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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총성으로 거리의 시간이 멎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총구가 흔들렸고, 시작된 저녁의 찬 공기에도 이마를 타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땀은 리볼버를 움켜쥔 손 안에도 가득 차 미끌거렸다. 단 한 번 총을 쐈을 뿐이다. 술에 취한 늙은 몸은 이 반동조차 힘에 겨워 했다. 온 몸이 크게 흔들려 근육이 뻣뻣해지면서 살이 아리고 저렸다. 충격을 버티느라 딱딱해진 양 팔과 두 다리는 그렇게 리처드를 땅바닥에 주저앉혔다.



 잔경련은 성가셨다. 그 커다란 떨림이 잘게, 더 잘게 쪼개져 온 몸으로 질병처럼 퍼지고 휘어도는 감각 속에서 인중과 입술, 눈 아래에 하얗고 통통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몽롱하게 퍼졌다. 리처드는 리볼버의 총구를 애써 고쳐쥐고 도드라진 손바닥의 살만으로 콧수염을 문질렀다. 콧수염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태양을 등진 금발의 남자는 낯이 익었다. 서글픈 인상의 순한 얼굴. 살기 그득한 눈동자와 얇고 희미한 입술선. 그간 보지 못했으나 잊을 수 없는 인상과 그 어린 아이의 잔혹함이 성인이 되며 굳어진 얼굴선과 건장한 골격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이 녀석도 과거의 망령이로구나. 리처드는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니노, 이 멍청한 새끼."







리처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리처드."







제임스는 그가 자신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우스운양 짐짓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덧붙였다.




"지독하게 똑같은 얼굴이군."





 똑같은. 그 말이 우스웠다. 리처드는 잠시 뻣뻣하게 굳었다가 목젖까지 내보이며 껄껄 웃었다. 뱉어내는 웃음으로 침이 흘러내리고 시야가 흐려지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남말을 하는구나."


리처드가 총을 향해 얼굴을 내밀어 소맷부리로 침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하지. 숨겨주는 일도, 또 도망치는 것도."


 제임스는 입을 다물며 총을 꺼내 리처드를 겨눴다. 석양의 붉은 빛이 서서히 들어올려진 은색의 매끈한 쇳덩이를 비추고, 순간 그 번쩍임에 눈이 부셔 리처드는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마치 너처럼. 하기야, 너야 항상 그랬지. 네 부모에게도,"


 리처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이 덧붙였다.


 "또 내 동생에게도."


 익숙한 미소 끝에 경련이 일었다. 과거는 파도처럼 급작스럽게 밀려들었다. 제임스는 제 손안에, 또 등 뒤에 솟아난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다부지지 못한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소리는 처음도 끝도 흐리기만 했다. 자신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더이상, 정말로?



탕-!



흔들리는 총구는 또 한 번 제임스의 근처도 향하지 못했다. 총에 맞은 흙벽에서 먼지가 날려 리차드의 얼굴로 그늘이 졌다.



"젠장."



제임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늙었어. 이렇게 네 녀석이 코앞에 있는데도 맞추지 못할 만큼. 세월은 누구에게나 흐르지. 그래서, 넌. 얼마나 자랐나, 니노."



 더이상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리처드는 온화한 미소를 띄운 채 총 머리판을 제 불룩 나온 배에 걸쳐 놓았다.


 제임스는 제 다리가 땅에 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빛이 바란 나머지 멈춰버렸다고 느꼈다. 제 앞의 총구는 간신히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었고 다 늙고 지쳐 술에 찌든 노인이 가누지 못하는 팔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총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늙은이. 오래된 늙은이. 그러나 끝을 낼 수 없었다. 노인의 눈 그늘 아래엔 여전히 빛이 번쩍였다. 밝은 곳에서조차 빛 바랜 사기그릇 같을 것이 분명한 눈이, 그 뱁새처럼 조그맣고 멍청할 눈이 마지막까지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저를 놓아주지않았다.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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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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