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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손, 기다란 손가락, 길쭉한 팔다리, 무두질 공정의 냄새가 배어있는 싸구려 가죽 자켓. 미간의 주름, 고뇌하는 인상, 햇볕을 못 봐 창백하지만 라틴계 특유의 구릿빛 피부. 더러운 성격, 마찬가지로 더러운 입. 별칭 RX(처방전).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어쩐지 굉장히 끌리는 남자.

 

낮조차 해가 들지 않는 미로와 다름 없는 슬럼가. 누렇게 변한 수건과 이불들이 공중에 얼기설기 엮여 매달려있었다. 퀴퀴한 누린내와 오줌 지린내, 그리고 무언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들이 걸음을 옮기는 벽돌 사이사이마다 한데 어울려 지독하게 코를 찔렀다.

 

넓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중심길보다 어두운 골목골목엔 눈이 많았다. 모두들 어째서인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부드럽게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 잘 다려진 양복, 중절모와 스카프, 그리고 검은 지팡이.


모두의 시선 한가운데, 이런 무질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왕의 행진처럼 당당히 길을 걷고 있었다.

 

-

 

다리 아래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별이 보이는 맨홀뚜껑 아래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못 구하는 약이 없고 못 만드는 약도 없다. But cash.’

 

 로라스가 들은 드렉슬러의 가게 지침은 이것뿐이었다. 그는 좀 제멋대로라. 그에 대한 정보를 좀더 요구하자 노인은 기름때가 낀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그렇군. 로라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숨을 내쉬었다. 노인은 콧수염을 찡긋거리며 뭐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마주 으쓱대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렀다. 사람을 싫어하니 웬만해선 혼자 움직일 것. 무기를 가져가지 말 것. 절대, 절대, 그를 아랫사람 취급하지 말 것. 날짜는 전서구로.

 

 “그것뿐인가?”

 

 “심플하지.”

 

 금화 한 닢에 이정도 정보라. 과연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군. 로라스의 날카로운 눈매에 노인은 낄낄대며 웃었다.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자네니까 말야. 정보 값은 내 마음이지!”

 

 사실이었다. 로라스는 노인에게 깊이 인사를 했다.

 

 “신의 가호가 있길.”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노인은 눈을 끔벅이더니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의뢰를 받으려 들지 않걸랑 리처드가 부탁했다고 해!! 알겠나? 땅딸보 리처드일세!!”

 

 로라스는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모자를 들어올리곤 다시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기지개를 폈다. 간이로 마련해놓은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뜨거운 머리를 돌 벽에 기대어 잠시 식히니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벽이 무너져 천장과 생긴 틈으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드렉슬러는 몸을 일으켰다. 슬슬 손님이 올 시간이었다.

 

 희미한 가스등 아래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열 발자국쯤 떨어진 거리에서 드렉슬러는 인기척을 냈다.

 

 “의뢰인?”

 

 “그렇소.”

 

 “자세한 얘기는 안쪽에서 하지. 따라오도록 해.”

 

 둘은 정적 속에서 다시금 안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챙강-! - 탕타다당

 

 돌연 쇠끼리 부딪히는 파열음이 복도를 울렸다. 지팡이인척 하고 있던 검 집이 바닥을 구르고 꼬챙이 같은 쇠 지렛대와 얇은 검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무기는 금지라고 했을 텐데.”

 

 “먼저 공격한 건 네 녀석이지 않나!

 

 “어쨌든 간에 무기 소지는 금지야, 귀족 나으리. ? 분명 듣긴 한 거지?”

 

 “물론.”

 

서로 양보 없는 팽팽한 기 싸움 도중 먼저 물러선 것은 드렉슬러였다. 어째서? 로라스는 차마 묻지 못했다. 흐린 조명에서조차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당혹스러웠다.

 

돌아가. 기운 빠졌어.”

 

그럴 순 없네.”

 

 “기본 규칙도 안 지키는 녀석이랑은 일 안 해. 알겠어?”

 

 “잠시만, 얘기 좀 하지.”

 

 붙잡힌 손을 거세게 털어냈다.

 

 “따라오지마!”

 

 드렉슬러는 뛰기 시작했다. 로라스 역시 제 뒤를 쫓아 같이 뛰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 복잡한 수로를 제대로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다. 저런 녀석 따위 길을 잃던 말던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군데군데 나있는 환기구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긴 어렵지 않았다. 고생은 좀 하겠지만 적어도 재수 없게 죽는 일은 없겠지.

 

 “속이 다 시원하네!”

 

 “화가 좀 풀렸는가?”

 

 “와악- 시발!!”

 

 로라스는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양 손을 들어올렸다.

 

 “, 어떻게어떻게…”

 

 “자네 뒤를 따라왔네. 일부러 떼어놓으려는 것 같아 발소리는 좀 죽였지만.”

 

 넋이 나간 표정의 드렉슬러가 입을 열었다.

 

 

 “재수 없어, 진짜.”

 

-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감히 누구한테 마약판매상 취급을 하는 거야?”

 

 그 이후로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끊임없이 조르고 있었다. 사실 가장 안쪽의 작업실까지 혹이 붙은 이상 모든 상황은 드렉슬러에게 불리했다. 모두들 그가 제멋대로라고 하지만 드렉슬러에겐 드렉슬러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다. 살인은 하지 않을 것, 마약 제조는 거절, 사용처를 명확히 알 것, 재수 없는 놈 거래는 받지 않을 것 등등-

 

 로라스는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다. 안타깝게도 협상을 할 줄 모르는 남자는 불청객에게 협박과 욕설과 또 협박을 쏟아부었으나 완고한 인상의 이방인은 도저히 뜻을 굽힐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농담 삼아 뱉은 허이고, 이러다 무릎이라도 꿇겠다?” 라는 말에 여기에 꿇으면 되나?” 라며 주저 없이 무릎을 굽힐 듯 하다가도 대화 중엔 또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매사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지는 뼛속까지 귀족이라 이거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드렉슬러는 로라스에게 완전히 기가 질려버렸다.

 

 “자네, 들은 것보다 더 성격이 나쁘군?”

 

 “남이사. 초면 인사가 '개' 같은데 이보다 어떻게 더 나긋하게 굴어 드릴까, 신사양반. 그런 걸 원했으면 창녀촌을 가야지!”

 

 “명의로군.”

 

 “무슨 소리야?”

 

 “밤이면 자꾸 '개'로 변해서 말이야.”

 

 “?”

 

 “그게 내 의뢰일세.”

 

 “미친 그게뭐야…”

 

 “자정일세.”

 

 “자정?”

 

 “자정.”

 

 진짜 그게 뭐야이게 이젠 농담 따먹기까지 하나 싶었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에 그런 기색은 읽히지 않았다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자정까진 삼십 분도 안 남았어.”

 

 “그럼 조금 기다려 주게.”

 

 “의뢰 안받는다니까.”

 

 서로는 서로에게 벽과 대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로라스 역시 이젠 한계였다. 소리를 지를 것 같은 기분이 되자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것을 다시 코로 내뱉었다. 이것조차 통하지 않으면. 결심을 내렸다.

 

 “땅딸보 리처드씨 부탁인데도?”

 

 반응이 있었다. 드렉슬러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뭐야?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글쎄똑똑한 자네가 한 번 생각해보지.”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듯 로라스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화가 나고 배알이 꼬였지만 어찌된 일인진 몰라도 저 이름은 로라스가 퍼거슨의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자신은 그에게 빚이 있다. 드렉슬러는 검지손가락을 갑자기 치켜들더니 무언가를 참아내는 듯 눈을 꾹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그대로 뒤를 돌아 로라스에게 등을 보였다.

 

 “그 망할 돌팔이 영감, 뒤지지도 않지 진짜.”

 

 손가락은 까딱까딱 간이 침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앉아.”

 

-

 

“RX?”

 

 “그냥 드렉슬러라고 불러.”

 

 “그럼 렉스.”

 

 “아 좀. 말 더럽게 안 듣지…. , 몰라몰라몰라. 네 맘대로 해.”

 

 채혈을 하고 미리 작성되어 있는 계약서 양식을 훑었다. 상황을 보고 특수성에 따라 나머지 부가사항을 정한 뒤 마무리로 싸인을 할 것이다.

 

 “늑대인간, 드라큘라는 들어봤어도 개는 또 처음이네. 언제부터 이랬어?”

 

 “정확한 것은 나도 몰라. 개가 되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군.”

 

 로라스는 저 역시 의문이라는 듯이 팔짱을 껴 턱을 괴었다. 미끄러지듯 전진하던 펜이 돌연 가던 길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가정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요새 자정마다 사라진다고 해. 그리고 달빛이 약해지면 3시쯤 침대 위에 누워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맘 때쯤 커다란 검은 개가 마당이고 복도고 갑자기 나타난다지. 괴담 같은 느낌이지만 좀 더 대화를 해보니 문젠 이것뿐만이 아니야.”

 

 “그리고?”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어.”

 

 “기억을?”

 

 “사소한 것들. 내가 쓴 편지, 좋아했다던 차(), 머리맡의 낯선 책 같은 것들이네. 시간, 기간, 뭐 하나 겹치는 게 없지. 왜 이것들을 잊어버렸는진 나로썬 전혀 알 수가 없어. 지금은 이런 것들이지만 좀 더 심각해지면 일하는 데도 지장이 가서 말이야. 난 내 머리를 창고처럼 쓰고 있거든.”

 

 “하는 일은?”

 

 로라스는 조금 곤란한 듯이 웃었다. 드렉슬러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뭘 숨기면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가 없어.”

 

 “군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네. 조금불법적인 것들이지.”


 "그 가정부와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좀 어렵겠군."


 

 어째서라는 말이 나오려다 목에 턱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는 로라스를 보며 드렉슬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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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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