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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너무 흔하고 당연해 새삼 낯설어지는 것들이 있다. 밤이 오면 별은 언제고 뜬다는 사실이나 실은 그것들이 낮에도 항상 빛나고 있다는 그런.

 

 오싹했다. 온 몸의 털 하나하나가 쭈뼛 곤두섰다. 살을 익히는 뜨거운 뙤약볕, 언제나 연병장을 갑작스레 휩쓸던 황금빛 모래바람, 입 안에 씹히는 모래알, 귓전을 날카롭게 때리는 쇠 부딪히는 소리, 그렇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과 그리고. 그리고.

 

 “아…!”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두 눈에 가득 담긴 그의 모습 역시.

 

 “…드렉슬러.” 그의 이름을 조그맣게 부르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차오르는 생명력과 온 몸을 두드리는 심장의 고동,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자 따스함이 손끝을 감싸고 머지 않아 가슴이 울렁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 잊고 있던 나의 별.

 

 마침내 그에게 달려나가려는 순간. 그것은 아주 잠시간의 일이었다.

 

 내 주변에는 짙푸른 어둠이 깔리고 오색의 별이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살피는 사이, 그렇게 그는 점점 더 멀어져 별빛처럼 희미하게 빛나며 태양이 뜨면 곧 사라질 별처럼 눈 앞에 어룽거리기 시작했다.

 

 “안, 안 돼…! 드렉…!”

 

 나는 양 손을 올려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하는 입을 힘껏 틀어막았다. 그에게 달려 나가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단단히 굳히고 뻣뻣해진 가슴을 억지로 웅숭그렸다.

 

 갑작스러운 환영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연병장의 끝에 서있었으며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하던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드렉슬러가 보였다. 거칠어진 숨과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심장. 스쳐 지나가듯 잠시간에 나를 사로잡은 이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분명 몇 번이고 되새겼던 과거가 망령이 된 것이다. 아찔하게 도는 현기증에 한 순간의 파노라마처럼 곧이어 벌어질 일이 눈 앞에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드렉슬러에게 나는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대로 그에게 뛰어나간다면 그를 붙잡고 키스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불타오르는 듯한 머리로 그를 끌어안고 그는 절대 원치 않을 사랑을 퍼부을 것이었다. 그럼 드렉슬러는 다시 도망가버리겠지. 주먹을 단단히 쥐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를 갖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그가 있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손을 흔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었다. 드렉슬러는 부지불식간에도 계속 나를 괴롭히던 걱정과는 다르게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더구나 그 밤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녹아 들었다. 그만큼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으나, 동시에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그를 내 시선 안에 놓고 일정 선을 지키는 지옥 같은 일 역시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연병장, 처음 드렉슬러를 봤던 그 곳에서 그는 자주 창을 손질했다. 찌는 더위에 흘러내리는 땀이 눈썹을 지나 속눈썹에 맺힐 때마다 나는 그의 땀방울을 핥고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그가 친근함을 가지고 부딪혀 오는 그 온기와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다정함과 무심하게 잡아오는 어깨의 간질거림에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행복으로 일그러지는 표정마저 나는 그로부터 숨겨야 했다. 부풀어오르는 감정에 목이 졸리고 손 끝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이 모든 수고와 고통들은 내가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감내할 만한 것들이었다.

 

 모든 일들이 익숙해지기까지 몇 년이 지났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나에게는 항상, 그리고 갈 수록 어려워졌다. 하지만 덕에 나는 그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그 후년, 내가 생활관을 나설 때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바라고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렇게 그의 곁만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목구멍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들끓어 오르는 것을 참아내었다.

 

 

 

 

 우리는 자주 같이 별을 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야외로 나가거나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부 천장에 유리를 덧댄 그의 다락방에 나란히 앉아 그 창들을 열고 하늘을 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그의 집에서 저녁식사 후 가볍게 포도주를 마시고 커피를 끓여 다락에 올랐다. 그러다 계단을 다 오르지 못하고 우뚝 걸음이 멈췄다. 시선의 끝에는 옛날처럼 노을을 마주하고 내게 등을 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드렉슬러가 있었다. 커피를 든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밤이 찾아왔다. 어릴 적의 그가 다시금 얼굴을 감싸 쥘 것만 같아 나는 그와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되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하게도 드렉슬러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피곤하면 먼저 자. 불편하면 집에 가도 좋고.”

 

 무릎을 감싸 쥔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몸을 더 가까이 붙여 어깨를 마주 대었다.

 

 “아니야. 미안하네.”

 

 다시 올 리 없는 시간에 메여 멍청하게 군 것에 사과했다. 이렇게 닿아 있는 그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별빛이 어스름해지자 그는 슬슬 피곤한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어떤?”

 

 “너 옛날엔 나 싫어했잖아.”

 

 “그건…!”

 

 당황한 나머지 숨을 급히 들이켰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다시 숨을 내뱉지도 못하는 나를 보더니 그가 웃는다.

 

 “괜찮아, 나도 너 별로였어.”

 

 “그랬…는가.”

 

 분명 그랬겠지. 당연한 일인데도 괜히 서운해져 입이 비죽댔다.

 

 “그냥, 있잖냐….”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결국 반대편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저 모양새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입가가 나도 모르게 실룩거렸다. 그는 정말이지 귀여운 사람이다.

 

 주저하다 마음이 섰는지 움직임이 멈췄다. 움직이느라 나던 소리가 멎자 고요가 나지막이 깔렸다.

 

 “그냥, 그 때. 네가 날 찾으러 왔을 때 있지. 좀…기뻤다고. 솔직히 누가 올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 그래서 네가 와줬을 때, 겁이 날 정도로 기뻤어. 그냥…그냥, 고마웠다고.”

 

 메마른 음성의 끝은 불안하게 마무리되었다.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이 떨리는 말 끝에 맺혀 뱃속부터 간질거리며 팔을 타고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붉어져있을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를 껴안고 사랑한다 입맞추고 싶었다. 격양된 감정에 숨이 거칠어지자 몸이 떨렸다. 그를, 그가 너무 소중해서, 엉망으로 헤집어놓고 싶었다.

 

 서툰 그를 사랑한다. 사랑스런 나의 친우. 그가 나만을 바라보고, 나에게만 웃고, 나에게만 화를 내주었으면. 저 사랑스러움을 나만 갖고 싶다. 오직 나만. 설기게 얽어 놓은 제방이 터지듯 충동에 눈 앞이 붉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뒤에서 껴안고 목 뒤를 입술로 물어 핥았다. 그 매끄러운 감촉에 뇌가 마비되어 저리는 것 같았다. 나에게 다음이란 것은 없었다. 그렇게 친우라는 말이 더는 싫었다.

 

 “아! 너…!”

 

 뿌리치려 힘을 주는 그를 더 꽉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용서하게 드렉슬러.”

 

 나는 온전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삐걱대는 낡은 매트리스 조차 없는 맨 마룻바닥에서 나에게서 달아나려는 그의 허리를 붙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정도일까.

 

 그는 생각보다 더 심하게 발버둥쳤다. 쉬, 착하지 드렉슬러. 가만…가만히. 아이를 대하는 듯한 속삭임에 그는 바닥을 기며 이러지 말라 애원했다. 드렉슬러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에겐 그를 설득할 정신이 없었다. 욕망에 흐려진 이성의 끝을 겨우 붙들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속삭였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네겐 아드리네가 있잖아.

 

 결국 절규하듯 내뱉어진 말에 나는 그를 뒤집어 양손을 죄었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정강이로 허벅지를 단단히 내리눌렀다.

 

 숨을 고르고 마주한 시선에서 어렴풋이 욕정을 읽자 단숨에 성욕이 밀어닥쳤다. 아직. 아직이다. 좀 더 견딜 수 있어. 아랫입술을 아득 깨물었다. 아드리네. 아드리네라고?
 
 "…그녀와는 이런 짓은 하지 않아."
 
 아드리네와의 관계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드렉슬러가 들어찬 이후로는 나에겐 언제나 그뿐이었다. 불쾌한 얘기를 들은 듯 찌푸려진 미간에 그는 김이 샌 마냥 헛웃었다.
 
 "그래. 그렇군."
 
 나까지도 헛헛해지는 날 숨에 손에 힘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는 느슨해진 손에도 더 이상 날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허망한 얼굴마저 금세 지우고 양팔로 목을 감은 채 허리까지 은근히 비벼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거지?"
 
 그는 유혹적이었다. 농염하게 지어진 미소 뒤에 입술을 뒤틀며 나를 끌어내렸다.
 
 "하자, 로라스. 나 지금 완전히 흥분했어."
 
 머리 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끊임없이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도저히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왜 가만히 있어. 하고 싶다고, 섹스 말이야. 귓가에 젖은 숨을 함께 속삭이며 그는 멍청히 굳어있는 내 어깨를 주무르고 등허리를 쓸어 내리는 손으로 피부를 뜨겁게 덥혔다. 바지 단추가 열리고 지퍼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나는 의식적으로 경고등의 불을 내렸다.
 
 그렇게 이성조차 감성에 동조하는 몽롱한 정신으로 드렉슬러의 신음에 더운 숨을 섞어 그를 가졌다.
 
 하지만 그를 파고들 수록 그는 내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유리감에 나는 더욱 몰두하여 허리를 놀렸다. 그저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갈망하던 먹잇감을 손에 넣은 기쁨에 도취되어선 정말 그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굶주림의 끝에 갈증이 일자 그 끝의 끝에서 결국엔 알게 되었다. 이젠 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을.
 
 수 번의 섹스와 수십 번의 키스와 수백 번의 포옹. 그리고 그 보다 더 나의 마음은 커져만 갔다. 눈덩이 불어나듯 점점 커지는 마음이 불안할 때면 그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쥐어주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졸랐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그 말 만큼은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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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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