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드렉, 토미드렉/R-15] Midnight Blue 11
달콤한 목소리에 얹어진 어정쩡한 메세지를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옅어져갔고 드렉슬러의 도와달라는 그 한 마디가 마지막 덧창마저 열어젖히고 만 것이다.
시간과 공간과 사건과 사람이 한데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토마스는 저보다 큰 덩치의 드렉슬러를 받쳐안고 허리를 들썩였다. 맨살이 부딪히며 나는 둔탁한 소리와 저의 헐떡거림과 드렉슬러의 거친 숨소리, 말들이 선명한 방 안을 마저 채웠다.
앓기만 하던 이의 손이 순간 힘이 들어가 우그러들었다. 힘껏 쥐어진 어깨의 통증과 바뀐 공기에 어리둥절하던 토마스는 참담한 얼굴로 입술을 짓이기는 드렉슬러의 얼굴을 보고야말았다. 드렉슬러는 노련하게도 아주 잠깐 사이에 그것들을 행위의 고통에따른 괴로움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곤 제 매끈한 등을 구부려 안으로, 안으로 토마스를 밀어넣었다. 제 옆머리 언저리에서 우물거리는 입술이 느껴졌다. 망설이는 것은 제가 아니라. 좋아. 터져나온 소리와 함께 툭. 둔탁한 것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열하루째. 사실 날짜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로라스는 당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첫 날 드렉슬러를 마주하면서, 그리고 어제의 거절을 들으며 그간 제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 무언가가 완전히 당락이 난 참이라 걸음은 가볍기만했다.
그렇게 문까지 열걸음쯤 남았을까. 한 걸음에 소리가 성큼 다가왔다. 또 한 걸음에 불안이 성큼 다가왔다. 그 다음은 기척, 그리고는 열기, 한 걸음이 남자 로라스는 제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평온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틈사이로 뻗어져오는 것은 시선이나 갈망보다는 오히려 존재감, 그 자체였다. 달궈져 들뜬 공기 속이 유난히 고요하고 적막했다. 군사용 철제 침대 위 딱딱한 매트리스, 그 위의 얇은 줄무늬 시트 한 장. 토마스는 그 위에 어지러진 담요와 베개가 처음부터 신경쓰이던 참이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앉아있어야 할 곳에서 살덩이가 뒤엉켜 들썩였다. 언제나 등은 제 차지였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몇 번이나 그려보았던 갈색 등이 하얀 불빛 아래서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다른 이들의 행위를 보는 것은 생경한 일이었다. 코팅이 된 우비 위를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일련의 일들은 눈을 거쳐 신경을 타고 뇌를 두드렸으나 어울리지 못하고 도르르도르르 흘러내리기만 했다. 다만 우비만으로는 그 습기들이 우비 속의 안감을 눅눅하게 만들고 손 끝과 발 끝의 온기를 앗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로라스는 딱 그짝이었다.
어린기가 남은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부드럽게 휘어든 등이 어거지로 구부려지며 뻣뻣하게 굳어졌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뒷통수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깜박깜박. 눈은 잘도 깜박였다. 항상 어둡던 방에 빛무리가 흐르는 것이 이상하게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장면이 스냅샷이 되어 차곡차곡 쌓아올려지기 시작했다. 이상할 것이 없었다. 로라스는 조금 출출한 뱃속과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지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문을 열고 들어가 저 둘의 옆, 그러니까 항상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제가 앉을 수 없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제 생각에 눌려진 이미지들이 흐렸다.
좋아.
몸이 빨려드는듯 했다. 저도 모르게 내딛은 걸음은 구두의 끝으로 문을 찼다. 뻑뻑한 경칩으로 틈새가 조금 더 벌어진 것뿐이지만 예민한 신경으로 토마스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았다. 로라스는 두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고 울대를 넘겼다.
솔직하게도 구역질이 났다.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토마스는 알지 못했다. 눈이 부시게 밝은 빛 아래에서 어둠 속이 도통 보이지 않아 불안에 떨 뿐이었다. 상상속의 로라스는 어둠 속에서 저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저 역한 것을 본 행인마냥 인상을 찌푸렸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전히 제 상상 속 로라스는 저희를 노려보았다. 문을 두드리고 남자는 시선을 끊어냈다. 드렉슬러는 앓고 있었다.
약해.
"너무해요."
얼마 전 리차드가 제게 얼굴을 굳히며 경고하던 말이 고막 속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여 왱왱 울렸다. 축축하게 젖은 뺨에 연거푸 입을 맞추며 토마스는 그저 너무해요, 너무해요 라고 되뇌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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