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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석거리는 공기에 잔뜩 말라비틀어진 화분처럼 그렇게 부서져 내렸으면. 드렉슬러는 지는 햇살이 내려앉은 속눈썹을 천천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죽였다. 시간을 보내는 것은 괴로웠다. 강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듯이 몸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은 고요했고 평온했지만 답답함으로 목을 졸라 들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그 순간을 모두 버텨내었다의자 위에 앉은 채로 서서히 찬기가 몰려들었다. 외풍이 심한 창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이 결국엔 마지막 잎사귀마저 흙 위로, 그간 떨어졌던 죽어버린 다른 잎사귀 위로 내려놓았다. 지겹게 보았던 바깥 풍경 역시 청회색 빛으로 그 싸늘한 풍경에 눈마저 시린 듯했다.

 

 계절이 바뀌고 입는 옷이 바뀌어도 침대 위에서 눈을 뜨며 습관처럼 두리번대는 것을 로라스는 멈추지 않았다. 끔찍한 기분과 무엇인가 변할 것이란 기대에 찬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정신을 갉아먹었다. 익숙한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식사를 했다전과 변함 없이 몸을 움직이고 생활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자신을 파고드는 온기를 찾고 끌어안으면 가득 들어차는 그 기쁨으로 꿈을 먹으며.

 

 로라스는 마지막으로 떨어진 잎사귀에 손 끝을 살며시 대었다. 드렉슬러는 이름도 모르는 이 식물에 늘 물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늘 툴툴대고 귀찮아했지만 자신이 준 것이기에 소중히 했다. 잎은 이것이 당연한 듯이 차가웠고 조금 더 힘을 줬을 뿐인데 바작거리며 부서졌다. 움찔거리는 손을 말아 쥐며 이를 앙다물었다. 3개월, 그렇게 화가 치밀었다.

 

 유난히 햇살이 따사로웠다. 코 끝에 희미하게 드렉슬러의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가 좋아했던 베개에 이마를 비비며 로라스는 깜박깜박 시야를 찾았다.

 

 "좋은 아침일세."

 

 기분이 좋은지 부드럽게 웃는 얼굴에 드렉슬러는 마주 웃었다. 하지만 입 안이 껄끄럽고 안색은 창백했다. 로라스의 웃음은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다.

 

 좋은 아침.

 

 "오늘은 산책을 갈까?"

 

 입 끝에 추라도 달아놓은 듯,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두 개의 커피잔과 두 개의 토스트 접시. 드렉슬러는 이미 반쯤 빼놓은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눈을 감고 로라스가 커피를 마시는 소리, 토스트를 베어 물어 바삭거리는 소리, 신문지를 넘길 때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잠시간 듣는다. 눈은 감고 있지만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선히 보인다. 기분이 조금 즐거워져 잠시 웃었다. 커피와 토스트는 먹지 않았다.

 

 입구에 세워놓은 옷걸이에서 로라스는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목도리는 재작년 드렉슬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것이다. 물건을 고르고 사는 것을 늘 귀찮아하면서도 센스는 꽤 괜찮다. 두툼하게 두르고 문을 열었다. 바람이 이젠 제법 매섭다. 하지만 목도리가 있어 괜찮다.그의 선물은 따뜻했다밖으로 나가기 전 목도리에 잠시간 얼굴을 묻었다.


 문 앞에서 로라스가 뭉그적거리는 동안 드렉슬러는 이미 밖으로 나섰다. 조각구름이 걸린 하늘이 오늘은 꽤 높았고 이 정도면 햇살도 괜찮다. 밝고 눈이 부시지만 오랜만의 햇볕은 기분전환에 그만이었다. 그 따스함을 즐기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다시금 걸음을 옮겨 자주 걷던 산책로를 따라 로라스의 옆에서 나란히 보폭을 맞췄다.


 3개월만의 산책로였다. 고서적을 취급하는 서점과 핸드메이드 장식품들, 양초가게, 오래된 전축과 라디오가 쌓여있는 전파상 들이 변함없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남들 시선에 팔짱은 고사하고 손도 잡아 보지 못한 길이었지만 서로가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모든 것은 특별해졌다. 물건을 집어들고 얘기를 나누다가 반짝이는 그 눈동자에 마주 웃고는 골목 안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가끔 키스를 했다. 열기로 붉게 물들어 오른 뺨에 입맞춤하고 나면 입술에 남은 감촉과 온기로 세상은 더욱 따스해졌다.

 

 그늘이 지는 덕에 이 곳은 오전 내내 이슬에 젖은 이끼냄새가 거리를 맴돌았다. 여름에도 서늘하니 거리에 차있는 이끼냄새에 둘러쌓여 그렇게 붉은 벽돌길을 타박타박 걷다 보면 길의 끄트머리에 꽃을 파는 카페가 보인다. 그 곳에 들어서면 언제나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서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차가운 소다와 아이스티겨울이면 따뜻한 레몬티와 홍차를 시켜놓고 로라스가 잡지를 읽는 동안 드렉슬러는 사람구경을 했다. 딸랑딸랑 종소리는 맑고 고왔고 실내에 앉아도 커다랗게 뚫린 나무 창문으로 부산스럽지 않은 거리와 길거리 장사를 하는 상인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먼저 질리는 쪽은 드렉슬러였는데 제 몫을 다 마신 뒤 자리를 옮기고 싶을 때면 그는 항상 로라스의 어깨에 볼을 기대고 잡지를 넘겨보았다. 그러면 로라스는 다른 말 없이 읽던 것을 덮고 받침대 아래에 팁을 끼워 넣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로라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몫인 홍차와 드렉슬러를 위한 레몬티를 주문했다서버는 어느 것 먼저 가져다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로라스는 이상한 얼굴로 같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입구에서 들고 온 잡지는 늘 보던 것이 아니었다. 가쉽들은 흥미가 없었고, 실린 물건들도 필요 없는 것들뿐이었다. 차가 나오고 로라스는 레몬티 쪽을 집어 들었다. 한모금 흘려 넣자 레몬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신맛이 어금니 옆의 혀를 자극했다. 익숙하지 않은 단맛에 침이 가득 고여 꿀꺽 삼켰다. 입에 맞지도 않는 레몬티를 꿀꺽꿀꺽 삼켜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팁도 잊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억지로 레몬티를 마시는 로라스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로라스가 펼쳐놓은 잡지를 보며 혀까지 찼다. 그가 마시지 않은 홍차는 입에 댈 수 없었다. 그 떫은 맛을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광장의 분수대로 자리를 옮겼다. 광장은 카페거리보다 훨씬 북적거린다. 보통은 나무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자거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만 오늘은 가끔 사먹었던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분수대쪽에 앉았다. 왜 갑자기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로라스는 양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추운 날에. 둘이서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가 아주 더운 날이 아니면 잘 먹지도 않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무엇엔가 홀린 것 같았다.

 

 드렉슬러는 로라스와 나란히 앉아 로라스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먹는 척 입을 벌렸다. 초코봉봉은 제가 좋아하던 것이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지만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양도 줄어있지 않았다. 화가 나 벌떡 일어서서 분수대에서 먼 쪽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죽은 자신을 잊지 못하는 로라스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 이 모든 상황이 못 견디게 화가 난다. 엉엉 울고 싶은데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눈물에 울화가 치밀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다. 그렇게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니 양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멍청하게 앉아있는 로라스가 보인다. 한심한 새끼! 멍청한 새끼! 크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자신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로라스에게까지 닿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화가 난다. 화가 나고 화가 나고 또 화가 난다.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를 다시금 뛰어 돌아간다. 숨도 차지 않고 살짝 닿은 무릎에는 닿은 감각이 없다. 드렉슬러는 무릎을 꿇는다. 자신을 잊지 못하는 한심하고 안쓰러운 남자와 눈을 맞추고 닿지 않을 입술을 맞댔다.

 

 그럴 리 없는데도 그의 입술이 닿은 듯 간지러운 감촉이 순간 입술에 머물었다. 깜짝 놀라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마침내 울컥하고 서러움이 몰려들자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그는 정말로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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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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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터였는지 정확한 것은 기억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눈에 뜨일 정도로 언젠가부터 그 녀석이 눈을 자주 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항상 그랬다. 나는 나의 친구라 불리는 이들에게 제대로된 애정을 나누어준 적이 없었다. 천성이 쌀쌀맞다기보단 무언가 주려는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기에 그 과정이 나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이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그것은 가족이라해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나는 나에게 사람을 사귀는 재능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편한 일이었다.

 

 쓰지 않던 감정은 무디어져서 어느 순간부터 면역력까지 떨어지고 말았는지 모른다. 로라스. 입 밖으로나오려는 이름을 다시금 가두었다.

 

 살가운 녀석은 아니었다. 크루그먼처럼 술 한 잔 나누며 얘기하기 좋은 상대도 아니었고, 감정을 강요하는 여타 피곤한 놈들과도 달랐다. 원하는 것 없이 그저 곁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게 웃어주는. 아. 나는 꽤 많은 자리를 그에게 내주었나보다.

 

 무딘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차려보니 녀석은 나를 멀리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노려보는가 싶다가도 눈을 꾹 감고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또 무슨 잘못을 했는가. 나는 항상 밉살맞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유없이 미움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틈틈히 내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입이 열리고 튀어나올 단어가 그냥. 일까봐, 나는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그러던 오늘. 녀석은 갑작스레 비틀거리더니 의자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정신을 못차리는 놈의 팔뚝을 붙잡자. 탁. 우당탕.

닿았던 손은 뿌리쳐지고 앉아있던 의자와 함께 녀석이 나동그라졌다.

 

 "미안…하네. 그…손대지 말아주겠나."

 

 넘어진 의자를 내팽개쳐두고 녀석은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갑작스레 났던 큰소리가 계속해서 고막을 때리고 살짝 주먹을 쥐어보니 뿌리쳐진 왼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아쥐었다. 나는 그것으로 괜찮았다.

 

 그 이후로도 계속 같은 임무중에 있을 때조차 녀석은 눈을 감았다. 이를 악물고 인상을 쓰며 답지 않게 파괴적이고 과할 정도로 일했다. 주변인들의 염려에 부서질 듯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종종 날이 벼려져 있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고개를 돌렸지만 매몰찰 정도로 녀석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안좋아지는 얼굴색과 말라보이는 모습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도 그래서 묻지 않았다. 돌아올 대답을 견딜 자신이, 나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이틀째 녀석은 결근을 했다. 가정부의 말로는 이틀내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엌에서나는 고소한 냄새에 의아한듯 가정부를 보니 '늘 준비는 해놓고 있어요. 갑자기 음식을 드시면 탈이 나실까 환자식이지만요.'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에 꽤나 사랑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 후론 응접실 소파에 앉아 녀석의 방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밤이 되어 가정부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쭉. 눈이 뻑뻑해질 때마다 가끔 눈도 감아주면서. 도대체 나는 여기 앉아 뭘하고 있는건지.

 

 "제가 있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는 있을 것 같으니까. 하루이틀도 아니고."

 

 손님방과 내 가방을 번갈아 가르키고 소파 등받이를 툭툭 쳤다. 손을 들어 흔들어주자 마리는 고개를 살짝 굽히더니 나가버렸다.

 

 적막 속에서 이명이 날 때즈음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할까 손을 들어올렸다가 두드리지 않고 방문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커튼마저 닫혀있어 빛이 닿을 여력 없이 깜깜했을 방안으로 등뒤의 불빛이 새어들어갔다. 하얀 침구에 휘감겨 웅크리고 있는 녀석은 착각인지 온몸을 굳히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침대 맡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딱딱한 원목이 오히려 편안했다.

 

 순간 녀석은 숨을 몰아쉬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나는 놀라 움찔거렸다. 잔뜩 말고 있던 등이 미세하게 펴지고 거칠어진 숨이 잠잠해질 때쯤 거칠고 쉬어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끝난건가…."

 

 도대체 무엇이. 꿈틀거리는 입가를 갈무리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일어났어?"

 

-

 

 갑작스레 떨어지는 눈물방울에 온 몸의 피가 식고 심장이 떨어진 듯한 기분이 되었다. 빌어먹을. 씹할. 왜 우는 거야. 왜. 비이성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나를 공격하려 들었다. 아니, 이미 이 상황자체가 비상식적이다. 다리오 드렉슬러의 병문안이라니. 내가 미쳤지.

 

 습관처럼 볼살을 자근대며 씹었다. 헐어버린 살에서 피가 베어나오는데도 잘근잘근 씹어댔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하면. 로라스.

 

 "드렉슬러, 날 좀 살려주게."

 

 눈물이 멈추질 않는지 녀석은 말갛게 웃으면서도 계속 울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이해할 수없는 단어들의 조합에 결국에 나는 어버버거렸다.

 

 "그게…무슨 소리야."

 

 "나는…나는 아니야. 나는 실은 그러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용서를… 드렉슬러, 부디 날 용서하게.

 

 커다란 손에 얼굴을 감추고 녀석은 덜덜 떨었다. 녀석은 나에게 목숨을 구하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떨리는 등 뒤로 다가가 그 커다란 것을 가슴 깊숙히 끌어안았다. 나는 네가 용서를 빌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널 힘들게 했다면,

 오히려 용서를 빌어야할 건 나겠지.

 

 "괜찮아. 뭐든지 다 용서해주지. 내가 아는 로라스는 말 못할 이유로 용서를 비는 녀석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발 너만은.

 

 어수룩한 위로와 더불어 꼴불견으로 눈물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너만은…"

 

 참지 못하고 울먹임이 샜다. 순간 가슴팍 가득 찼던 것의 떨림이 잠시 멎고 뜨끈한 손이 팔뚝에 얹어졌다. 강해지는 움켜쥠에 팔을 떼어내려는게 싫어 목덜미에 눈물을 부비자 로라스는 내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그러지마. 제발.

 

 필사적인 조근거림과 동시에 모든걸 잃어버린 남자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드렉슬러, 젠장. 빌어먹을. 이런… 이런건…"

 

 떠나지 말아달라는 말과 감정이 너무 유치해서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엉망으로 울었다. 눈물로는 부족해서 콧물까지 훌쩍이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망쳤으면하고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비겁한 자의 말로로, 알량한 자존심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것이야말로 훌륭하지 않은가해서.

 

 따스한 손가락이 깍지끼듯 얼굴을 가리던 손을 걷어냈다.

 

 운 것의 여파로 피로한 얼굴에 발갛게 눈가를 물들이고 로라스는 다시금 웃고 있었다.

 

 "나는 자네가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건"

 

 얼굴이 다가오더니 부드러운 것이 눈가를 훑고 떨어졌다.

 

 "추악하고 더러운 마음이라,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네."

 

 "비겁한 자식이."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난 날 용서할 수가 없어서…."

 

 한껏 처진 눈꼬리로 시선을 회피한다. 멍청이가.

 

 "틀렸어."

 

 키스했다.

 

 "알겠냐. 완전히 틀려먹었다고."

 

 어울리지 않게 딸꾹질 소리가 울렸다.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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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오래 된 친우의 위로 자꾸만 헛것이 보인다.

 

 그것은 처음엔 한두개씩 단추를 열었다.

 넥타이를 풀고 겉옷을 벗어낸다.

 벨트를 열고 지퍼를 내릴 때쯤 항상 나는 눈을 감는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좋았다.

 

 어느 날은 눈꺼풀 아래로 잔상이 남아 남은 옷가지를 끌러냈고

또 어느날은 흐트러진 차림새로 손을, 목을, 허리를 감아왔다.

 

 헛것이 보이는 것이 점점 눈에 띄게 심해졌다. 아니 헛것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나의 상상은 달음박질쳤다.

 

 그가 거는 조각웃음마저 요사스럽게 매달려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점점 늘어났다.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그를 멀리하고 보지 않자 헛것은 꿈 속까지 찾아들었다.

 

 드디어 나는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실오라기하나 없이 입을 맞추고 몸을 열었다.

 

 격정.

 

 마음이 쏟아져내렸다. 귀신 장난 따위로 무너진 자존심에 허파가 찢어질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억지로 눈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더듬어지는 곳의 뜨거움에 나는 몸서리쳤다.

 

 이윽고 그것은 드디어 속살거리기 시작했다.

 

 "이러지마, 차피 꿈인걸."

 

 의지와 이지를 이기고 온몸이 크게 떨렸다. 가위에 눌리듯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웅크린채로 떨림을 참는 것 뿐. 그것은 소리내어 웃으며 어깨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로라스 하아…, 로라스…"

 

 닮은 목소리로 뜨겁게 불리어지는 이름에 나는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저것은 드렉슬러가 아니다. 저것은 다리오 드렉슬러가 아니다.

 

 악물었던 이에서 피가 나는 듯 비린 향이 돌았다.

 

 그것은 끈질기게 옷 위로 자신의 맨 살갗을 비볐다. 뜨거운 입김과 질척한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부딪혀왔다.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십사하고 신을 찾았다. 기도가 이어질 수록 맑아지는 정신에 망할 것은 더욱 깔깔댔다. 주여. 이 음험한 것을 벌하소서.

 

 그러다 갑작스레 뚝, 움직임이 멎었다.

 

 식은 땀이 마를 때까지,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끝난건가…."

 

 쉰 듯이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일어났어?"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몸을 급히 일으켜 앉았다. 환청이 아닌듯 그곳엔 다리오가 앉아있었다.

 

 "연락 없이 이틀이나 회사도 안나오고해서 다들 걱정하고 있어. 대표로 병문안 온거야. 몸은 좀 어때?"

 

 달그락, 달그락

 

 식탁 위에 환자식이 하나, 둘 올라오자 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이건 대체…."

 

 "너희집 가정부 솜씨야. 데운 것 뿐이니까 안심하고 먹어."

 

 "아니, 그게 아니고…."

 

 드렉슬러는 맞은 편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의자 끌리는 소리, 음식 냄새.

 

 "뭐?"

 

 "아닐세…꿈이…아니군."

 

 음식을 떠 입에 넣었다.

 

 그래, 꿈이 아니야.

 

 미약하게 웃음이 올라왔다.

 

 마주보고 있는 드렉슬러는 꿈이 아니다. 헛것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내 상상 속의 남자도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행복했다.

 

 그릇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천장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물기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로라스…! 왜 그래! 너 임마 왜 울어!?"

 

 심통난 표정으로 앉아있던 건너편의 남자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얼굴을 쥐고 눈물을 닦아주며 어쩔 줄 몰라한다.

 

 와중에 닿은 손이 뜨겁다. 나를 걱정하는 듯이 일그러진 표정이 보기가 좋다.

 

 어쩌면.

 

 처음으로 떠오른, 그렇게나 버둥거렸던 단어가 수면 밖으로 나오자 나는 드디어 한계가 왔음을 직감했다.

 

 "드렉슬러, 날 좀 살려주게."

 

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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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R-18] WITH.

2015. 3. 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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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닿는 곳에 되는대로 입을 맞췄다. 오랜만의 드렉슬러는 조금 마른 것 외엔 변한 곳이 없었다.

 

 쇄골에 닿은 짧은 입맞춤에 그는 가늘게 떨었다. 셔츠 안을 더듬고 가슴을 쓸어 쥐며 나는 좀 더 그의 냄새를 채웠다. 목 줄기를 타고 귀 뒤까지 깊이 들이켜자 목 바로 뒤에서 참지 못하고 앓는 한숨이 흘렀다.

 

 “으-하아…로라스….”

 

 바지 위에 손을 얹어 더듬다 가볍게 그러쥐자 시트가 밀리며 나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점점 솟아올랐다. 뜨거운 체온, 열기가 담긴 목소리. 허리를 받쳐들고 들어올려진 하체를 따라 바지를 단숨에 끌어내리자 순간에 움켜쥐어진 팔뚝이 집혀 아렸다. 이렇게 날 원하면서. 아래를 밀어붙이며 이젠 브리프 뿐인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얇은 천 아래로 힘이 잔뜩 들어간 살덩이가 손 안에 가득 차자 포만감에 거친 숨이 터졌다.

 

 다시금 키스하자 그는 벌어진 입 사이로 맹렬하게 파고 들었다. 노골적으로 질척이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우위를 점하듯 서로를 탐하다 숨이 막혀 거리를 벌렸다. 뇌가 흔들리는 듯한 키스였다. 차마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목에다 팔을 걸어 놓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고르지 못한 숨을 헉헉대며 드렉슬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혀를 내밀어 축축히 젖은 입술을 다시 한 번 핥아냈다.

 

 칭얼거리며 거리를 좁히려 드는 그를 침대에 바로 눕히며 걸리 적 거리던 속옷을 마저 벗겨내었다. 조금 젖어 든 몸으로 끈적거리는 것이 떨어졌다. 이미 몸이 노곤히 풀린 듯, 바로 누운 채 힘 없이 뜨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무릎을 세워 그를 다리 사이에 가뒀다. 반쯤 일어선 것을 손바닥으로 슬쩍 쓸자 다시금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인다. 절경이었다.

 

 “예쁘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해가 뜬 것 같아.”

 

 자네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드렉슬러는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맙소사.”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려 하니 손길을 교묘히 피해 손을 뻗어 이번엔 시야를 방해했다. 약간의 땀에 절은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혀를 내밀어 맛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거둬지는 손을 붙잡고 이를 세워 잘근 거리자 간지러운지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이 꽤 귀여웠다. 사실, 조금 많이.

 

 단지 이렇게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 만으로도 잔뜩 들떠서 애원하기 직전까지 몰리는 주제에 드렉슬러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흥분을 감추려 애쓰는 드렉슬러에게서는 항상 맹수가 경고하는 듯한 낮고 거친 소리가 났다. 그렇게 짐승이 숨을 죽이면서 내쉰 공기는 피부를 울리고 고스란히 맞붙은 가슴을 파고들어 속을 간질였다.

 

 “으, 흐! 읏…큿! 으-, 하아…”

 

 답답하게 뭉개진 소리가 혈관 하나하나를 죄는 것만 같아 나는 그의 목덜미에 이를 세웠다. 도드라진 목을 따라 이를 갈다가 낙인을 찍듯 서서히 입술을 눌렀다. 그의 피부를 빨아들인다는 행위만으로도 기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더 이상 했다간 아픔만 남을 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손 끝부터 저려오는 감각이 미묘하게 나를 잠식하는 기분을 즐기며 나는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머지않아 드렉슬러는 날이 선 목소리로 내 성을 부르며 날 밀어냈다. 붉은 꽃이 예쁘게 폈군. 손 끝으로 울혈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분명 보라 빛으로 멍이 들겠지. 기분이 점점 들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숨을 고르는 그에게 다시금 키스했다. 가슴 옆을 두드리듯 허리까지 쓸어내자 참지 못하고 숨이 바로 귓전에서 터졌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것, 그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다 아는 것 같은데.

 

 그가 갖고 싶어.

 

 속삭여오는 목소리는 달콤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그를 가둬 넣고 다른 이들 모르게 둘만. 갑작스런 욕망과 동시에 죄악감이 차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멈춰진 행위로 당황하여 날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지. 몰아 닥치는 흉포한 기분에 시트를 움켜쥐었다.

 

 “내가 얼마나 자네를 원하는지 알면 놀랄 걸…”

 

 벅찬 가슴에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허리를 세워 품 안에 가둬진 드렉슬러를 내려다보았다.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군…”

 

 씁쓸하게 내뱉은 말에 드렉슬러는 끝내 가늘게 떨리는 눈가를 숨기지 못했다. 그래, 자네는 아마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미움을 받으면, 다신 날 용서하지 않겠지.

 

 드렉슬러는 눈을 잠시간 감더니 다시금 시선을 맞추진 못하고 팩-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아했다.

 

 “별로, 사실…희박하지.”

 

 발그레 불든 그의 귀가 이제야 보인다. 어쩌면 그를 잘 아는 척 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따끈해 보이는 귓볼을 주물렀다.

 

 “상관없어.”

 

 아. 헤매는 시선에 웃음보가 터졌다. 폐에 바람이 찬 듯, 실성한 사람처럼 그렇게 킬킬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자네를 너무 좋아해…”

 

 그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눈을 슬쩍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실은 나도 그래.”

 

그렇게 개구지게 웃는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아니, 아냐아냐. 거짓말했어. 실은 아직도 너 별로야.”

 

 눈두덩에 팔뚝을 얹고 그는 배우가 빈 방에서 홀로 독백을 읊듯이 한 자, 한 자, 모든 말을 흘려 보냈다.

 

 “아직도 널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난 여전히 그래. 난 아무것도 책임져줄 수 없고, 넌 거의 모든 걸 잃어버리겠지. 그런데도.”

 

 축축하게 베개맡이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미안.”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그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내가 미안하네.”

 

 “사과하지마.”

 

 “어째서?”

 

 “사과하고 떠날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마.”

 

 아려오는 가슴에 그가 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했던 별이 쏟아지던 날 밤. 이 후로도 나는 그를 잊으려고만 했다. 도대체 나는 자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건지.

 

 “나는 몰랐어. 전혀 몰랐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의 위로 몸을 기댔다. 그로 인해 가려진 두 눈을 마치 직접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달래듯이 속삭였다.

 

 “아무데도 가지 않을 걸세, 드렉슬러. 자네 없이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

 

 그간의 상처를 위로하듯 조심스레 고개만을 틀어 입술을 포갰다.

 

 

-

 

 

 울렁거림이 가라앉자 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늘적 거리며 배 위에서 입술을 놀리다가 우거진 풀숲에 코를 문질렀다.

 

 “그런대서 킁킁대지마.”

 

 “부끄러워하긴.”

 

 대꾸 때문인 척 입술을 오물거리자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기쁘지만 너무 적극적인걸.”

 

 “미치겠네, 진짜.”

 

 조금 더 놀렸다간 정말 화를 낼 것만 같아 입을 벌려 그의 것을 물었다. 묘한 비린내와 비누 향이 났다. 비누?

 

 “자애 이어응아?”

 

 “입에 그런 것 넣고 말하지마! 이거 순 또라이 아냐?”

 

 벌게 진 얼굴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지금 상황을 멈추려고 그가 상체를 들어올리는 바람에 다시 하던 것이나 하기로 했다. 힘껏 빨아들였다.

 

 “읏-아, 젠장.”

 

 침대 위로 상체가 떨어지자 충격에 매트리스가 요동쳐 목을 찔렸다. 나는 사레 들린 듯이 컥컥 거렸고 그는 박장대소했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까 그렇지. 이거나 끼고 아래나 녹여줘.”

 

그는 머리맡 서랍장을 뒤지더니 콘돔과 젤을 꺼내 던지며 농을 쳤다. 부끄럼 없이 아래를 벌려내는 그는 신화 속 헤르메스처럼 어딘지 모르게 소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도발에 당황하여 첫 경험을 하는 어린 어른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콘돔의 포장을 뜯고 내 것 위에 그것을 씌웠다. 손에 묻은 미끈거리는 젤을 그의 뒤에 문지르자 이상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삽입부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설마. 당혹으로 물든 붉은 얼굴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쩐지 너무 적극적이더라니.

 

 “입 열지마, 경고했어.”

 

 “음, 음, 아무래도 집에 있는 동안 심심했던 모양이군. 내가 많이 그립던가? 응? 드렉슬러.”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조금 더 깊게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귓전에 조근조근 속삭였다.

 

 “…짜증나려고 해.”

 

 “내가 너무 핵심을 짚었나?”

 

 그는 씩씩대더니 엄청나게 화가 난 얼굴로 베개를 집어 들어 나를 내리치려 했다. 아차 싶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예상외로 날 공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와 엄청난 갈등을 하는 듯 하더니 얌전히 베개를 내려놓았다.

 

 “…그래.”

 

 베개는 제자리를 찾았고 나는 넋이 나갔다.

 

 “뒷구멍에 손가락 처박고 자꾸 그렇게 멍청이처럼 굴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실실대며 그의 다리를 잡고 어깨까지 밀어 올렸다. 풀어놓은 곳에 다시 젤을 짜 넣자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찌꺽대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딸려오는 살을 손 끝으로 꾹꾹 누르다가 완전히 기립한 것을 입구에 맞추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꿈틀대는 근육에 허리가 저릿했다.

 

 “녹아 내리는 것 같아….”

 

길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었다. 늘러 붙는 감촉과 열기로 끝에는 어질어질하니 정신이 몽롱했다.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느낌 정말 이상해.”

 

오랜만의 삽입에 정신이 없는 와중 한참 숨을 고르던 그가 입술을 내민 채 툴툴거렸다. 이물감 때문인지 아랫배를 꾹꾹 눌러대기에 쭉 내민 입술을 집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가.”

 

 이렇게 투덜거려봤자 나중엔 제일 즐기는 주제에 무얼.

 

 “이런 거 말일세.”

 

 크게 허릿짓을 해 한 번에 쳐올렸다.

 

 “아-”

 

 짧은 새된 소리와 함께 잠시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랫배에서 들끓어 올랐던 무언가도.

 

 “너…이 자식…이렇게 갑자기…”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여유가 없었다. 드렉슬러를 조금 골려 주기 위해 했던 행동이 커다란 파도처럼 다시금 덮쳐 들었다. 화끈거리는 뱃속과 하얗게 변한 머리 속이 원하는 것은 결국엔 같아서 나는 도저히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다시 채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피가 몰려 한껏 예민해진 곳으로 그의 안을 짓뭉개듯 치댔다.

 

 “아- 으- 빨라…로라..아! 아아- 빠릇, 아, 빠르다고-! 읏!”

 

 “한 번만, 다음은, 좀 더 상냥하게, 흣, 할 테니-, 부디 용서하게.”

 

 허릿짓에 맞춰 글자 사이사이에 숨소리가 섞였다. 숨이 턱까지 밀어 닥쳤다. 드렉슬러의 다물어질 줄 모르는 입에선 신음과 타액이 흘러 넘쳤다. 들락거릴 때마다 찔꺽이며 젤이 흘러나오는 게 얇은 막 건너로 여실히 느껴졌다. 거친 몸짓으로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입을 맞출 수가 없었다. 턱 끝을 살짝 물고 가볍게 핥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간 것 같다. 그의 안에 가득 들어찬 채로 사정 후 열기에 취해 어리광 부리듯 그의 가슴에 이마를 비볐다. 드렉슬러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머리카락 위에 키스해주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입술은 점점 더 가까워져 결국 혀를 얽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 번 더 할까?”

 

 하얀 커튼으로 빛이 스며들어 그의 눈 속 잿빛 하늘이 맑은 바다처럼 일렁였다. 비가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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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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