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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 곳은 아마 제가 있는 곳일 것이다. 제임스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저는 악의 화신이요, 불운의 상징이니 욕심으로 모든 걸 그르치고 제 인생의 고삐마저 쥐지 못한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처럼 업화의 불꽃에 타죽을 것이다. 아니, 저는 신의 아들은 커녕 가장 저열하고 천박한 자의 다리 사이에서 빛을 보아 그의 아들처럼 피부가 불에 그을려 탈새도 없이 녹아사라질테지.





제임스는 손을 꾹 쥐었다 다시 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늘 욕심을 내도 정작 원하는 것은 가질 수가 없었다.





언제나 제 뒤는 실이 쫓아다녔다. 신뢰, 기대 같은 것들을 노인은 절대 사람에게 거는 법이 없었다. 그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구역질나고 지저분한 생명체로 분류했다. 손은 깡말라 살가죽 아래로 뼈가 고스란히 도드라졌다. 미라처럼 바싹 마른 손가락 사이 사이, 실은 얼기설기 엉켜 복잡한 그물 모양을 만들었다. 그는 마치 사람보다는 거미나 지네 같았다. 곤충도 아닌 벌레. 그 자체로 조금은 거부감이 드는 것들. 침대 위에서 탁해진 눈으로 노인은 세상을 잘도 보았다. 그는 그 위에서 여전히 사람을 죽였고 체스를 두듯 말을 움직였으며 원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제 손아귀에 잡아두려했다. 욕심 많은 늙은이. 지는 노을 아래서 제임스는 괜시리 구둣발을 땅에 비볐다. 갈 시간이 되었다.





커튼을 치는 소리가 둔탁하여 거슬렸다. 가스등이 희미하게 빛을 냈고 이것을 끄면 어둠이다. 로라스는 침대에 걸터 앉아 부싯돌을 쥐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다. 그러나 부싯돌은 한참을 향 위에서 헛돌고 있었다. 무언가 잊어버린듯 제 머릿속 또는 마음 한 구석이 비어서, 또는 그 빈 공간이 공허한만큼 향 끄트머리의 공간엔 공기가 없는 것도 같았다.





앞으로 10분. 혹은 9분 17초. 혹은 8분 그리고 45초. 째깍째깍, 커튼까지 꽁꽁 싸맨 방은 시계소리와 제가 부딪히는 부싯돌 소리로 가득 찼다.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제 두려움 때문인가, 아니면 그렇게 될 일이기 때문인가. 로라스는 잠시 부싯돌을 내려놓고 땀이 가득찬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성공하면 살고 실패하면 죽는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도박으로 대령으로부터 15일의 연장을 거부한 만큼, 약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겨우 보름전에 만난 남자를 로라스는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제 신뢰가 어디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대령으로부터 전해들은 그의 과거 때문인지, 스스로를 몰아붙여 결국엔 제 코끝에 몰약 냄새를 남겼기 때문인지.





드렉슬러는 늘 긴장을 하고 있었다. 피곤한 몰골로 이성이 제 머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탓에 몇마디 말이 나오면, 그는 늘 후회하듯 입을 꾹 물었다. 거의 자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때는 분명 옅게나마 잠들어있었어. 그 때의 바지천 아래로 느껴졌던 허벅지의 온기와 그 단단함, 저를 감싸고 있던 손, 코 끝을 맴돌다 드디어 들이쉬게 된 그 따뜻한 겨울의 냄새. 부싯돌이 부딪히고 향에 불이 붙었다.





-





날이 저문다. 붉은 해의 꼬리가 길고 저는 이미 삶에 미련이 없었다. Padre. Padre. 리처드는 그 날의 일들을 이 단어와 함께 주워 섬겼다. 마지막 태양 아래에서의 웃음을 기억한다. 떠나는 뒷모습을 보지 못했는데도 제 곁으로 날아든 새에게 안락한 새장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리처드는 결국 반지의 알을 돌렸다.





-







로라스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회색의 뿌연 연기에서는 지하에서의 냄새가 고스란히 났다.







-



아무래도 리처드가 이상했다. 토마스는 제 방에 우두커니 앉아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리차드는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다. 그가 이상해질 때면 그곳엔 언제나 드렉슬러가 있었다. 이번의 그는 이상하다기보단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필히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확실했다.



토마스는 자켓을 다시 걸치고 목도리를 둘러맸다. 약국에서 술이 깨는 약을 사다가 다시 얘기를 시작해볼 참이다. 꼭 드렉슬러 때문이 아니더라도 리처드는 영국에 와서 가장 오래 알고지낸 친구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를 방치할 수는 없지않은가? 그렇게 알 수가 없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오늘은 노을이 붉고 기네. 이 때문일지도 몰라. 토마스는 약봉지를 고쳐쥐며 중얼거렸다.



-



연기가 가시질 않고 어느 새인가 어둠 뿐인 공간에서 희미하게 눈 앞이 보였다. 꿈 없이 깊이 잠든 걸까. 그는 성공한 건가. 로라스는 제 손을 쭉 뻗어 손바닥을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무언가 달라진 것은 없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몸을 일으켰고 침대에서 발을 내렸다. 바닥이 없었다.



낙하.



비정상적인 근육의 움직임.



떨어짐.



발 아래의 깊은 어둠은 중력만이 남아 몸을 빨아들였다.



-



"탕-!"



총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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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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