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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먼 로이드는 새벽 다섯시면 자리에서 눈을 뜬다. 올해 쉰하나인 그는 열여덟에 군대에 자원입대했고 제1차능력자전쟁에 참전했다. 대영제국의 군인이자 비능력자로써 최전선에서 공을 세운 것을 인정받아 훈장과 작위도 가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이것은 넘치지도 않았다. 그는 늘 이것이 불만이었다.


부품 어딘가에 녹이 슬었는지 수도의 밸브를 돌리자 끼릭끼릭 거슬리는 소리가 나며 물이 튀었다. 로이드는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에 손을 넣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하루하루 제 몸은 삭아간다. 아마도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세면대 위 거울 속에는 별 볼일 없는 오십대의 늙은이가 서있었다.


비능력자로써 그는 뛰어난 것이 없었다. 다만 운을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제가 가진 것보다 분에 넘치게 끌어들이는 운을 비열하고 저열하게 이용해 이 자리까지 오른이로 굉장한 실력자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연하게 주워들은 정보를 어떻게 써먹어야할지, 필요한 이야기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 그는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가끔씩 제 실력에 소름이 돋고는 했다.


소령. 중령. 대령. 직위가 바뀌는 그 순간은 늘 짜릿했다. 권력은 달았다. 그러나 군인은 신이 아니었다. 늘 제 위에는 누군가 있었다. 온갖 더러운 권모술수로 여기까지야 어떻게든 올라왔으나 저는 태생이 더러운 놈이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그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공허한 삶을 메꾸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했다. 돈, 그에겐 돈이 그랬다.


RX. 우연은 얄궂은 데가 있어서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꼭 이렇게 살짝 얹어놓고는 했다. 그는 그 이름을 저울질했다. 어느 쪽이든 팔아치우면 그만이지만.


 제 주요 고객인 화이트 칙스의 매음굴에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회백색의 가루가 팔리지 않고 쌓여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잔고를 깎아먹으며 몇 달간의 추적의 끝에 그들은 그들의 약을 중화시키는 해독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의도를 밝히지 않은 채로 이곳저곳에 약을 뿌려대고 있었다.


화이트 칙스는 이 일을 로위드에게 직접 의뢰했다. 저희들은 구역다툼이 있어 다른 지역에는 손을 뻗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로위드는 약쟁이 몇을 잡아 주요 거래처에 들어앉혀놓았다. 못구하는 약도 없도 못만드는 약도 없다. But cash. 리차드를 만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리차드는 거래를 받지 않았다. 해독제에 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덮수룩한 눈썹 아래 까만 뱁새눈이 섬찟하게 빛났다. 수문장은 녹록치 않았다.


로위드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적절한 역할의 멍청이로. 명분에 집착하는 그는 이번 역시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굉장한 실력자가 있고 다른 이의 눈을 피해 은둔해있으며 오직 그 노인을 통해서만 거래를 받고 있는데 전쟁으로 흉흉할 때에 다른 국가로 넘어가거나 일정 조직의 손에 들어가서는 큰 일이 날 이라 대영제국의 안녕을 위해 꼭 확보해야할 인물이라고. '나라의 일'. 키워드는 언제나 먹혔으며, '속죄'. 그 양념마저 완벽했다.


-

13일째의 새벽


눈이 번쩍 뜨였다.

 


바스락거리는 입술의 거스러미가 잘 정돈된 살갗을 거칠게 스쳤다. 닿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감촉이 여전히 아리고 저렸고 손끝으로 살짝 살짝 건드릴 때마다 기억 위로 떠오르는 감촉에 온몸이 전율했다. 가슴이 끓었다.


드렉슬러는 제 타임아웃의 끝에 비릿한 미소를 걸어넣고는 제가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아, 익숙한 향기가 분명 제 뺨에 스쳤는데. 뇌속의 혈관이 엉켜 곧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두통이 곧 생각이어서는 로라스는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위험했다. 계획. 희생. 내가 저버린 것들에대한 속죄와 그리고 두근거림. 체념하고 놓아버린 삶에대한 미련, 미련. 종류가 다른. 아아, 위험하다. 그는 위험해. 저는 어둠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사람이었다. 뛰어난 이단자를 꾀러 놓아진 미끼였고 모든 것은 청산이었으며 결국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기억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려했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두근거림으로 살고자한다. 끓어오르는 것은.


로라스는 당혹스러웠다. 지켜달라니,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걸까.


떨리는 손은 금방 들킬 것이었다.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더이상 끌어안지 않았다.


로라스는 리처드를 찾아갔다.

 

-

 침대 위의 노인은 주름지고 앙상한 손가락에 실을 엮어 거미줄을 만들었다. 금발의 남자는 묵묵히 침대맡을 지키며 노인의 시트 끝자락을 노려보았다.

 "제임스."

 거칠고 메마른 음성은 듣기 거슬리는데가 있었다. 남자는 흠칫 떨며 고개를 들었다.

 "여깄습니다, 맥그리거씨."

 "어지간히 내가 원망스럽겠군."

 노인은 이채가 흐르는 푸른 눈을 느릿느릿 깜박였다. 제임스라고 불린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탐욕스러워. 예전부터 그랬지. 비밀보따리를 잃어버린 이후에는 한껏 날이 서서는 히스테릭해졌고 말이야. 그게 자네가 몇 살때인지 혹시 기억하나?"

 "...열 살이었을겁니다."

 "제임스. 작은 제임스야. 알겠지만 나는 가정문을 싫어해. 모를 때는 확실히 모른다고 하는 게 좋아."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것 없어."

 노인은 가래가 낀 듯한 목으로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고작 예순에 몸이 엉망이야. 겉보기엔 여든은 넘은 노인같지않나?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늘 최고만 누렸는데도 이 모양이야. 하지만 여전히 나는 수장이고. 장기가 멀쩡한 것이 없는데도 그래."

 노인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검지의 반지를 문질렀다. 원숭이를 집어삼키는 뱀이 붉은 루비 뒤에 또아리를 틀어 자리를 잡았다.

 "1916년 3월 28일. 꽤 추운 날이었어. 멍청한 자식의 이마에 바람구멍을 내주었는데, 녀석이 잽싸게 도망가버렸지."

 제임스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점점 힘에 부침을 느꼈다. 울컥거리는 울대를 꿀떡 삼켜냈다.

 "내가 꽤 못살게 굴었거든."

 노인은 즐거운 듯 킬킬 웃었다.

 "등짝에 낙인은 내가 직접 찍었어. 자글자글 살타는 냄새가 내게는 풀코스 요리보다 훨씬 먹음직스러웠고. 그 사그러들지 않는 불꽃이 눈에 비치면 온 몸이 오싹해지곤 했지. 너도 그 아이를 알잖아?"

 추억에 잠긴듯 가늘게 뜨여진 눈은 도로록, 제임스를 향했다. 제임스는 제가 저도 모르게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아, 더이상 아이가 아니겠군."

 노인은 능청맞게 시선을 갈무리하며 마른 손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나는 그 녀석의 속이고 겉이고 모조리 가졌어. 늘 갈증이 나고 역겨웠는데도 옆에 꼭 붙이고 있었지. 사실 그 때도, 지금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녀석은 주먹을 움켜쥔 채 절대 펴지 않았어. 매질도, 폭언도 소용이 없었지. 그 살갗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는 있었어도 절대 이겨낼 수는 없었다고. 정말이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나는, 멍청하게 녀석의 손가락을 부러뜨려서라도 이 반지를 끼우려고 했어."

 분노에 찬듯이 앙상한 몸이 바르르 떨렸다.

 "반가운 친구의 소식을 들었어."

 노인은 순식간에 평온을 찾았다.

 "오랜만에 가지고 싶은 것도 생겼고."

 제임스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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