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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리네와의 약혼식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그가 나오는 꿈을 꿨다. 뇌마저 녹아 내리는, 뜨겁게 질척거리는 꿈.

 

 

 나를 들여다보던 그의 시선 속 기쁨.

 나로 인해 짙게 물들던 상기된 뺨.

 그의 달아오른 피부 위에 남긴 내 손자국.

 

 

 폐부까지 가득 채운 만족스러운 포만감의 끝에서 눈을 뜨면 현실에서 맞는 순간의 쾌락에 모든 빛이 명멸하고 세상이 일렁였다.

어지러운 시야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움이 가라앉자 나는 문득 그가 그리워졌다. 눈물이 났고 주인 없는 다락방에서의 서러움이 북받치기를 수 번. 머지않아 가슴이 뜨거운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는 나를 지나쳐간 사람이었다. 또 그녀를 사랑하지 않느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들어차있다고 해서 그녀를 내칠 수는 없었다. 열렬하고 뜨겁진 않았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녀를 좋아했으며 이미 내 어깨에 짊어진 것은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를 그와 저울질 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다행히도 내가 그와 헤어졌을 때의 그의 나이가 되자 꿈은 점점 빈도수가 줄어들었고 통증은 둔해져 갔다. 한동안은 시간과 함께 그렇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아드리네와는 썩 괜찮았다. 연인으로서도 배우자로서도 아드리네는 좋은 여자였다. 나 역시 그녀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고 양가의 부모님 역시 원래부터 교류가 있던 가문끼리의 결합이라 기꺼운 기색이 역력했다.

 

 문제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이성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 포옹과 가벼운 키스로 마음을 전했지만 키스마저 서로의 입술이 닿는 것이 어색해 볼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소문에는 내가 그녀를 귀애하여 섬세한 조각품처럼 그녀를 대한다느니 그녀의 애칭이 데이지라는 점에 엮어 내가 그녀의 순수를 지켜주느니 했지만 남들이 상상과는 달리 실상은 이러했다.

 

 그녀가 학업을 마치고 사교계에 정식으로 발걸음을 하자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정원에서의 티타임 중 입을 먼저 연 것은 그녀였다.

 

 

 “어떻게 할거야?”

 

 “무엇을?”

 

 “우리 말이야. 나는 이런 관계 좀 아니라고 봐. 가끔씩은 죄책감까지 느껴져. 우리를 잉꼬나 늑대같은 것에 비유할 때 말이야.”

 

 “로제.”

 

 “맞아! 또 걔야. 알베르토 경은 어쩜 그렇게 신사적이시고~드라군에서 훈련하는 모습은 어쩜 또 그렇게 멋지시고~”

 

 몸을 배배꼬며 콧소리를 내는 아드리네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골이 났는지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키기에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신경 쓸 것 없어.”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 너도 고자가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서로가 서로한테 아무 감정도 안 들잖아?”

 

 “아드리네……말이 거칠군.”

 

 “네 앞에서만이야. 중요한 건 이거야.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정말 연애가 맞느냔 말이야.”

 

 

 잠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를 가만히 보았다.

 

 “내 데이지, 약혼자 앞에서 너무 말이 심한 것 아닌가?”

 

 오랜만의 단어에 멈칫한 그녀는 기가 막힌 듯 허-하고 코웃음을 웃더니 다소 거칠게 팔을 들어 테이블에 턱을 기댔다.

 

 “이것 봐. 네가 그렇게 촉촉한 목소리로 애칭을 불러주는데 심장이 조용하다니 이건 말도 안 돼.”

 

 그녀는 뚱한 얼굴로 찻잔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었다.

 

 “웃어? 지금 웃었어? 너 데이지 꽃말이 뭔지 나 알아? 관심도 없지? 그냥 내가 좀 귀엽고 하니까 데이지 데이지 하는 거 다 알아.”

 

 “그럴지도 모르지.””

 

 웃음이 더 나는 것을 막으려 찻잔에 입을 댔다.

 

 “넌 날 고작해야 여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분명해.”

 

 “너 역시 날 바보나 고지식한 애늙은이 정도로 생각하니 내가 더 손해인 것 같은데?”

 

 “정말 한마디도 안지는 군요, 알베르토 로라스. 응?”

 

 아드리네는 다시금 한 모금 차를 머금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 가슴이 뛰고 내 모든 걸 걸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야.”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실소가 나왔다.

 

“넌 날 너무 외롭게 해.”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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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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