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tumblr : http://bincannote.tumblr.com twitter : @bincannote Bincan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5)
Faith&Spear (65)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드렉슬러에게 떠밀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땐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발을 디디는 순간 그가 머무르는 공간에 갇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닫히는 문과 함께 어스름에 잠겨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폐부 가득 숨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특유의 잉크와 종이 냄새로 공기가 가득 찼다. 달큰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바람 냄새가 기분 좋게 뇌 구석구석을 내달렸다. 정말로 그다.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었어.”

 

 “난…아니야. 저리 비켜.”

 

 믿기지 않아 얼굴을 다시 보려던 그 순간 거리가 벌어졌다. 다급히 그의 손을 잡아챘다. 어째서 자네는 항상.

 

 “제발 날 밀어내지 말아.”

 

 쥐어낸 손 위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뜨거운 손으로, 미련이 떨어지는 그 두 눈으로.

 

 “돌아가.”

 

 “어디로?”

 

 “어디로든지.”

 

 “갈 곳이 없어.”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날 기다려줬으면 하는 이는 있지. 울컥거리는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저 입가에 미미하게 걸린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우리를 위한. 그가 사라지고 수많은 가설과 이유와 방법들을 고민했지만 이미 꼬일 대로 꼬인 문제는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를 지켜주기는커녕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서툴렀다. 나는, 무력했다.

 

 “그녀와는 헤어진 지 이미 오래야…. 그녀가 통보했고 나는 받아들였네. 우리의 헤어짐이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곳이 네게 어울려.”

 

 “편지, 하나도 읽지 않았지?”

 

 “당연하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고통이었다. 제대로 쉬지 못한 머리는 몽롱했고 담담히 대답하는 드렉슬러에게선 더 이상의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이, 이것이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나를 외롭게 했다. 그를 움켜쥔 채로 한 손만을 들어 얼굴을 쓸어 내렸다.

 

 “나는 그녀 때문에 자넬 만난 게 아니야. 그런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난 전혀 몰랐네. 우리가 헤어진 것 역시 자네 탓이 아니라는 얘기도 해야겠어. 자네는 항상 자책을 하곤 해. 좋지 않은 버릇이고, 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자네 앞에만 서면 바보 같이 다 잊어버리고 말아. 두서가 없어 미안하네….”

 

 말이 길어질수록 이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에도 몇 번씩이나 적었던. 그는 읽으려 하지 않았던 것들. 그에게 해야 할 말, 그가 들어야

할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드렉슬러가 입술을 가볍게 물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버릇을 나는 안다. 그는 영민하고 또 예민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래서는 달아난다. 또 달아나고 만다.

 

 “나야말로 그간 우유부단했어. 미안하다. 확실히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네가 날 정말 사랑한다 하더라도 난 아니야. 이마저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는 거니까 그만둬줬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고. 우린 여기까지다, 로라스.”

 

 “자네는…정말 예전과 변한 게 없군. 항상 밀어내기만 해.”

 

 나는 쫓기고 있었다.

 

 “그러냐.”

 

 “그런데도, 나는. 자네를 놓을 수가 없어.”

 

 밀어닥치는 감정에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군.”

 

 저 굳게 닫아버린 눈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드렉슬러를 쫓아 그의 얼굴을 살폈다. 날 봐줘. 드렉슬러. 눈을 뜨고 날 좀 봐주게.

 

 “난 항상 그랬네. 말없이 자네가 사라진 뒤에 여기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 이제야 품 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시끄러워, 조용히 해.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신경질적인 대답과 찌푸린 얼굴. 그런데 나는 어째서 항상 그로부터 미련을 읽게 되는지.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금 입술을

댔다. 예전처럼. 항상 그렇게. 부드럽게 열리는 입술과 감겨 드는 혀를 엮고 그를 깊이 끌어당겼다.

 

 “왜 자꾸 날 헷갈리게 하는 거지, 드렉슬러. 왜 그저 놓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냔 말일세.”

 

 그 다정함에 서러워져 미처 입술을 다 떼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잠깐의 혼란, 그리고 체념. 체념이라니.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잠시의 시선을 조용히 닫고 그는 다시금 입을 맞췄다. 숨이 멎었다.

 

 아아. 드렉슬러.

 

 그는 한껏 농익은 손길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부드러운 움직임에 애정이 어려 나는 또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가 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갈증이 길어질수록 신기루가 뚜렷해지듯이 잿빛을 잔뜩 머금은 저 하늘에서도 언젠간 비가 오리라- 갈증. 온 몸이 사시나무마냥 떨려

단추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는 내 손을 그는 다시 단단히 감아 쥐었다.

 

 그의 체취가 가득한 보드란 침대보 위에 그를 누이고 다시 마주 쥔 손가락 마디마디 키스를 했다. 가늘게 떨리는 손, 붉게 익은 입술, 일렁이는 잿빛 하늘. 견디고 견디면 결국 비가, 비가 오리라. 등 뒤로 날이 밝고 있었다.

 

 “이렇게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별이라고 자네가 그랬지. 그 때부터 나에게 있어 별은 자네 하나뿐일세. 사랑하네, 사랑하고 있어, 드렉슬러.”

 

 “그렇게 보지마.”

 

 “사랑스런 나의 novio.”

 

 도망치는 그를 부여잡고.

 

 “듣고 싶지 않아.”

 

 “빛나는 나의 별.”

 

 나는.

 

 “로라스, 제발.”

 

 나는, 다시금.

 

 “나야말로…! 나야말로 부탁일세… 제발…. 제발 나를 들어줘, 드렉슬러…”

 

 쥐어짜이는 심장의 고통에 몸을 웅크려 그의 가슴에 이마를 괴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땀에 달라붙고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를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선연했다. 이후에 모든 것이 끝날 것임을 알리는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재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 헤맸다. 혼란 속에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손안에 쥔 절박함만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네가 없으면 나 역시 빛을 잃고 말아, 렉시. 차라리 그것이 나아. 나는…그대 없인 더는 살 이유가 없어.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가 본 그대의 찰나는 정말 내가 너무 바란 나머지 만들어낸 환상인가? 응?”

 

 “나는…난…”

 

 그는 손끝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들어올렸다. 그렇게 괴로운 얼굴로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당장이라도 시트를 쥔 손을 펴서 자네를 달래주고 싶은데. 눈을 감았다.

 

 “대체 너,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그는 울먹였다. 자신의 감정과 밀어붙여지는 현실. 모든 것에 유감을 표하며 나는 조금 웃었다.

 

 “내가 자네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달싹이는 입술이 잠시간 머뭇거렸다. 비록 이것이 내 착각일지라도, 그래서 모든 것을 잃게 될지라도.

 

 “자네가 날 사랑하니까.”

 

 그렇게 얼굴 윤곽을 따라 한참을 쓰다듬던 손이 무엇인가 결심한 듯 단단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널 사랑하는 것 같아.”

 

 짙은 키스를 받았다.

 

'Faith&Spear > Nov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라드렉/G] Novio 2-4  (0) 2015.05.27
[로라드렉/R-15] Novio 2-3  (0) 2015.05.27
[로라드렉/R-15] Novio 2-2  (0) 2015.05.27
[로라드렉/G] Novio2-1  (0) 2015.05.27
[로라드렉/G] Novio2  (0) 2015.05.27
Posted by Binc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