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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올라온 글

 상처가 따끔거린다. 없는 것이 아프다. 비어있는 곳에 손을 대어보고 휑한 가슴 위에 어색한 동작으로 손을 옮긴다. 팔을 잃었다.

 

 ‘글 쓰는 연습을 하세요.’

 

 의사가 말했다. 의사는 길고 지루한 말을 질척이고 끈적거리게 늘여 귓구멍에 붙여놓고 목숨을 달아 제 말에 무게를 더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당신은 죽어요. 없는 소리가 들린다. 치료 외의 처방을 내리며 그는 자신을 무엇으로 여길까. ? 그렇다면 나는 그 제단을 쌓기 위해 놓여진 한 장의 벽돌인가. 의사의 뒷거울에 비친 비딱한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의사는 그것을 보고 따라 웃는다.

 

 나는 왼팔, 왼손의, 왼쪽검지를 들어 타자기의 버튼을 공들여 하나하나 누른다. …, …, …. 일정한 간격의 늙은 소리가 난다. 이가 악물려 사나운 소리가 나자 전쟁 같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가 신경을 긁어 A부터 Z까지의 흔적을 남겼다. 나는 미련 없이 타자기를 치워냈다.

 

 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펜촉에 걸려 울어버린 종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매끄럽게 늘 미끄러지던 곳에서 발이 걸린 펜은 대체 무슨 생각을. 종이는 제가 견딜 수 없는 날카로운 고통에 몸뚱이를 통째로 내어주었다. 종이가 잔뜩 운 자국 위를 손가락 끝으로 떠듬떠듬 쓸어냈다. 손 끝에 잉크가 묻어 파란 자국이 남았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전장은 모든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아차. 하는 순간 죽음은 목 뒤까지 다가와 제 낫에 턱을 걸쳐놓는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 말은 밑도 끝도 없이 불쾌하게 다가와 나는 웃는 얼굴로 하하, 그렇네. 정말 다행이네. 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접객을 했다. 모두가 떠난 그 때, 주름진 미간과 한껏 다친 시선으로 상처를 더듬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는 홀린 듯이 말을 놓는다.

 

 “자네는 이제 창을 쥘 수가 없어.”

 

 그 말에 나는 헛웃었다. 의도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말에 당황을 웃음으로 무마시키려고 했다.

 

 “자네는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창을 쥘 수가 없어.”

 

 나는 울었다.

 

 그는 다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잃은 것은 팔 하나일 뿐인데 그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잃은 듯이 굴었다. 나는 빈 공간을 허우적대며 주먹질을 했고 그는 이를 앙다문 채로 그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는 그의 품 속에 무너져 한참을 울었다.

 

 다시 글쓰기를 한다. 섬세한 근육을 단련시키는 좋은 운동이다. 이제 알파벳뿐만 아니라 짧은 글귀들을 베껴낼 수 있게 되었다. 곧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다시 빛을 볼 것이다.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한다.

 

 ‘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저 팔을 하나 잃었으니까.’

 ‘밝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자네는 신을 믿지 않잖아.”

 

 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 떨어진 물방울에 잉크가 번졌다. 눈물이 차는 것은 어째서 언제나 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우며 부끄러운 일인지. 펜을 쥔 손 위에 손이 얹어진다. 등이 감싸여 안기고 뜨거운 숨이 귓가에 닿았다.

 

 “다리오.”

 

원망이 아닌 좌절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다리오 드렉슬러.”

 

 일어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

 

 네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없는 것의 통증이 가셨다.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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