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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시 정각, 2시 36분

 

일지를 적어넣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배지를 확인하고 혈청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실험실의 도구와 시약으로는 진행상 한계가 있었다. 피곤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까. 고개를 저었다.

 

깜박깜박 눈을 떴을 땐 마치 데자뷰처럼 전날과 똑같은 자세, 똑같은 모습의 드렉슬러가 보였다. 깜박깜박. 그 뒷모습을 또 한참동안 보았다.

 

한 폭의 잘 짜여진 그림처럼 노란 전등 아래로 드렉슬러는 미동도 거의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제멋대로인 성정과는 다르게 빈틈없이 꽉 채워진 등이다. 과거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등. 구겨진 셔츠 아래로는 분명 잔지방 하나 없이 근육들이 꿈틀거리고 있겠지. 드렉슬러가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으면 말을 해. 이것도 적어 넣어야하니까."

 

"알겠네."

 

"뚫어져라 무슨 생각해?"

 

"빨간 드로즈 차림의 자네가 하와이에서 훌라춤을 추는 상상을 했네."

 

"웩."

 

후후. 혀를 내밀어 과장을 떠는 모습에 로라스는 눈을 접어 웃었다.

 

"오늘도 눈가가 발갛군."

 

"알러지가 있어."

 

"동물의?"

 

"익숙하지 않은 털 달린 모든 것에."

 

"괴상하군."

 

"평범하지."

 

눈가를 문지르는 손길에 드렉슬러는 어깨를 으쓱였다.

 

"약은?"

 

"둘 다 부작용이 있어서."

 

"자네라면 더 좋은 약을 만들 수 있잖아?"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를 포기해야할 때가 있어."

 

"지금은?"

 

"머리가 멍할 바에야 조금 우는 게 낫지."

 

다시금 손 끝이 눈가를 쓸었다.

 

"다녀오지. 오늘도 열 한시쯤 오겠네."

 

"반 정도만 일찍 와줬으면 하는데."

 

물음으로 돌아선 로라스에게 드렉슬러는 조금 웃어보였다.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

 

 

물류 확보 및 배달, 그 외 잡무를 맡고 있어. 토마스 스티븐슨.

 

로라스는 한 시간 일찍 실험실에 도착했다. 서류가방을 간이 침대 옆에 세워놓고 담요와 반쯤 읽은 책을 꺼내 담요는 무릎 위에 덮고 책은 펼쳐들었다.

 

일찍 왔네. 그렇게 됐네. 식료품을 쌓아놓는 옆 창고에서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실험실 문이 열리고 드렉슬러와 하얀 목도리의 남자가 들어섰다. 가벼운 목례와 어색한 인사가 지나고 로라스는 다시금 드렉슬러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있나?"

 

"나는 신뢰하고 있어. 없어선 안 될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사람을 붙여준다고 하면?"

 

"나가는 문은 저쪽이야."

 

로라스는 다시금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마주한 눈에 꿀꺽, 토마스는 마른 침을 넘겼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토마스 스티븐슨입니다. 알베르토씨."

 

"알베르토 로라스입니다."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면 돼. 이쪽에선 다들 그렇게 불러."

 

"코드명인가?"

 

"떨어져있어도 결국 뒷골목이야."

 

하하. 얼버무리듯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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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말도 안 되긴 하네.”

 

 로라스의 말처럼 그는 정말 12시가 되자마자 개로 변했다. 신체의 변화가 있거나 빛이 번쩍한다거나 하는 별다른 징후 없이 그는 입고 있던 옷과 함께 고스란히 사라졌다가 그림자처럼 짙은 검은 색의 커다란 개가 되었다. 중간길이의 털과 북슬 거리는 꼬리,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날렵해 보이는 실루엣.

 

 “로라스?”

 

 개는 짖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드렉슬러를 응시했다. 개의 눈은 새까만 털과는 다르게 푸른빛이 쨍하니 도는 맑은 하늘색으로 흐릿한 불빛 아래서조차 그 묘한 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긴 제 얼굴을 보며 드렉슬러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엣취!! 에취!! 에취!!!”

 

 동물 알러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연거푸 재채기를 해대며 약을 찾아내 삼켰다. 재채기는 멎었지만 눈물이 줄줄 흘렀다.

 

 “, 진짜 짜증난다.”

 

 훌쩍.

 

 “다 때려 치우고 싶다.”

 

 훌쩍. 훌쩍.

 

 눈물을 흘리며 드렉슬러는 로라스로 추정되는 개에게 손을 뻗었다. 개는 꼬리도 살랑거리지 않고 으르렁거리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에도 번쩍이는 주사기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개를 조심히 눕힌 후 결을 따라 털을 쓰다듬었다. 털은 매끈하고 아주 부드러웠다.

 

 “조금 따끔할 거야.”

 

털을 조금 깎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 후 주사기까지 꽂아 넣었지만 차가운 은빛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조차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반응이 없을 뿐인데 덤덤한 얼굴이 사람일 때와 겹쳐 보여 순간 열이 받았다.

 

 훌쩍.

 

 “건강진단을 좀 해야겠는데.”

 

 훌쩍.

 

 2 32.

 

 개가 됐을 때처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시간을 기록했다. 개는 때가 되자 그곳이 제자리인 듯 침대 위로 올라가 처음처럼 자리를 잡았다. 로라스 역시 처음과 똑같은 방법으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재미있긴 하군.”

 

 드렉슬러는 턱을 쓰다듬곤 로라스의 위로 담요를 덮어주었다. 처리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흥분으로 머리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5시경 잠에서 깨어난 로라스는 눈을 끔벅이며 몸을 일으켜 앉은 후 한참 동안이나 드렉슬러의 뒤통수를 응시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좀 잤는가? 아니.

 

 “실제로 늑대인간을 치료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 사실인가?”

 

 “사실이야. 인어도 본 적 있고 설인도 만났지. 내가 드라큘라 얘기도 했던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며 드렉슬러는 현미경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것 참 믿기 힘든걸.”

 

 “그러시던가. 가끔씩 어떤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되곤 해. 자기 상식이 아니라거나 뭐 그런. 그래도 그게 사실이란 건 바뀌지 않고 어쨌건 난 천재거든. 그래도 어떤 사실이든 부정하는 건 개인 자유니까. 믿건 말건 그건 네 맘이지.”

 

 “화났나?”

 

 “조금.”

 

 “솔직하군.”

 

 “…”

 

 말꼬리가 늘어졌다. 뒷 말을 위한 침묵이라기에는 꽤 긴 것이 지나가며 눈에 들어온 것들이 잊혀지지 않을 때 즈음에서야 드렉슬러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는 한 손으로 양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야 대체로 그런 편이지. 이리 좀 와봐.”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일으키자 오래 된 매트리스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로라스는 뒤에서부터 드렉슬러를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젖은 나무와 가죽냄새가 났다.

 

 “뭘 보면 되지?”

 

 덜컹. 들려진 무릎에 벽에 붙은 나무 탁자가 조금 들썩였다. 왼뺨과 어깨, 양 팔뚝에 닿은 온기가 어색해서 드렉슬러는 그로부터 고개를 최대한 떼어내고 로라스 쪽으로 살짝 얼굴을 돌렸다.

 

 “너무 가까운 거 아냐?”

 

 “잠자리가 나빴어. 딱딱하고 추웠거든.”

 

 “추위를 많이 타나 보지?”

 

 “외로움도 많이 타는 편이지.”

 

 “그런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그런 가.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따끈따끈한 뺨에 얼굴을 기대어 웃었다.

 

 “이거나 봐. 동그란 원형질 근처에 보랏빛이 나는 검은 색 알갱이 같은 거 보여?”

 

 “.”

 

 “이 현미경은 일식 이후에 생긴 능력자들의 능력이나 정제된 안개를 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개조한 거야.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시는 게 바로 둘 중 무언가 되시겠습니다.”

 

 “대단하군.”

 

 보고 있던 것에서 눈을 떼고 나서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향해 진심으로 감탄했다. 드렉슬러는 조금 멈칫하는가 싶더니 파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누구 작품인데.”

 

 “그래서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로라스는 얼떨떨할 정도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었다. 냉냉한 교섭꾼의 얼굴과 벌어진 거리에 순간 입이 꾹 다물렸다. 더듬더듬. 드렉슬러는 말을 이었다. 어…음….


 “그게좀 걸릴 것 같은데. 기억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으니 종류를 확인하는 데만 3. 네 원래 형질이랑 분획하고 실험하고. 재료가 까다로워서 활동비도 좀 받아야 될 것 같고 해독제 제조에 안정성 테스트까지 하면한 달 정도? 아마도?”

 

 “보름.”

 

 싸한 침묵이 흘렀다.

 

 협상과정에서 처음 기한을 정할 땐 예상치보다 좀 더 넉넉히 불러야 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대 또한 알 것이란 것 역시. 하지만 로라스는 이미 기한을 정해두기라도 한 것 마냥 단호하게 절반씩이나 날짜를 깎아 내렸다.


 ‘? 이것 봐라?’

 

 “이십일.”

 

 드렉슬러는 이마를 문지르며 이 고지식한 남자에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기한을 다시 정정했다.

 

 “보름.”

 

로라스는 단호했다. 싸늘한 기운이 서서히 바닥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너무 촉박해.”

 

 “보름. 지원은 아끼지 않도록 하지.”

 

 “다른 게 아니라 위험해서 그래. 나도 이십일 이상은 못 봐줘.”

 

 드렉슬러는 로라스와 괜한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물러섬에도 상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숙적인 맹수를 눈 앞에 둔 듯 험악한 분위기로 둘은 곧 서로를 물어뜯을 것처럼 시선을 맞췄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오를 듯한 긴장으로 제 온몸의 근육이 팽창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분위기가 이보다 조금 더 험상궂어진다면 언제든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고 어쩌면 예상 밖의 피가 여기저기 튈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드렉슬러는 그 장면들을 상상하며 가장 먼저 로라스의 어디를 날려보낼지 순서를 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돌벽의 피청소는 귀찮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며 로라스는 앉아있는 드렉슬러를 조금 더 내려다 보았다. 짙어진 음영 속에서 파란 눈은 마치 인형의 유리눈알처럼 서늘하고 생기가 없었다. 그는 이런 협상에 능했고 상대에게 수를 내어주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상대를 잘 모를 때는 적정선까지 약간의 열을 가하는 공정이 필요했으며 만족스럽게도 그것은 지금까진 언제나 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는 정말로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거 아는가? 정말 위험한 건 시간이 지체되는 거야. 이쪽은 정말 녹록치 않거든.”

 

눈동자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 태도만큼은 소름이 끼치게 매서웠다. 고고하고 도도해서 마치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웃기고 있네. 드렉슬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로라스의 앞에 정면으로 마주섰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너 진짜 처음부터 계속 재수없게 구는데,”

 

 드렉슬러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콧잔등이 맞닿을 정도로 오히려 거리를 바짝 붙이며 시비라도 거는 모양새로 손 끝을 이용해 로라스의 가슴팍을 푹푹 찔러댔다.

 

꼬박 밤을 새워 일해도 보름은 말이 안되거든. 약이 잘못 돼서, 그런 일은 애초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가능성을 심어야 한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단 말이다. 배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내 알 바 아니지만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이 땅덩이 내에서 나보다 빨리 약을 만들 수 있는 놈은 없어. 아니, 이건 나밖에 못해. 그건 장담하지.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혼자 뒤져. 이런 일에 나 끼워 넣지 말고.”

 

 거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섹시하군.”

 

 “어쩌라고 이 게이새끼야.”

 

 이글거리며 쏘아보는 눈이 무색할 만큼 로라스는 여유롭게 웃었다. 드렉슬러는 그 얼굴이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한 달 주지. 대신 잠은 약이 완성될 때까지 이곳에서 자겠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좋아.”

 

 “좋아.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마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로라스는 손을 내밀었다.

 

 “…그래.”

 

 드렉슬러는 깊게 한숨을 내쉬곤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책상 앞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오늘 저녁 11시쯤 오겠네.”

 

 “그래라.”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볼 수록 재미있을 작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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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손, 기다란 손가락, 길쭉한 팔다리, 무두질 공정의 냄새가 배어있는 싸구려 가죽 자켓. 미간의 주름, 고뇌하는 인상, 햇볕을 못 봐 창백하지만 라틴계 특유의 구릿빛 피부. 더러운 성격, 마찬가지로 더러운 입. 별칭 RX(처방전).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어쩐지 굉장히 끌리는 남자.

 

낮조차 해가 들지 않는 미로와 다름 없는 슬럼가. 누렇게 변한 수건과 이불들이 공중에 얼기설기 엮여 매달려있었다. 퀴퀴한 누린내와 오줌 지린내, 그리고 무언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들이 걸음을 옮기는 벽돌 사이사이마다 한데 어울려 지독하게 코를 찔렀다.

 

넓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중심길보다 어두운 골목골목엔 눈이 많았다. 모두들 어째서인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부드럽게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 잘 다려진 양복, 중절모와 스카프, 그리고 검은 지팡이.


모두의 시선 한가운데, 이런 무질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왕의 행진처럼 당당히 길을 걷고 있었다.

 

-

 

다리 아래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별이 보이는 맨홀뚜껑 아래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못 구하는 약이 없고 못 만드는 약도 없다. But cash.’

 

 로라스가 들은 드렉슬러의 가게 지침은 이것뿐이었다. 그는 좀 제멋대로라. 그에 대한 정보를 좀더 요구하자 노인은 기름때가 낀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그렇군. 로라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숨을 내쉬었다. 노인은 콧수염을 찡긋거리며 뭐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마주 으쓱대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렀다. 사람을 싫어하니 웬만해선 혼자 움직일 것. 무기를 가져가지 말 것. 절대, 절대, 그를 아랫사람 취급하지 말 것. 날짜는 전서구로.

 

 “그것뿐인가?”

 

 “심플하지.”

 

 금화 한 닢에 이정도 정보라. 과연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군. 로라스의 날카로운 눈매에 노인은 낄낄대며 웃었다.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자네니까 말야. 정보 값은 내 마음이지!”

 

 사실이었다. 로라스는 노인에게 깊이 인사를 했다.

 

 “신의 가호가 있길.”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노인은 눈을 끔벅이더니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의뢰를 받으려 들지 않걸랑 리처드가 부탁했다고 해!! 알겠나? 땅딸보 리처드일세!!”

 

 로라스는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모자를 들어올리곤 다시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기지개를 폈다. 간이로 마련해놓은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뜨거운 머리를 돌 벽에 기대어 잠시 식히니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벽이 무너져 천장과 생긴 틈으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드렉슬러는 몸을 일으켰다. 슬슬 손님이 올 시간이었다.

 

 희미한 가스등 아래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열 발자국쯤 떨어진 거리에서 드렉슬러는 인기척을 냈다.

 

 “의뢰인?”

 

 “그렇소.”

 

 “자세한 얘기는 안쪽에서 하지. 따라오도록 해.”

 

 둘은 정적 속에서 다시금 안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챙강-! - 탕타다당

 

 돌연 쇠끼리 부딪히는 파열음이 복도를 울렸다. 지팡이인척 하고 있던 검 집이 바닥을 구르고 꼬챙이 같은 쇠 지렛대와 얇은 검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무기는 금지라고 했을 텐데.”

 

 “먼저 공격한 건 네 녀석이지 않나!

 

 “어쨌든 간에 무기 소지는 금지야, 귀족 나으리. ? 분명 듣긴 한 거지?”

 

 “물론.”

 

서로 양보 없는 팽팽한 기 싸움 도중 먼저 물러선 것은 드렉슬러였다. 어째서? 로라스는 차마 묻지 못했다. 흐린 조명에서조차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당혹스러웠다.

 

돌아가. 기운 빠졌어.”

 

그럴 순 없네.”

 

 “기본 규칙도 안 지키는 녀석이랑은 일 안 해. 알겠어?”

 

 “잠시만, 얘기 좀 하지.”

 

 붙잡힌 손을 거세게 털어냈다.

 

 “따라오지마!”

 

 드렉슬러는 뛰기 시작했다. 로라스 역시 제 뒤를 쫓아 같이 뛰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 복잡한 수로를 제대로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다. 저런 녀석 따위 길을 잃던 말던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군데군데 나있는 환기구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긴 어렵지 않았다. 고생은 좀 하겠지만 적어도 재수 없게 죽는 일은 없겠지.

 

 “속이 다 시원하네!”

 

 “화가 좀 풀렸는가?”

 

 “와악- 시발!!”

 

 로라스는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양 손을 들어올렸다.

 

 “, 어떻게어떻게…”

 

 “자네 뒤를 따라왔네. 일부러 떼어놓으려는 것 같아 발소리는 좀 죽였지만.”

 

 넋이 나간 표정의 드렉슬러가 입을 열었다.

 

 

 “재수 없어, 진짜.”

 

-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감히 누구한테 마약판매상 취급을 하는 거야?”

 

 그 이후로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끊임없이 조르고 있었다. 사실 가장 안쪽의 작업실까지 혹이 붙은 이상 모든 상황은 드렉슬러에게 불리했다. 모두들 그가 제멋대로라고 하지만 드렉슬러에겐 드렉슬러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다. 살인은 하지 않을 것, 마약 제조는 거절, 사용처를 명확히 알 것, 재수 없는 놈 거래는 받지 않을 것 등등-

 

 로라스는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다. 안타깝게도 협상을 할 줄 모르는 남자는 불청객에게 협박과 욕설과 또 협박을 쏟아부었으나 완고한 인상의 이방인은 도저히 뜻을 굽힐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농담 삼아 뱉은 허이고, 이러다 무릎이라도 꿇겠다?” 라는 말에 여기에 꿇으면 되나?” 라며 주저 없이 무릎을 굽힐 듯 하다가도 대화 중엔 또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서 매사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지는 뼛속까지 귀족이라 이거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드렉슬러는 로라스에게 완전히 기가 질려버렸다.

 

 “자네, 들은 것보다 더 성격이 나쁘군?”

 

 “남이사. 초면 인사가 '개' 같은데 이보다 어떻게 더 나긋하게 굴어 드릴까, 신사양반. 그런 걸 원했으면 창녀촌을 가야지!”

 

 “명의로군.”

 

 “무슨 소리야?”

 

 “밤이면 자꾸 '개'로 변해서 말이야.”

 

 “?”

 

 “그게 내 의뢰일세.”

 

 “미친 그게뭐야…”

 

 “자정일세.”

 

 “자정?”

 

 “자정.”

 

 진짜 그게 뭐야이게 이젠 농담 따먹기까지 하나 싶었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에 그런 기색은 읽히지 않았다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자정까진 삼십 분도 안 남았어.”

 

 “그럼 조금 기다려 주게.”

 

 “의뢰 안받는다니까.”

 

 서로는 서로에게 벽과 대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로라스 역시 이젠 한계였다. 소리를 지를 것 같은 기분이 되자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것을 다시 코로 내뱉었다. 이것조차 통하지 않으면. 결심을 내렸다.

 

 “땅딸보 리처드씨 부탁인데도?”

 

 반응이 있었다. 드렉슬러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뭐야?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글쎄똑똑한 자네가 한 번 생각해보지.”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듯 로라스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화가 나고 배알이 꼬였지만 어찌된 일인진 몰라도 저 이름은 로라스가 퍼거슨의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자신은 그에게 빚이 있다. 드렉슬러는 검지손가락을 갑자기 치켜들더니 무언가를 참아내는 듯 눈을 꾹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그대로 뒤를 돌아 로라스에게 등을 보였다.

 

 “그 망할 돌팔이 영감, 뒤지지도 않지 진짜.”

 

 손가락은 까딱까딱 간이 침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앉아.”

 

-

 

“RX?”

 

 “그냥 드렉슬러라고 불러.”

 

 “그럼 렉스.”

 

 “아 좀. 말 더럽게 안 듣지…. , 몰라몰라몰라. 네 맘대로 해.”

 

 채혈을 하고 미리 작성되어 있는 계약서 양식을 훑었다. 상황을 보고 특수성에 따라 나머지 부가사항을 정한 뒤 마무리로 싸인을 할 것이다.

 

 “늑대인간, 드라큘라는 들어봤어도 개는 또 처음이네. 언제부터 이랬어?”

 

 “정확한 것은 나도 몰라. 개가 되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군.”

 

 로라스는 저 역시 의문이라는 듯이 팔짱을 껴 턱을 괴었다. 미끄러지듯 전진하던 펜이 돌연 가던 길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가정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요새 자정마다 사라진다고 해. 그리고 달빛이 약해지면 3시쯤 침대 위에 누워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맘 때쯤 커다란 검은 개가 마당이고 복도고 갑자기 나타난다지. 괴담 같은 느낌이지만 좀 더 대화를 해보니 문젠 이것뿐만이 아니야.”

 

 “그리고?”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어.”

 

 “기억을?”

 

 “사소한 것들. 내가 쓴 편지, 좋아했다던 차(), 머리맡의 낯선 책 같은 것들이네. 시간, 기간, 뭐 하나 겹치는 게 없지. 왜 이것들을 잊어버렸는진 나로썬 전혀 알 수가 없어. 지금은 이런 것들이지만 좀 더 심각해지면 일하는 데도 지장이 가서 말이야. 난 내 머리를 창고처럼 쓰고 있거든.”

 

 “하는 일은?”

 

 로라스는 조금 곤란한 듯이 웃었다. 드렉슬러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뭘 숨기면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가 없어.”

 

 “군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네. 조금불법적인 것들이지.”


 "그 가정부와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좀 어렵겠군."


 

 어째서라는 말이 나오려다 목에 턱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는 로라스를 보며 드렉슬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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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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