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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벽이었다. 해가 들지 않은 푸른 새벽. 낮게 뜬 빛은 어둠을 완전히 물리지못하고 지하까지 스며들지 않았다. 검고 끈적거리는 길을 로라스는 말없이 걸었다. 매끈한 구두 밑창이 질퍽거릴 정도로 덩어리가 찢어져 새어나온 액체들이 고요히 고여있는 요새는 레드카펫처럼 그를 그 끝으로 인도했다.

신선한 비릿내와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뒤섞여 피부에 도독도독 닭살이 올랐으나 손과 발에 땀이 차고 있었다. 처참한 미술작품을 보듯 로라스는 그가 늘어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스쳐지나갔다. 화려하게 꾸며놓은 지하 돔의 아래는 죽음보다는 삶의 전시에 가까웠으므로 로라스는 그것들을 자세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않았다. 그가 꿈꾸었던 마지막의 온점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은 상상에 지나지않았으므로 그것은 그에게 무례한 짓이기도 했다. 드렉슬러는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는.

그는 사지를 뻗어 무너진 돔의 그림자 아래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문과는 가장 멀고 하늘의 경계와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누워 별빛을 덮은 듯 꼼짝을 않고 눈을 감았다. 잔뜩 찌그러진 갑주가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과거를 흉내내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그는 만족스럽게도 누워있었다. 로라스는 그의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그의 헤드기어를 벗겨내었다. 감히 머리를 쓰다듬어 내릴 수 없었다. 늦었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듯해 울컥 울음이 밀려왔다. 나를 기다렸을까. 그는 나를 보내면서 과연 나를 기다렸을까.

“다 끝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라스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권총을 쥐었다.

“로이드.”

저를 부르는 소리에 로이드는 슬쩍 웃었다.

“그는 죽었나?”

‘탕’

총소리와 함께 로이드가 거꾸러졌다. 왼쪽 허벅지의 중앙에 총알이 꽂히며 대퇴부의 뼈와 부딪혀 그 안의 납이 산산조각났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로이드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제길, 로라스! 이게 무슨 짓이야!”

피가 솟아오르는 다리를 움켜쥐고 로이드는 절규했다.

“심판이다, 로이드 대령.”

로라스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 것만 같아 이를 악물어야했다. 그에게 쏟아붓고 싶은 말이 뱃속에서 심장에서 들끓었으나 그는 그럴 가치도 없었으므로 이 고통 역시 로라스 자신이 참아내야했다.

“하! 결국 그를 사랑했나?”

애먼 로이드는 살아남아야했다. 한쪽다리는 이미 늦었다는 직감이 있었다.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쪽은 완전히 못쓰게 되었으니 잘라내어 버리자. 대신 다른 쪽을 살리면 된다. 로라스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남을 죽이는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는 평생을 바쳐 지켜온 대의명분이 있으니 사사롭게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계산이 있었다.

로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부대원들의 복수도, 드렉슬러의 죽음도 다 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해서는 안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만 한가지 옳은 일을 하자면 눈 앞의 인물에게 벌을 주어야했다. 비열하고 악랄한 버러지. 제 것이 아닌 목숨으로 저울질을 하여 득을 취한 악독한 인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이 고통이자 저주였다.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벌로 느껴질 정도로 로라스는 그를 저주하고 있었다.

로라스는 총을 든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비어 공허해지고 있었다. 사랑으로 부풀어있던 가슴이 가라앉는다. 숨을 다한 새처럼 그는 심장이 고요해짐을 느끼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로이드는 동요했다.

“왜 내가 당신을 죽이지않을거라고 확신하지?”

그러니까, 그는 로이드에게 그런 것을 물어서는 안되었다. 왜 그를 죽였느냐, 왜 이런짓을 했느냐. 그는 좀더 목적성이 뚜렷한 질문을 해야했다. 당황한 나머지 로이드는 더듬더듬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주 어릴 때 그가 배웠던 한가지는 모든 질문은 세번은 뇌를 거쳐야한다는 것이었다.

“너는 그런 인간이니까.”

스스로가 당긴 총구가 불을 뿜었다.

“네게는 아무 것도 없어. 신념도, 명예도, 긍지도!”

‘탕’
‘탕’
‘탕’

모든 탄알이 왼쪽다리의 정중앙에 박혀 다리를 작살내었다. 밀려드는 고통으로 로이드는 결국엔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그 때 로라스의 등 뒤에서 은빛의 칼날이 번쩍였다.

살기도 기척도 없었다. 깊게 베인 오른쪽 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총을 떨어뜨렸고 예리한 고통에 비틀거렸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며 뒤로 물러서자 완전히 뭉개진 얼굴의 사내가 칼을 휘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힘없는 나무인형이 줄에 묶여 춤추듯이 너울거리던 사내는 쓰고있던 헌팅캡을 떨어뜨렸다. 죽은 제임스였다.

로라스는 제임스의 얼굴을 몰랐다. 이 상황도, 남자도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해서 자신이 잠에서 덜 깬 것은 아닌지. 드렉슬러가 말했던 악몽이 이것이 아닌지 생각해야만했다.

남자는 몇 걸음 힘겹게 걷다가 쏟아지듯 자신의 품으로 달려들어왔다. 피가 흐르고 겨우 총을 집어들어 남은 총알을 전부 맞췄을 때 남자는 잠시 멈추는 듯 하다 고개를 꺾고 로라스를 향해 마지막 질주를 하듯 칼을 뻗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방 벽을 장식하던 랜스가 죽은 제임스를 꿰뚫으며 벽에 처박혔다.

“뒷통수 조심하는 게 좋을껄.”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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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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