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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 1. 신랑, 신부 2. 연인, 약혼자 3. 신참, 신출내기

 

 

 다리오 드렉슬러. 나에게 있어 이 이름은 언젠가는 물리쳐야 할 절대 악 같은 것이었다.

 

 

 

 학부를 통틀어, 심지어 교외(校外)에서 조차 드렉슬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내로라하는 명분가의 자제였고 믿지 못할 정도의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그와 동시에 모든 사건과 사고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내 속을 메스껍게 했다.

 

 누가 보든지 간에 그는 대단했다. 머리가 좋은 만큼 벌이는 일은 대담했고 철저했으며 결정적으로 반사회적이었다. 신분에 상관없이 입학이 가능한 드라군 부속의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에게 그 당시 교사들의 권위라고 하면 신과 비견될 정도라 처음에는 나 역시 드렉슬러가 나쁘지 않았다. 모두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일에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조금 과격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는 교사를 골탕먹이고 학교의 몇몇 기물-새롭게 세운 이사장의 동상, 학생들에게 추가의 요금을 걷어 별관에 마련한 교사용 휴게실 같은 것들-을 망가뜨리거나 때때로 폭파시켰다. 일련의 일들에 불만을 품었던 많은 학생들이 드렉슬러에게 환호했다. 다만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추종자라 일컫는 이들은 10대의 혈기로 그의 흔적을 쫓아 사건을 더욱 난잡하게 헤집어놓았다. 흥에 취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본능을 따라서. 그는 정도를 벗어난 소란을 나서서 잠재우지도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중을 선동하면서 정작 자신은 물과 기름마냥 그렇게 사건에서 떨어져 나왔다. 결국 관계없는 이들이 벌을 받을 때도 그는 이 역시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오히려 종종 발을 빼기위해 그들을 이용하곤 했다. 그럴 때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예전 우연히 스치듯 본 자신만만하게 웃던 얼굴, 정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눈동자, 그 기가 질릴 정도로 모든 이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 같은 것들이. 그것에 학교 안을 메운 예의 소문들-안 좋은 패거리와 어울려 술이나 담배를 한다, 수업을 자주 나오지 않는다 같은-까지 오버랩 되자 나에게 있어 드렉슬러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최악이 되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따지게 된다면 꼬박 밤을 새울 정도의 무질서에 한창 비위가 상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추종자들-역겹다-이 결국은 피해자를 냈다. 무너진 돌담의 외벽에 깔려 같은 반의 학우가 입원을 하자 나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어떻게 보면 드렉슬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음에도 나는 이 모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소란을 원치 않는 만큼 누군가가 그를 막아야만 했다. 나는 도저히 그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나를 부추겼다. 불의를 보고 참아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란다.

 

 상급생의 건물에 하급생의 방문은 불문율처럼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는 괘념치 않아 보였다. 심지어 그의 제안을 따라 말하기 편한 곳으로 장소까지 이동하자 예상보다 협조적인 태도에 나 역시 격식을 갖춰 그를 대했다. 그가 일으킨 굵직한 사건 몇 가지와 내가 왜 그를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경위를 설명하자 그는 웃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이 되었다.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군? 피곤한 스타일이야."

 

 

 이것이 상황설명 후 들은 첫말이었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아래턱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그는 그것을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요약하면 그거잖아. 질서를 어지럽혀서 용서할 수가 없다? 와-이런, 세상에나 유치하긴. 난 바빠서 너랑 놀아줄 시간 없으니까 영웅놀이는 딴 데 가서 알아봐."

 

 

 뒷말을 듣지도 않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등 뒤를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그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훈계하며 바짝 쫓았다. 두 살 차이라는 것 외에도 그는 고등부였고 나는 중등부였다. 특히나 드라군의 부속 중, 고등학교인 우리는 선배의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그런 것을 따지다 보면 내가 그 때 얼마나 정신이 나가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존대도, 경어도 쓰지 않으면서 당신-이란 호칭까지 썼던 것 같다. 감히. 하지만 그 정도로 어린 마음에 조롱거리가 되어버려 치솟는 분노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분노로 눈앞이 시뻘개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부끄러울 일이다. 드렉슬러 역시 어지간히 열이 받았는지 결국엔 골목 쪽으로 나를 몰아넣고 몸을 밀어붙였다.

그 때 처음으로 희미하게 바람 냄새가 났다.

 

 

 "이름이 뭐냐, 꼬마."

 

 

 "무례하군."

 

 

 얼떨떨한 기분을 내색 치 않으려 뱉은 말은 과하다 싶게 딱딱했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는지 그는 더욱 가까이 얼굴을 밀어붙이며 빙그레 웃었다. 순간 나는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이전엔 느낀 적이 없는 무언가가 순식간에 치고 올라왔다. 숨쉬기가 불편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흠, 그래. 내 이름은 다리오 드렉슬러다. 자, 이름이 어떻게 되지?"

 

 

 "알베르토 로라스, 라고 한다."

 

 

 "아, 네가 알베르토 가(家) 도련님이었군. 그래? 그럼 로라스라고 불러도 되겠지? 응?"

 

 

 그는 나를 때리거나 협박하지 않았다. 다만 제안을 했다. 어디 한 번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네가 얼마나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하나 막지 못하면 다른 거라고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열이 받아 마른 입술을 핥고 그는 제법 비열하게 웃었다. 그렇게 독기 서린 눈을 마주하자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드렉슬러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사라지자 잠시간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풀썩-하고 모래먼지가 날렸다.

 

 

 그 이후의 행보는 단순했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나는 항상 그를 쫓아다녔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 그렇게 몇 주간의 신경전이 이어지며 그는 금세 자신의 패턴을 되찾았다. 귀찮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을 갔고 그렇지 않은 날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젠 근처에 내가 있는 게 익숙해졌는지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을 이따금씩 권하기도 했으나 나는 그가 떼를 쓰거나 내킬 때만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보니 그것은 몹시 기괴하고 이상했다. 지금껏 제멋대로 행동한다 싶었던 것들이 그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인데, 내 눈에는 마치 그것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는 고뇌했고 괴로워했으며 무언가에 쫓겨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욱 필사적으로 하늘에 매달렸다. 마치 저 먼 하늘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처럼. 그 모든 것이 병약한 어머니와 자신을 얽어매는 가문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 후로도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숲길로 발을 돌렸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묘한 발걸음이었으나 괘념치 않고 뒤를 쫓았다. 그는 언덕 위 무너질 듯 위태로운 헛간으로 발을 옮겼다. 허락 받지 않은 공간에 들어선 불청객이 된 기분에 헛간 아래에 멀거니 서서 서쪽으로 난 외 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드렉슬러가 먼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위로 올라오라 손짓했다. 부실한 판자를 대어 걸을 때마다 괴상한 소리가 나는 계단과 태양이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빛을 산란시키며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마른 냄새를 지나고 나니 그 계단의 끝에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는 드렉슬러가 서있었다.

 

 

 "너만 알고 있어. 내 비밀아지트야."

 

 

 마지막 보루가 되곤 한다는 다락방에 발을 들여놓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째서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나무판자에 발을 올려놓자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갑작스레 겁이나 다시금 허락을 구하듯 드렉슬러를 쳐다보았을 때 하늘이 아닌 나를 보며 웃던 그 말간 얼굴에,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한 감촉이 심장을 헤집었다. 그것은 가슴 한켠 아릿한 것으로 남아 집에 와서까지 도통 가시질 않았다. 그 후엔 상스럽게도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몸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몇 달 뒤, 며칠간 드렉슬러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소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렸다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가 사라진 지 사흘째, 나는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 등을 챙겨 예전 그를 쫓다 다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노을이 지는 하늘을 등 뒤로 하고 뻐꾸기 우는 숲길을 지나 신 안에서 바작바작 밟히는 모래를 털어내며 비포장 찻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야트막한 언덕 위 이미 절반은 무너진 작은 주택과 무너질 듯한 2층짜리 헛간이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은 걸음과 함께 점점 빨라졌다.

 

 

 그는 인기척에도 뒤를 돌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는지, 아니면 주변의 변화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말라붙은 고목. 아니, 말라가는 고목처럼 그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몰골로 목숨 줄 마냥 창가를 쥐고 매달려 있었다.

 

 

 "실례하지."

 

 

 

 공중에 부유하는 어색한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배경에 녹아 들어가는 그를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침묵을 깨야만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차마 그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제 3자로서 그의 고요를 깨트리는 것은 내게 마치 불경한 일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건 말에 대꾸는 없었다. 그의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 끝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옆얼굴을 살피는 정도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그로부터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는 없었지만 그가 나를 내쫓지 않고 내가 옆에 있음을 꺼려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밤이 되고 별이 뜨자 그는 숨을 터트리듯 내뱉었다. 그림 속에서 빠져 나온 인물처럼 그는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벽에 등을 기댔고 고개를 젖혔다.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몸을 살짝 들어 움직이자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물 좀 줄래."

 

 

 나는 별 말 없이 가방에서 물병과 건과일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됐어."

 

 

 물병만 받아 든 그는 그것을 꿀꺽꿀꺽 단숨에 마셔버리곤 다시금 숨을 몰아쉬었다.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말꼬리에 묻어나는 웃음에 나는 조금 얼이 빠졌다. 웃는 소리와 함께 달빛이 닿은 복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는 곧 몸을 일으켜 무릎을 세워 앉고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곤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며 눈동자를 좌우로 서서히 굴렸다.

 

 

 "가득 들어있네."

 

 

 숨이 멎어 드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며칠간 먹지도 씻지도 못했을 그에게서 익숙한 바람 향이 훅 끼쳤다. 이 무더운 여름에 그럴 리 없는데도.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익숙해지며 옅어지자 사라지는 꼬리가 아쉬워 숨을 잔뜩 들이켰다.

 

 

 "별 말이야."

 

 

 또다시 웃음기를 달고 멀어지는 그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기색 없이 그는 이번에야 말로 어둠 속에서 활짝 웃었다.

 

 

 "이렇게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너무 멀다는 걸 깨달아버리거든."

 

 

 그는 붙잡힌 손을 털어내고 다시금 손을 뻗어 얼굴을 감싸 쥐고서 내 두 눈을 살피며 말했다. 속삭여 오는 소리가 머릿속을 간질일수록 별들에게 질투가 났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는 그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겠지. 날카롭게 떠오른 사실이 이미 내 것 같지 않은 심장을 옥죄었다.

 

 그러다 찰나. 아주 찰나의 순간.

 

 그가 마주 댄 입맞춤이 술김이었는지, 입을 맞출 때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닿아오는 뜨거움이 멀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벼운 부딪힘을 깊이 이끌었다. 부드럽게 헤집고 깊이, 더 깊이. 곧 어깨를 밀리고, 밭은 숨을 뱉으며 줄곧 그림자가 덮여있던 얼굴에 붉은 기가 서리자 그는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졌다.

맞붙은 시선을 끊어내듯이 눈을 감고 이마를 짚은 채 야속하게 드러눕는 그를 따라가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조금 상한 몸을 즈려눌렀다.

 

 

 "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미안."

 

 

 사과. 잠깐의 스침과 달큼해진 사과에 나는 조금 버둥거리는 그를 내리누르고 다시금 입을 맞췄다.

 

 

 

 

 그 후에는 우리 사이에 묘한 장벽이 생겼다. 어색한 공기와 죄책감으로 지난 일에 관해 사과를 하려 해도 드렉슬러가 먼저 눈치를 채고 꼬리를 끊는 일이 잦아져 나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관계 회복을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갈수록 얼굴을 마주하는 빈도마저 줄어들어 나는 결국 방과 후 드렉슬러가 자주 다니던 곳을 찾아다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드렉슬러는 그의 흔적마저 지우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드렉슬러가 졸업을 해버리자 이젠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중등부와 고등부가 동시에 식을 올리다 보니 졸업식 당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이 끝남과 동시에 교문 앞에 멍하니 서서 그간 그와 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새겨보는 것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질문에 희끄무레한 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목이 메여 자유를 쫓던 그가 드라군과 자유를 저울에 놓고 무엇을 택했을 지는 불 보듯 뻔한 것. 이어지는 낯선 감정에 뜨거운 것이 울렁거렸고 멀미가 나는 듯 속이 메스껍게 뒤집혔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초조하게 그가 있던 곳을 더듬었다. 조급한 발걸음은 나답지 않은 것이었고 밤이 깊어 그의 헛간에 다다르자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너무 가까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다. 별도 빛을 잃고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바람을 타고 그가 사라졌듯이 내가 디디고 있는 땅마저 푹 꺼질 듯한 암담한 기분과 심장을 태우는 뜨거운 고통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해는 언제고 다시 뜬다. 어린 치기였는지 이 원인 모를 불꽃은 얼마 안가 가라앉았으며 나는 곧 정해진 수순인양 아드리네와 약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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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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