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므로 저는 그에게 조금씩 젖어들어 사랑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많이 원했던 것은 자신이다.

창 밖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파랗고 커다란 눈이 창으로 들이닥쳤다. 빛 없이 물기만으로 눈은 번들거린다. 와그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집이 뜯어져나갔다. 그 골조를 모조리 집어삼키고 개는 다시금 입을 쩍 벌렸다. 그러니까 개는 드렉슬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더 잔인하게 잊게 된다. 로라스는 그 앞을 막아서고 반항했다. 잊고 싶지 않아! 개는 그 소리마저 먹어치웠다. 그를 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다지 달라질 것은 없을것이다. 강하게 열망하는 것은 그와 함께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니 다른 것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의 로라스가 그를 잊고 싶어하지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 사랑이었다.

또다시 정적.

먹먹한 어둠에서 개는 저를 바라보았다. 아리고 다정한 무의식이 저를 바라보았다.

"일어나야 해."

소리가 났다. 개는 제가 삼켰던 것들을 울컥울컥 토해내고는 서서히 다가오는 새벽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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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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